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확산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을 통한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아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0년 전 야당(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국정원 도청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정부 발표를 못믿겠다고 비판했던 발언이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21일 오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정원 해킹 문제는 일체 언급하지 않은채 개혁에 대해서만 역설했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 팀으로부터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 및 특정 파일에 스파이웨어를 심어달라는 요청을 한 이메일이 공개되기 시작한지 열흘이 넘었으나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에 대해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10년 전 국정원의 불법 도청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을 때는 야당 대표로서 진상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강도높게 요구했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8월 ‘DJ정부 시절 국정원 불법도청한 일이 있다’는 국정원 발표에 대해 그 달 8일 열린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정부가 이제 무슨 말을 한들 어떻게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겠느냐”며 “현재는 행해지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5년 8월 8일 한나라당 대표 시절 국정원 도청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MBN 영상 갈무리
 

박 대통령은 그 사흘 전인 2005년 8월 5일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가 권력기관이 도청만을 일삼아 국민들이 너도나도 도청을 당하고 있지 않나 떨고있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국정원이 정치에 필요없이 관여하거나 불법 도청을 할 수 없도록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화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7월 28일 상임운영위회의에서도 “어두운 과거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기기관에서 도청이 이뤄지는 것은 개탄스럽고 국가적으로 수치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불법 도청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국정원과 검찰도 이 문제에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해 11월 17일에도 국민의 정부 시절 도청한 사실과 관련해 “국가기관이 나서서 우리의 자유ㆍ민주를 짓밟은 것”이라며 “검찰에서 국정원의 도청에 대해 수사를 하면서 국가기관의 불법도청 행각이 드러나고 있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생활 보호와 통신비밀 보장은 자유민주주의 핵심 원리중 하나”라며 “이렇게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이 밝혀지면서 국민은 도청에 의해 자신의 사생활이 어디서 모르게 노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검찰은 엄정히 수사를 해서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어떤 경우든 불법도청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게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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