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이하 과기대) 시설관리분회 소속 청소노동자 30여명은 지난 7일부터 수일간 학교로부터 ‘큰 소리로 집회하면 민형사상 조치를 취하겠다’는 문자와 내용증명을 받았다. 지난달 말부터 이들이 점심시간 20분을 이용해 교내에서 집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집회를 한 이유는 지난 1월 학교가 보증했고, 용역회사가 노조와 합의했던 사항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최근 학교 측에서 과기대 청소노동자들에게 집회를 중단하라고 통보한 것에 대해 노조는 ‘학교가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용역회사를 비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지난 8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측이 민주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에 보낸 내용증명. 노조가 허가 없이 대학본부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집회를 진행해 계절학기를 듣는 학생들과 근무 중인 교직원들을 방해하고 있으니 중지해달라는 내용이다. 학교 측은 집회를 계속할 경우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지난 1월 27일까지 약 한달 간 노숙농성과 삭발시위 등을 진행하면서 민주노총 노조가 요구해 얻어낸 결과는 청소노동자들을 관리하던 이아무개 전 관리소장을 관리소장직 박탈이다. 이후 민주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은 1년마다 근무 장소 전환배치할 것과 노동자 결원 시 노조에서 추천하는 것을 주장했고 이는 지난달 4일 노사단체협약에 명기됐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과기대분회 조성숙 분회장은 “이 전 관리소장 때문에 노조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이 전 관리소장에게 잘못보이면 힘든 곳에 배치되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분리수거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청소노동자 박아무개씨도 자신이 해고된 진짜 이유는 ‘이 전 관리소장에게 밉보여서’라고 주장했다. 

현재 이 전 관리소장은 관리소장직에서 박탈돼 오후 5시부터 근무하는 야간 조 청소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 전 관리소장이 주간 근무로 배치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다시 민주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점심시간 집회에 나선 것이다. 조성숙 분회장에 따르면 10년 넘게 근무해온 이 전 관리소장이 실세이기 때문에 학교나 용역업체들도 이 전 관리소장의 의견이 잘 반영해준다. 만일 이 전 관리소장이 주간근무로 배치된다면 사실상 다시 관리자 역할을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민주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우려다. 

민주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은 “1년에 한 번씩 자리배치를 다시 해야 하는데 올해 자리배치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현재 구역배치는 이 전 관리소장에게 ‘밉보인’ 노동자들을 힘든 곳에 배정한 결과이고, 노사 단협에 따르면 재배치를 해야 하는데 회사가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올해 노사단체협약 16조에는 “분회간부 및 조합원에 대한 배치전환(담당구역 변경 등 포함) 등 제반 인사는 사전에 조합과 충분히 협의해 조합과 합의 본 뒤 실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현재 과기대 청소용역업체는 북파공작원들의 모임인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다. 민주노총 조성숙 과기대 분회장은 “용역업체가 선정됐을 때 그분들이 북한에도 침투했다고 하고 가스통도 들었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서웠다”며 “지난해 말 단협을 맺으면서 고용승계를 보장하라고 요구할 때도 용역업체 대표가 우리에게 ‘근로계약서는 한 달 후에 쓰고 그전까지 어떻게 일하는지 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는 북파공작원들이 모인 보수단체로 옛 통합진보당 전 이석기 의원을 규탄하는 집회에 위협용으로 가스통을 갖다놓기도 한 조직이다. 

과기대는 최근 이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었다. 민주노총 소속 과기대 청소노동자들은 수의계약을 통해 용역업체가 바뀌지 않고 이 전 관리소장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염려해 공개입찰경쟁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과기대 총무팀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수의계약 방식도 국가계약법에 규정된 사항이라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지난해 12월 29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청소노동자 30여명이 '고용승계 보장'과 '언어폭력 등을 일삼은 관리소장 퇴출'을 주장하며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공
 

수의계약 방식에 대한 문제점은 지난 2월 숭실대 청소노동자들에게서도 지적받아왔다. 숭실대는 학교 측과 우호적인 용역업체와 18년 동안 수의계약을 맺어오며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관련기사 : 청소노동자들 울리는 숭실대, 농성장 전기 끊고 철거 통보

