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미국이 오산에 위치한 주한미군공군기지에 ‘실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을  보낸 곳은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더그웨이 연구소다. 김은희 민주수호용산모임 대표는 “더그웨이 연구소는 사막에 위치해 실제 한국과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 실험하는 시설도 있다”며 “이 연구소의 뿌리는 일제가 생체 실험했던 731부대”라고 말했다. 2차대전 이후 731부대의 자료와 연구자들이 더그웨이 연구소 설립의 토대였다.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더그웨이 연구소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생물무기와 유사한 양성세균을 살포한다. 미군은 지난해 9월에서 12월 주피터 관련 장비 4개를 구입해 오산에 2개, 더그웨이에 2개를 설치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알람이 울리는지(오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산기지에서 세균없이 실험을 했고, 더그웨이에서 세균실험을 했으며 올해 3월엔 더그웨이에서 한국과 같은 조건에서 야외에서 세균 살포 실험을 진행했다. 이를 한국에 옮겨와 작동시연을 하기 위해 4월 말 탄저균을 반입하다 이번 사태가 터진 것이다.

한국은 실험하기 좋은 나라

지난 2011년부터 계획된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라 오산기지, 용산미군기지, 군산미군기지에 생화학 실험실이 설치됐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생물화학방어 합동참모국(JPEO-CBD)이 이끌고 미국 육군 에지우드 생화학센터(ECBC)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매뉴얼 박사가 주도하고 있다. 

   
▲ 주피터프로그램에 따라 용산, 오산, 군산 주한미군기지에서 생물화학실험실이 설치됐다.
 

이매뉴얼 박사는 한 군사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실험하기 가장 좋은 나라”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주한미군 지도부에서 이런 실험을 통해 생화학무기를 방어할 능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자산이 집중된 우호적인 국가라는 것이다. 

보건의료연합 김형성 정책실장은 “사실 이매뉴얼 박사는 북한이라는 요소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정부의 협조가 좋은 곳으로 주한미군을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과 근접한 곳이라 실험을 진행하는 쪽에서는 효용이 있다. 김 실장은 “6월 5일부터 operation demonstration(시연)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데모(시위)인 셈”이라며 “한미군사훈련을 할 때 북한이 긴장하듯이 적군과 접촉만 하지 않았지 적군 바로 앞에서 하는 화생방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같은 효과다. 적군이 긴장하는 효과도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미 국방부가 이 실험에 대해 의회의 지지를 받기도 좋다”고 말했다.

탄저균 실험은 처음이고 방어용인가?

미군은 이번 탄저균 사태를 ‘처음 발생한, 배달사고’로 발표했다. 미군에 따르면 지난 4월말 주한미군은 미 국방부로부터 살아있는 탄저균을 반입했고 이번실험이 처음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지난 1998년부터 오산 공군기지에 세균 실험실을 설치하고 화생방 방호중대를 만들었다. 

당시 주한미군은 같이 근무하는 한국인들을 제외한 채 미군들에게 탄저균 백신을 주사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탄저균 실험이 진행된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2013년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진 주피터 프로그램도 1998년 실험이 구체화 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미군은 탄저균이 방어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지난 2013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미가 합의한 맞춤형 억제전략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사용 징후에 대한 선제타격에 합의했다. 김 실장은 “주피터 일정대로라면 지난해 6월 밀폐된 실험실에서 탄저, 페스트, 바실러스, 보톨리눔 등 4가지로 세균살포 실험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톨리눔은 탄저균보다 10만배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이어 김 실장은 “백신과 디텍터를 만든다는 것은 아군만 대비하겠다는 의미라 공격과 방어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통제할 수 없는 미국의 생화학무기

이번 사건을 미국 국방부에서 실토한 것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먼저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것을 인지해서라는 지적이 있다. 

더그웨이 연구소는 민간 배송업체 페덱스(FedEx)를 통해 탄저균을 배송했다. 탄저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미국 메릴랜드 주 소재 민간연구소는 이 사실을 지난 5월 22일 미국 CDC에 신고했고 CDC는 미 국방부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10년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86곳에 탄저균을 보냈다고 밝혔다가 최근 193곳이라고 수정했다.  

문제는 한국에 탄저균이 배달된 사실을 배송업체 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9조(통관과 관세)에 따르면 미국 군대에 배달된 군사 화물이나 미군 등은 세관 검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검역주권이 없는 소파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묻혔다. 지난 6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소파 개정에 대해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할 수 있다”며 사실상 외면했다. 

반면 독일은 탄저균 반입에 단호하게 대처해 한국과 비교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미군기지가 들어선 지역의 시장과 주 총리가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란트슈툴시의 페터 데겐하르트 시장은 미군에 대한 제재가능성을 경고했다. 주독미군은 즉각 지역 시장에게 연구소를 공개했다.   

