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예약을 하신 경우에는 예약을 취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의 공지사항이다. 윈도우를 최신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이용에 장애가 있으니 업그레이드 예약을 취소하라는 황당한 내용이다. 국제적으로 퇴출된 액티브X를 고집하다 생긴 문제인데, 정부가 나서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상황에서 무책임한 대응을 보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9일부터 윈도우10을 출시하고 무료로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이용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윈도우10의 기본 인터넷 브라우저인 ‘엣지’가 국제 표준이 아닌 액티브X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액티브X를 통해 결제를 해온 정부기관(증명서), 카드사, 금융기관, 결제 대행사 등의 서비스 이용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 윈도우10 화면.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브X 오류를 비롯한 호환성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윈도우10에서도 기존 버전에서 쓰던 브라우저인 ‘Internet Explorer11’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대규모 은행들은 윈도우10으로 업그레이드한 경우 결제를 위해 엣지 대신 IE11로 브라우저를 바꿔 재접속 하라는 안내문을 게시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주요 은행은 홈페이지에는 “엣지로 접속시 ‘Internet Explorer에서 열기’방법으로  재접속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지가 있다.

그러나 소규모 은행이나 정부기관의 경우 IE11로 재접속을 해도 결제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이 IE11 접속 권유 대신 업그레이드 예약을 취소하라고 안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세청 사이트의 경우 업데이트 후 IE11의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공지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역시 IE11을 통해 결제를 할 수 없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측은 “9월 중으로 윈도우10 환경에서 인터넷뱅킹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리니지 등의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는 NC소프트 역시 “Windows 10의 IE11 브라우저로 결제 시도 시 일부 신용카드, 인터넷뱅킹, 문화상품권 결제서비스 이용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는 해당 부처나 업계가 사전에 호환성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엣지로 접속하면 문제가 있어 IE11로 재접속을 했음에도 연동이 되지 않는 경우는 호환성의 문제”라며 “윈도우 전체의 커널값에 변화가 있어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기관이나 개별 업계에서 호환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홈페이지. 업데이트 예약을 취소하라는 안내를 해 비판을 받았다.
 
   
▲ 국세청 홈페이지 팝업창. 국세청 등 정부 사이트에서는 윈도우10으로 업데이트하게 될 경우 엣지 뿐 아니라 IE를 통해서도 결제를 할 수 없다.
 

정부나 기업이 웹 표준을 적용하지 않아 이용자 불편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이 지난해 HTML5을 웹표준으로 확정한 이후 액티브X는 사실상 퇴출된 상태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 웹 호환성 조사 결과 해외 100대 사이트에서 결제용도로 액티브X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독 우리나라만 액티브X를 고집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난해 정부가 비액티브X 보안 솔루션을 추진한 이후 업계는 ‘실행파일(exe)방식’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변화가 더딘 편이다. 이 방식 역시 웹표준이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윈도우를 업그레이드하지 말라는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연한 것처럼 IE11 브라우저 재접속을 안내하는 은행들도 문제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액티브X 외에도 플러그인이 뚫리는 경우가 있어서 임시로 IE11을 넣은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IE서비스를 하지 않기 때문에 웹표준에 맞춰야 이용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좋다”고 말했다.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는 “아직 웹표준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못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HTML5 등 표준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오랜기간 액티브X 기반의 시스템이 자리잡다보니 완전히 바뀌려면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특히 정부기관의 경우 액티브X 기반의 공인인증서를 여전히 본인확인 용도로 쓰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더욱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지환 변호사는 “정부의 보안시스템이 특정 업체의 기술에 종속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며 “지금은 MS가 IE11을 어쩔 수 없이 지원한다고 하는데, 이 회사가 망하거나 지원이 끊기게 되면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MS의 ‘윈도10’ 무료 업그레이드 대상자는 윈도7이나 8.1 이용자로 기간은 29일부터 1년 동안이다.

   
▲ 온라인게임 '리니지' 홈페이지 공지화면. 일부 카드사와 결제대행사의 호환성 문제로 IE를 통해서도 결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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