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 등 사상통제가 심한 국가에서만 택하고 있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가보훈처 산하 보훈교육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를 언론이 인용해 국정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다.

문화일보는 18일자 석간 1면과 3면에서 보훈교육연구원에서 발표한 ‘중등 역사교과서 국가유공자 공헌내용 분석’ 보고서를 입수해 현행 역사교과서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좌편향이 심하니 국정교과서를 도입하자는 취지의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보훈교육연구원은 오는 21일 보고서를 바탕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데 이 행사는 문화일보가 후원한다. 

보고서 연구에 참여했던 서운석 보훈교육연구원과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당 보고서는 국정교과서 추진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오 연구원장은 “문화일보의 자체적인 의견(국정교과서 전환)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며 “언론사니까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선을 그었다. 

오 연구원장은 “진보성향의 언론에서는 비판적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는 학자들에게 용역을 줘 객관적인 방향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했다”며 “이념 갈등이 있는데 대한민국이 잘되고 통합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오 연구원장의 문화일보 인터뷰와 해당 보고서에서는 현행 교과서가 사건위주로 서술돼 있어 이념논쟁이 불거지기 때문에 인물 서술이 중요하다는 입장과 교과서 서술에 있어서 ‘1사건, 1인물, 1정신’ 원칙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연구원장은 “학생들은 역사적 인물을 롤모델을 설정할 수도 있다”며 인물 중심 서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18일자 문화일보 3면.
 

역사정의실천연대 이준식 정책위원장은 해당 보고서와 기사에 대해 “인물 중심 서술은 초등학교에서 흥미를 주기 위해 사용하는 역사교육 방식”이라며 “중·고등학교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물 중심으로 해야겠다는 것이 결국 우파에서 띄우고자 하는 인물 아니냐”고 덧붙였다. 문화일보는 3면 톱 기사제목은<이승만·안창호·서재필의 미주독립운동은 단 1종만 기술>이다.

문화일보는 해당기사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유관순(2종)과 김원봉(9종)이 언급된 교과서가 차이가 난다며 김원봉에 대해 “6·25 전쟁 때 남한 적화통일에 앞장”서 문제가 있는 인물로 묘사했다. 이에 이준식 정책위원장은 “유관순은 초등학교때 아주 깊게 배우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 가르쳐야 할 인물은 아닐 수 있다”며 “김원봉에 대한 서술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영화 암살로 재조명되고 있는 김원봉은 해방 이전에도 좌우합작을 주장하며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인물로 해방 이후에는 남한행을 선택했다. 하지만 친일경찰 노덕술이 김원봉을 괴롭히는 바람에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남쪽에 있을 수 없어 북으로 넘어갔고,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에게도 숙청돼 남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독립운동가로 보는게 정설이다. 

보훈교육연구원에 따르면 해당 보고서는 조주현 목포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 정책위원장은 “역사학계가 좌편향돼 있다며 한국사 연구자들 말고 다양한 분야 사람들로 만들자고 하는데 결국 뉴라이트 쪽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뉴라이트 교과서 편찬을 주도했던 서울대 박효종 윤리교육과 교수(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도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역사편찬에 관여했다. 

   
▲ 18일자 문화일보 3면
 

조주현 교수는 18일 TV조선 뉴스쇼 판 <한국사 교과서, 미주 독립운동가도 외면…지학사만 기술> 리포트에서 “미주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것을 발굴하고 교과서에 서술해야 제2, 제3의 국가유공자들이 나올 수 있다”고 인터뷰했다. 

김원봉과 같은 독립운동가도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독립운동사 조차 우파에서 유리하게 서술하고자 한다는 게 이 정책위원장의 비판이다. 교육부는 한국사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줄이는 방안을 발표하고, 김원봉의 민족혁명당 등의 독립운동사를 학습부담을 이유로 삭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19일자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는 19일 한국사 교과서를 분석해 걸러지지 않은 학설, 부실한 사실확인, 집필진들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현행 교과서 체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정책위원장은 “검정 교과서는 원래 조금씩 들어간 내용이 다르다”며 “그럼에도 교육부 집필기준안에 따라 만들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은 다 들어간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교과서 전환 여부를 올 9월 결정할 예정이다. 만약 국정으로 전환될 경우 오는 2018년부터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사용되며 2021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 적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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