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통신의 끼워팔기상품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결합상품 대책안을 마련했다. 불합리한 위약금 제도를 개선해 이용자들에게는 혜택이 있을 전망이지만 정작 결합상품 할인율에 관한 규제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들 부처는 시장지배력 전이에 따른 콘텐츠 생태계 붕괴 등의 문제는 장기적인 과제로 미뤄 당장은 변죽만 울리는 상황이 됐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6일 오후 결합상품 제도 개선안을 확정짓고 공개했다. 개선안은 △결합상품의 위약금과 약정기간 문제 개선 △결합상품 전용약관 신설 △ 공짜마케팅 근절 및 불공정 거래행위 개선 등으로 나뉜다.

이날 방통위와 미래부가 결합상품 할인율에 대한 제재 기준을 마련할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과 달리 ‘모호’한 기준을 내놓았다. 방통위와 미래부는 “특정상품을 과도하게 차별적으로 요금 할인하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수치를 언급한 대신 ‘과도한’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사실상 방통위는 방송을 공짜로 판매하는 행태를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결합상품 특별약관’을 신설하고 사업자에게 방송, IPTV, 유무선 통신, 인터넷 등 개별 상품의 할인율과 할인금액을 명시하도록 해 특정상품을 공짜로 판매할 경우 과징금 부과 등 제재를 하게 된다.

   
▲ 연도열 유료방송 가입자 점유율. 방송시장에서는 통신이 방송을 삼키는 모양새다. 모바일TV시장에서는 '푹'의 지상파 콘텐츠 제휴중단, 포털의 시장 진입 등으로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KCTA통계자료 재가공
 

결합상품의 개별상품별로 동등한 할인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해온 케이블업계는 반발했다. 케이블TV방송협회는 6일 오후 의견문을 내고 “과도한 할인 등 불공정행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방송 끼워 팔기’가 계속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특정 사업자의 입장이 반영됐는지 여부를 떠나 방송이 통신의 미끼상품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방송시장 정상화를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은 점은 문제다.

대신 방통위와 미래부는 케이블업계에 ‘이동통신 결합상품 허용(동등결합)’이라는 당근을 제시해 제재보다는 사업자 혜택을 늘리는 쪽을 택했다. 동등결합이란 인가대상 사업자가 결합상품을 내놓으면 경쟁 사업자도 인가대상 사업자의 상품과 같은 결합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재도 동등결합은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세부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방통위가 동등결합에 대한 금지행위 유형 신설을 통해 활성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동등결합을 통해 이동통신상품이 없는 케이블업계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방통위와 미래부의 입장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박노익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사업자들 협의가 중요하다”면서 “협의만 잘 이뤄지면 케이블 사업자들이 모바일 상품을 결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동등결합의 경우 협의가 관건인데 통신사와 케이블 업계가 협력을 해 마케팅을 하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수익 배분 등 갈등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제4이동통신으로 케이블 업계가 진출하지 않는 이상 활성화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설령 활성화가 되더라도 방송의 통신종속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방안이다.

   
▲ KT의 결합상품 홍보 현수막.
 

이용자 입장에서는 높은 위약금 등 약정문제도 개선해 이용자에게 혜택이 있을 전망이다. 현재 결합상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등 문제가 지적돼왔다. 류제명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 과장은 “이용자의 결합상품 이용기간에 따라 기여분을 반영해 시간이 흐를수록 위약금이 줄어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방통위는 ‘표준약정 기간’을 2년으로 정했다. 지금까지는 결합상품의 이동통신상품의 약정 2년이 끝나도 추후에 가입한 IPTV의 약정이 지속되는 등 사실상 4~5년까지 약정기간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방통위는 결합상품 할인율 규제, 시장지배력 전이 방지 등 공정한 경쟁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은 ‘장기적 과제’로 넘겼다. 시장지배력 문제는 결합상품 경쟁상황 평가를 통해 시장상황을 판단한 후 조치할 예정이다. 현재 정부의 경쟁상황평가는 인터넷, 이동전화, 방송 등 나눠서 행해지고 있다. 할인율 등 구체적인 요금규제는 통합방송법 추진 과정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류제명 과장은 “단기적으로는 약관을 규제할 계획”이라며 “추후 통합방송법 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통합된 요금시스템을 마련하고, 이에 따른 제도 역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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