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할 환경을 조성하고 합의제 행정기구의 장으로서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을 발휘하겠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해 4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틈만 나면 합의제 정신을 강조한다. 지금껏 방통위가 다수를 차지하는 여당 위원들의 독단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본인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한동안 최성준 위원장은 합의제 정신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전체회의가 파행으로 치닫는 경우는 드물었다. 야당 관계자마저 “전임 방통위원장들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성준 위원장의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은 위협받고 있다. 그의 리더십은 사안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쟁점이 아닌 사안을 논의할 때는 합의제를 지키다, 정작 중요한 쟁점사안에서는 ‘무늬만 합의제’로 돌변한다.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비교적 긴 시간 논의를 한다. 문제는 야당 위원들이 반발한다고 해도 결과가 바뀐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특히 정권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사안에서 방통위는 의도대로 밀어붙였다. ‘청와대 내정설 인사’와 ‘종편특혜’에서 그랬다. 뉴라이트학자였던 이인호 이사장이 KBS 이사장 후보가 되자 야당추천 위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퇴장했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임명을 강행했다. 정치편향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이석우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을 선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임명을 반대하는 야당 위원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임명식을 열고 임명장을 수여했다.

정권과 밀접한 관계인 종편의 이해관계에도 충실했다. 종편 방발기금 징수유예기간을 1년 늘리고 기금을 불과 0.5%로 책정하는 등 특혜를 안겼다. 야당 위원들이 반대했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여당 단독으로 표결을 강행했다. 지상파 광고총량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난데없이 종편 등 PP에 추가적인 광고규제 완화 특혜를 주기도 했다. 불법적 광고영업 관행이 드러난 MBN 영업일지는 조사를 시작한지 반년이 다 돼 가지만 아무런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도 그렇다.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의 공영방송 이사 3연임 불가 등 3대 요구안을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논의 자체는 이어가고 있지만 줄곧 평행선이다. 지금까지의 패턴대로라면 사상초유의 공영방송 이사 3연임으로 논란이 되는 차기환 방문진 이사를 비롯한 문제적 인사들이 임명되는 건 시간문제다.

일각에서는 본인의 의사라기 보다는 청와대 오더인 경우에 한해 소신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건 정권의 이익 앞에서 자신이 밝힌 소신과 원칙을 쉽게 내던져왔기 때문에 그의 리더십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독단적으로 공영방송 이사를 임명한다면 답은 분명해진다. 합의제 정신은 무너졌다. 최성준 리더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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