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가 지난 4월 28일부터 58일간 국회 앞에서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특별법) 통과를 주장하며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3일 국회에서 특별법 공청회가 열렸다. 

하지만 피해사실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공감대만 확인한 채 공청회는 마무리됐고, 정부는 특별법 제정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부 측 진술인은 1975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훈령에 따라 진행된 형제복지원 감금과 1987년까지 그 안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사태에 국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진상규명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내무부 훈령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에 근거해 경찰과 부산시 공무원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감금됐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는 공청회에서 내무부 훈령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생활보호법에서는 18세~65세는 제외한 부양능력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내무부훈령은 이에 반해 임의적으로 배회하거나 껌을 파는 사람들까지 막무가내로 잡아가뒀다. 조 변호사는 “껌을 파는 건 부양능력이 있는 것”이라며 “근로 의사가 있는 사람까지 가둔 것은 모법인 생활보호법에 반해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 형제복지원 불법감금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자행된 사건이다. 사진=형제복지원사건진실규명을 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정부 측에서 나온 진술인 이태진 연구위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복지 전문가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처음에 국회 보건복지위에 배정돼 ‘왜 내무부 훈령에 따른 국가 폭력 사건을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로 축소하느냐’는 비판에 안전행정위로 재배정했다. 국가의 지원금이 형제복지원에 사용됐고, 실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이 지원금 횡령으로 구속되기도 한 사건에 대해 사회복지전문가를 부른 것 자체가 공청회 취지에 반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태진 연구위원은 ‘부랑아’와 ‘노숙인’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면서도 “서 있어서 길에서 배회하면 노숙인이고 반쯤 앉아 있으면 부랑인이라고 할 정도로 엄밀한 정의가 어렵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감금 사건이 국가의 사회정화사업의 큰 흐름 속에서 일반인들까지 잡아가 인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 노숙인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여당 의원의 황당한 의심도 있었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2012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형제복지원 문제를 처음 알렸던 한종선씨에게 “고향이 어디냐”, “말씨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다. 한씨가 “경북 의성”이라고 답하자 이 의원은 “(형제복지원이 위치한)부산 말씨도, 의성 말씨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법이 진상규명을 위한 적절한 수단인지에 대한 내용이 공청회의 핵심인 가운데 피해생존자에게 던진 질문은 이게 전부였다.   

이철우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했던 질문을 반복하기도 했다. 당시 이 의원은 “형제복지원이 오래된 사건인데, 과거에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걸 안 다뤘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에 “이 같은 사건이 많을 텐데 덜렁 특별법 만들어 놓으면 다른 사건들도 우후죽순 나올 거 아니냐. 공청회 했느냐?”고 물었다. 이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드러낸 질문이며 특별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드러난 질문이었다.

지난 3일 있었던 공청회에서도 이 의원은 “우리가 과거사진상규명위를 오래 했다”며 “그때 형제복지원 관련해서는 한 건도 조사한 게 없느냐”고 물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수차례 보도됐고, 국회 안행위에서도 나왔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경찰과 부산시공무원들에 의해 잡혀갔기 때문에 다시 경찰 등 공무원에게 자신의 피해를 구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한 형제복지원에서 심신이 망가져 도움을 요청할 여력이 없는 생존자들도 많았다. 

피해생존자들과 야당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진상규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특별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른 인권침해 사건이 많을텐데 한 가지 사건으로 특별법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논리다. 공청회에 정부 측 진술인으로 나온 이근동 변호사 역시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을 하지만 방법론의 문제를…”이라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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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논리는 ‘정부에서 직접 인권유린을 자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근동 변호사는 “일단은 거리에서 체포를 했고, 그다음 (형제복지원에) 위탁해 감금을 했고, 감금 과정에서 각종 인권유린이 있었다”며 “국가가 때린 것은 아니고 민간시설의 박인근 원장”이 때렸다는 주장이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강창일 의원은 정부 측 진술인들의 발언을 비판했다. 먼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태진 연구위원의 발언에 대해 “생활보호, 사회보장과 같이 본질하고 다른 얘기를 해서 (내가) 질문할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 의원은 “형제복지원(특별법)만 만들면 안 된다, 이런 식의 논리는 여기서 안 통한다”며 “우선 특별법 하나 만들어놓고 이것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권 침해사례를 모두 모아) 한꺼번에 (해결) 못 한다”며 “이것(형제복지원)이라도 먼저 해결해 놓고 그 다음에 다른 문제까지 확대하는 식으로 우선 물꼬를 터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당 의원은 다시 부랑인과 노숙인의 용어 논쟁으로 화제를 돌렸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은 “부랑인이라는 용어가 지금도 쓰이고 있느냐”, “정확하게 노숙하고 부랑의 차이가 구분이 되느냐”고 물었고, 이태진 연구위원은 “자의적으로만 구분하고 있지 어느 나라에도 구분돼 있지 않다”고 답했다. 

