“잘 타협한 거다. 북한은 자신들이 도발했다는 얘기 안했지만 우리는 사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남북이 25일 새벽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나흘간 가진 고위급회담에서 6개항의 남북 공동발표문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한 이우영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교수의 평가다. 이 교수는 협상이 사흘째 계속되던 지난 24일 비슷한 예상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교수가 북한은 명백하게 사과를 하지 않지만 우리가 사과로 해석할 수 있는 정도로 합의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북한이 도발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난 24일 “우리 시각으로 보면 북한이 잘못했지만 대외적으로 북한은 (도발을) 부인하기 때문에 사과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북은 공동발표문에서 “북측은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합의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도발에 대해 북한이 했다는 얘기는 없다”며 “도발 주체에 대해 언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래도 의미는 있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북한은 (2008년 박왕자 피살 사건에 대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사과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현정은 회장에게 (사과)한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이번 합의는)군사적 긴장을 풀고 이산가족 가능성을 열어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정권에서 보통 대북강경책을 사용한다. 따라서 이번 협상으로 대화기조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강경기조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강경이었다고 볼 수 있느냐”며 “사실 북한 마음보다 대통령 마음알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만큼 박 대통령은 엇박자를 보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독일 드레스덴에서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민생인프라 구축, 인도적 해결 등을 선언했고, 그 외에도 이산가족 상봉·DMZ공원 건설·경원선 복원·유라시아이니셔티브(철도 연결) 등 북한에 다양한 교류를 제안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변화해야 5·24조치를 해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대북전단 살포 등 적대적 행위도 방치해왔다. 

즉 현재 남북협상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하지만 내년에 선거가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를 따져보면 유화적인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대선이 ‘복지 없는 복지’였다면 다음 대선은 ‘통일 없는 통일’론으로 치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이번 합의문은 남북관계를 이슈로 선거를 준비하는 정부입장에서 실적은 쌓은 것”이라며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부족했다”고 말했다. 실제 박 대통령이 북에 제안했던 다양한 교류·사업은 대부분 무산됐다. 이 교수는 “보수언론에서 통일 이슈를 띄우는 것도 통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인데 사실 조선일보가 언제부터 대북지원에 관심이 있었느냐”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통일 나눔 펀드’를 출범했고, ‘통일이 미래다’라는 주제로 캠페인을 열어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지원하고 있다. 

이어 이 교수는 “지난 대선 이슈인 복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복지로 선거를 치렀지만 복지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라며 “통일에 대해서도 ‘흡수통일론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큰 틀에서는 통일·남북관계개선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젠다 세팅에 성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 북한의 포격 도발로 남북의 대치가 중 시작된 남북 고위급 협상이 25일 타결을 이뤘다. 남측 대표인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측 대표인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마지막 협상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25일 야당들도 이번 합의에 대해 환영하는 뜻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남북 대화와 교류가 최선의 안보전략이자 평화정책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를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고,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도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과 향후 지속적인 당국간 대화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번 합의 분위기를 이어가며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관건이라는 게 이 교수의 평가다. 이 교수는 “사실 이번 협상에서 많은 시간을 5·24조치 해제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5·24조치는 당장 언급될 얘기는 아니고 정치적 부담도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얘기”라고 봤다.

이산가족이 이번 추석에 이벤트성으로 끝나지 않고 정례화 된다면 면회소가 설치될 것이고, 이산가족 상봉 장소인 금강산 관광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2002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모두 금강산에서 이루어졌다. 합의문 6항에서 언급한 ‘다양한 민간 교류’를 위해서는 5·24조치가 해제돼야 한다. 이 교수는 “그 이후에는 정상회담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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