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진보논객들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폭로가 연이어 발생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이어졌다. ‘왜 빨리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느냐’는 시선과 ‘피해자가 분위기에 편승해 SNS에서 비겁하게 폭로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연인 간 폭력이 사적인 문제로만 다뤄져 피해자들이 쉽게 관계를 끝낼 수 없고, 이를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이화영 성폭력상담소장의 논문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여성의 관계 중단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겪고 관계를 단절했던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고 분석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3일 오후 이 논문발표회와 데이트폭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데이트를 하는 연인관계는 가족이 될 가능성을 포함하고, 실제 가족과 같은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 소장은 ‘데이트=사랑’, ‘사랑=결혼’으로 연결되며 사랑하거나 결혼하면 관계를 지속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폭력이 발생해도 이해하며 용서하게 된다고 봤다. 또한 기혼자와의 만남이나 동성 간 만남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폭력을 드러내지 못하기도 했다. 

   
 
 

데이트폭력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연인 중 30~50%가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고, 정서적 폭력을 포함하면 그 비율은 90%에 이른다. (김용미, 김정란, 논문 재인용) 하지만 폭력을 사랑으로 착각하거나 익숙함이 사랑으로 오인되면서 폭력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끊어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왜 폭력관계를 끊어내지 못했을까? 첫 번째 원인은 폭력이후 가해자로부터 반성이나 용서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데이트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나를 만나고 힘들고 죽고 싶어서 그 정도까지 했나? 이해하는 방향, 되게 미안하다고 계속 그랬다”고 말했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파트너에게 투자(헌신)한 이상 곧바로 관계를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타적 망상’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는 폭력적인 파트너를 떠나지 못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고 희생하면 폭력적인 파트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이다.  

피해여성은 연인과 관계에서 만족도가 높고 투자한 정도가 높을 경우 관계를 끊었을 때 투자했던 것이 상실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과 현재 관계를 떠나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대안의 질이 낮을 때 연인의 폭력이 발생해도 연인에게 헌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 2009년 조사(복수응답)에 따르면 응답자 중 폭력 관계를 유지하는 원인으로 많이 꼽은 응답은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60%), ‘나도 잘못한 부분이 있어서’(26.4%), ‘참고 견디면 좋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서’(17.3%) 순이었다. 

   
▲ 사진출처 = pixabay
 

폭력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면서 폭력은 반복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폭력으로 상담을 청하진 않으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 용서해달라”는 말을 믿고 싶고, 아직은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고, 내가 잘하면 변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관계 단절은커녕 상담조차 주저하게 된다.(문채수연, 논문 재인용)

데이트폭력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자신이 심리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할 사람들에게 폭력 사실을 가장 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인은 사적인 비밀까지 공유하는 관계라 관계의 단절은 쉽지 않다. 일상생활 영역까지 찾아와 헤어지자는 요구를 무력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인들과 관계를 이용해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우리 엄마한테 너랑 결혼할 거라고 했는데 니가 나를 차버리면 부모님한테 죄스럽게 된다”는 애인의 발언을 듣기도 했다. 가해자의 부모에게 폭력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오히려 ‘가해자를 이해해주고 변화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피해자의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개인정보를 악용해 관계단절을 못하도록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못 헤어진 이유는 돈 받아준다는 거 때문에 서류를 그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걸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될까봐. 엄마 명의로 돈을 빌려서 돈놀이 할까봐 무서웠다”는 피해자도 있었고, “성관계 할 때 영상을 찍자고 하는데 거절하면 그게 약점이 될까 거절 못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해당 논문에 언급된 피해자 5명 모두 폭력 관계는 민형사상 고소와 같은 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끝났다. 연애는 개인 간 만남으로 관계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 소장은 “연애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만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데이트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보거나 심각한 폭력이라는 문제라고 보는 사회적 시선은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트폭력이 가정폭력, 성폭력 이슈 안에서 지원돼야 하는데 별도의 법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문제를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별폭력과 스토킹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법률제정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