탄저균은 피부가 까맣게 타면서 염증이 생기는 증상을 보이는데 호흡기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95%라고 알려져 있다. 수소폭탄보다 위력적이다. 지난 1979년 옛 소련 시절 스베르들롭스크에서 두달 동안 약 2000명의 주민이 사망했다. 측정할 수도 없는 미량의 탄저균 포자가 공중에 살포된 것이 원인이었다. 

   
▲ 탄저균에 감염된 환자의 모습을 담은 피켓. 사진=민주수호용산모임 제공
 

미국은 살아있는 탄저균을 한국에 보낸 사실에 대해 지난 5월22일 알았지만 5일이나 지나서 한국 정부에 통보했고, 이튿날인 5월28일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는 오산 미군기지를 방문했지만 미군이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군 측은 질병관리본부에 탄저균이 분말상태가 아닌 액체 상태라 괜찮다며 규정에 따라 독을 제거했다고 통보했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한미 관계가 얼마나 의존적이고 굴욕적인지 보여주는 사태”라며 “비단 탄저균 뿐 아니라 (한미 관계가) 호혜평등하고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잘못, 미국이 조사

탄저균 배달사건 40여일이 지난 7월 12일에서야 ‘한미 생물방어 협력과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샘플 배달사고 관련 사실관계 파악 및 대책마련을 위한 한미합동실무단’(한미합동실무단)이 구성됐다. 하지만 이것 역시 미국과 한국 국방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전체 20여명  중 민간 전문가는 2명(법률전문가, 미생물전문가)이 전부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조승현 평화군축팀장은 “지난 2011년 캠프 캐롤에 고엽제가 매립돼 있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 한미 공동조사단에는 지역 주민대표들과 시민사회단체도 참여한 바 있다”며 “단 두 명의 민간 전문가는 사실상 정부의 들러리 밖에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6일 오산 미군기지 내 생물식별검사실에서 미군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사실상 한미합동실무단 조사가 하루 만에 끝났다. 탄저균 실험이 국내에서 진행된 줄도 몰랐던 한국 국민들은 두 달 이상 기다렸지만 진실에 다가갈 기회는 얻지 못했다. 사건의 공개부터 마무리까지 군이 중심이 돼 진행됐을 뿐이었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23일 한미합동실무단 조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이날 미 국방부는 자체조사 발표와 그 다음날인 지난달 24일 주한미군의 성명 발표에 따르면 합동실무단은 생물공격에 대응하도록 양국 간 능력을 보장하고 상호 생물 방어 역량을 협력하기 위해 공동 회의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실무단의 목적이 사고의 원인을 진단해 한국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생화학무기 능력 개발에 있다는 뜻이다. 

   
▲ 용산지역 정당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지난 6월26일 오후 서울 용산 미군기지 3번게이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저균 실험실 폐쇄와 미군기지 내의 생물무기 실험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제공
 

김은희 민주수호용산모임 대표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와도 연결지었다. 김 대표는 “주피터프로그램 자료에 따르면 용산기지 내에 ‘121 후송병원’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평택으로 이전하지 않고 잔류검토 중”이라며 “지난 2008년에는 병원에 800억이나 투자했는데 곧 반환될 기지 내 병원에 무슨 목적으로 쓰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으로 예정된 용산 미군기지 반환 이후 공여지에는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 대표는 “공원 옆에 탄저균 실험실이 그대로 남는 셈”이라며 “121병원 근처에는 큰 아파트 단지도 많다”고 우려했다. 김 대표를 비롯해 아이를 가진 용산 주민들은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용산 남영역에서 탄저균 실험실 폐쇄와 미군 생물실험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재발 가능성 남아

달라진 게 없다. 한미합동실무단은 평택 오산 공군기지에서 탄저균에 노출된 22명이 어떻게 됐는지, 재발방지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루지 않았다. 미 국방부는 국제생물무기협약(BWC)을 위반한 더그웨이 연구소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단지 기술적인 실수가 있었다며 결론 내렸고,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23일 ‘미국 국방부의 의도하지 않은 살아있는 탄저균 포자 배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번 실수는 어떤 개인이나 기관의 실수로 볼 수 없고 하나의 근본원인을 밝혀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탄저균의 사균화(비활성화) 실패 이유를 과학 정보의 부족으로 꼽았다. 

이 보고서는 더그웨이 연구소 등이 탄저균 샘플을 검사하는 규정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탄저균이 배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탄저균을 감마선으로 죽여야 한다. 탄저균은 완전히 죽기 어렵고, 감마선 조사로 손상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더그웨이 연구소는 감마선 조사 이후 확인테스트를 5%만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의 탄저균이 완전히 죽었더라도 살아있는 탄저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탄저균이 또 다시 한국에 배송되더라도 한국 세관을 그대로 통과하며 주한미군기지내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으로부터 탄저균 반입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 참여연대 평화국제팀 이미현 팀장은 “탄저균 수입과 보유, 이동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한 국내법을 모두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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