   
▲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에 따르면 부랑자들을 잡아서 자활시키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기'위한 행사들도 많았다. 사진=형제복지원사건진실규명을 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조 의원은 현 야당의 무능을 공격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민주정부, 소위 지금 야당이 정권을 가졌던 10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건 반성을 해야 할 문제다. 인권을 가장 중심에 놓았던 정권에서 이 부분을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는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사건을 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고, 2007년 과거사진상위원회가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생존자 중 가장 먼저 이 문제를 공론화한 한씨가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2012년의 일이다. 

공청회에서는 특별법을 만들지 않고 현행법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근동 변호사는 “피해 회복에 대해 1차적으로 현재 법 테두리 내에서 먼저 시도해야 한다”며 “국가가 (형제복지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 과실책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민사상 불법행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과실의 입증책임이 배상을 청구하는 쪽에 있다”며 “현재 피해자들이 그런 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비판했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 대한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것도 그동안 나왔던 얘기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가 25년인데 2015년 현재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진 1987년으로부터 28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특별법으로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없겠냐”고 묻자 이근동 변호사는 “법의 안정성을 해친다”고 답했다. 

28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의 아픔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한종선씨는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법대로 해야 된다는 논리에 대해 우리한테는 아무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에 어렸을 때 끌려간 이들은 학교 교육은커녕 부족한 영양상태 속에서 일상적인 구타와 강제노역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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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에 이어 10년 후에는 양지원 사건이라고 똑같은 사건이 터졌었고, 성지원이라는 곳에는 국회의원들이 조사를 위해 들어갔더니 원장과 직원들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난 사실도 있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이 그동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인권유린사건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특별법은 지난해 7월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세월호 참사와 정부·여당의 무관심 속에서 특별법은 1년째 표류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에서는 공무원연금법과 세월호 1주기로 인해 6월 국회로 연기됐고 한씨는 국회 앞에서 노숙을 하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렸다. 

절박한 심정에 다른 피해자들도 입을 열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숫자가 된 사람들’(오월의 봄 펴냄)이 출간됐다. 피해생존자 11명이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입에 담았고,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 등 6명의 인권활동가와 작가들이 11명의 말을 글로 옮겼다. 

   
▲ 숫자가 된 사람들/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지음/ 오월의봄 펴냄
 

  
“처음에는 거기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어요. 친한 사람들에게만 말했어요. 고아원에서 살았다는 거 자체가 부끄럽다고 생각했어요. 형제복지원도 어찌됐든 고아원이잖아요.” 피해생존자 이혜율씨의 말이다. 그는 처음에 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과 구타가 일상적이었다고 말하면 오히려 ‘양치기 소녀’ 취급을 당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감금되는 순간 이름을 잃고 죄 없는 죄인이 돼 숫자로만 불렸던 11명의 증언도 힘이 됐다.

6월 말이 돼서야 특별법 공청회 일정이 나왔고, 한씨는 농성을 풀었다. (관련기사 : “희망고문을 멈추고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하라”) 한편으로 이미 형제복지원에 대해 3년 가까이 공론화가 된 상황에서 공청회가 또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공청회에서도 정부·여당은 특별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7월 임시국회에서는 추경예산에 대한 논의로 인해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다루지 않을 예정이다. 특별법은 9월 정기 국회로 넘어갔다. 만약 9월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눈앞에 둔 19대 국회에서 특별법은 폐기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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