지난 2011년 여름 전북 전주대 청소노동자들도 10년 넘게 한 업체에 수의계약을 맺어 사실상 학교가 용역업체를 감독하지 않아 노동 강도는 높아지는데도 실질임금이 삭감됐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공개입찰경쟁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개입찰경쟁 방식이 해결책일 수 없다. 지난 2011년 초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학교에서 농성하며 고용승계와 노조활동 인정을 요구했다. 홍익대의 경우 공개입찰로 용역업체를 선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조합원 전원승계 요구와 임금인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개입찰경쟁이 수의계약보다 투명할 수 있지만 최저가격을 제시하는 곳과 계약을 맺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실질 임금을 보장받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학교나 용역업체 측에 요구사항이 많은 노조 조합원들은 신분상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직접고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최강연 노무사는 “부산대(2009년)와 서울시립대(2012년)처럼 직접고용을 하면 비용도 더 줄어든다”며 “수의계약, 공개입찰방식인 학교들의 청소노동자들이 모두 문제가 생긴 것을 보면 직접고용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간접고용의 경우 원청이 노사관계의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기기만 하고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과기대의 경우에도 학교는 용역회사에 책임까지 위탁했고, 용역회사는 어용이라고 비판받는 노조와 민주노조간 ‘노노갈등’으로 문제를 규정했다.

용역업체인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관계자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근무지 배치전환을 싫다고 한다”며 “회사의 인사권인데 민주노총 말만 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 전 관리소장은 한국노총 철도사회산업노조 과기대 소속 조합원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한국노총 과기대 지부의 실세가 이 전 관리소장이며 ‘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관계자는 “이 전 관리소장을 야간으로 빼자는 사람이 33명(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고 28명(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은 주간으로 배치하자는데 복수노조가 인정되는 상황에서 한 쪽 편을 들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한국노총 소속 과기대 지부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할 말이 없다”며 “전화 끊겠다”고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조성숙 분회장은 “민주노총에서 결원이 생기면 민주노총에서 추천한 인사, 한국노총에서 결원이 발생하면 거기서 추천한 인사로 충원을 해야 합리적인데 민주노총 조합원 문아무개씨가 관둔 자리에 이 전 관리소장의 지인이 채용돼 있다”며 “이것도 단협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노사단협 19조(채용)에는 “조합원의 결원발생으로 인한 채용시 노동조합은 추천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관계자는 “인사권은 회사의 권한이므로 노조에서 추천하더라도 실제로는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지난달 19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청소노동자 30여명이 노사 단협을 지키라며 교내에서 점심시간에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공
 

민주노총 청소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복수노조제도가 악용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회사 입장을 옹호하고, 회사는 노노갈등으로 문제를 규정하는 상황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사업장인 학교에서 집회를 열면 학교는 회사 인사권이나 노노갈등 상황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 사실상 노동자들은 방치된다. 

회사 측은 관리소장직에 있던 이 전 관리소장을 야간 업무를 신설해 배치했기 때문에 청소노동자 1명을 추가로 배치한 셈인데 이런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는데도 민주노총이 인사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김미영 노무사는 “‘인사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노사가 단협에서 합의한 사항을 회사가 어기는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대 총무팀은 지난 7일~10일 3차례의 문자와 내용증명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과기대 시설관리분회 33명에게 보냈다. 조합원들이 대학본부 앞에서 집회를 하며 큰 소리를 내 학교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불법행위를 계속하면 고소장을 접수하겠다는 내용이다. 

과기대 총무팀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금 계절학기 중이라서 학생들에게도 방해가 되고 학교 교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심하다”며 “미리 구두로 이후에 문자로 통보한 뒤 내용증명까지 보냈는데도 계속 집회를 진행하면 업무방해로 고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무팀장은 “두 노조의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학교가 나서서 한쪽 편을 들 수도 없고 또한 학교입장에서는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은 범위 내에서만 지시를 할 수 있지 인사권에 개입할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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