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면: 삼성의 애프터서비스?

20일 모든 일간지에 삼성물산의 광고가 실렸다. 제일모직과 합병에 성공한 삼성물산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삼성물산으로 거듭나겠습니다’는 광고를 게재했다. 삼성물산 임직원 일동의 명의로 된 이 광고는 “성원에 힘입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의 의결되었습니다”라며 “의결권 위임으로 힘을 모아주신 주주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간지들은 일제히 ‘국정원 임모 과장의 자살 소식’을 1면에 다뤘다. 동아일보와 세계일보를 제외한 일간지들은 임 과장의 유서를 공개하는 장면을 사진기사로 실었다.

동아일보는 1면 사진기사로 임모 과장의 유서공개 현장 사진을 쓰는 대신 대입 설명회 현장을 담았다. 머리기사에서도 임모 과장의 자살소식 대신 <대기업 세금감면 대폭 줄인다>를 게재했다. 동아일보 1면만 봐서는 ‘국정원 임모과장의 자살 소식’은 비중이 큰 뉴스가 아닌 셈이다.

   
▲ 20일자 주요일간지 1면.
 

다음은 20일자 일간지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국정원 직원 유서 “지나친 업무 욕심 탓에...”>
한겨레 <불법 없다면서... 국정원 직원 사망 전 자료 삭제?>
한국일보 <자살 전 급히 지운 파일, 무슨 내용이기에...>
조선일보 <국정원 직원 ‘유서 미스터리’>
중앙일보 <“자살 국정원 직원, 대북공작 대상 명단 삭제”>
동아일보 <대기업 세금감면 대폭 줄인다>
세계일보 <‘국정원 해킹 논란’ 정국 뇌관 부상>
서울신문 <고위공직 자손 현역비율 일반인보다 낮다>
국민일보 <압박 탓?... 해킹 요원 의문의 자살>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는 임모 과장의 유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표제를 뽑았다. 임 과장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찰은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지나친 업무 탓”이라는 표현과 파일을 삭제한 사실이 의문을 낳았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신문은 유서내용의 모순을 짚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식의 제목을 뽑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머리기사 표제에 ‘미스터리’라고 했을 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중앙일보는 유서 내용 일부를 그대로 제목으로 썼다. 동아일보 역시 <해킹 국정원 직원 자살, 유서공개 “대북자료 삭제... 내국인 사찰 안 해”>라는 제목을 통해 유서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국정원 임모 과장 유서의 ‘모순’

국가정보원 소속 임모 과장이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 18일 용인시 야산에서 차량에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정원은 최근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RCS(리모트 콘트롤 시스템)를 구입해 국내 민간인 사찰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했으나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파일에 문제가 없었다면 삭제할 이유가 없지만 임 과장은 유서에서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국정원 주장대로 해킹 프로그램을 민간사찰용이 아닌 대북, 연구용으로 샀다면 당연히 입증자료를 남겨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 하다”는 유서의 한 대목을 언급하며 “의심받을 수 있는 행동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겨레는 “임씨의 자살은 국정원이 뭔가 불법행위를 했을 거라는 의혹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면서 “우려되는 것은 그의 자살을 빌미로 사찰의혹을 규명하려는 노력에 장애물이 생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지난 19일 ‘직원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해킹프로그램 열람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료열람만 갖고는 의혹을 규명하기 쉽지 않다. 한국일보는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 열람 의사를 밝혔지만 그것만으로는 의혹 해소에 역부족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라며 “문제가 된 건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용기록과 악성코드를 심기위한 이메일 같은 기본 자료들이다. 국정원이 정말 결백하다면 관련 자료를 빠짐없이 제출하고 실무자들에 대한 조사 요구에도 응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직원 자살 보도의 ‘기시감’

국정원 직원이 결백을 주장하며 자살을 한 상황에서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이 이를 빌미로 역공을 하게 될 경우 진상규명이 요원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2005년, 안기부 특수도청 팀장이던 공운영씨가 자살을 시도했으며, 2014년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재판 과정에서 증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던 국정원 대북파트 권모과장이 자살을 기도했다. 경향신문은 과거 유사사례를 언급하며 “그때마다 윗선을 향한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2014년 국정원 권모과장의 자살 기도 직후 보수신문은 간첩조작 증거가 드러났음에도 국정원에 동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사설을 쓴 전례가 있다. 2014년 3월25일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검찰도 평생 대공수사에 헌신한 국정원 직원들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해선 안 된다”면서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를 문제 삼았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자살시도 국정원 요원의 토로도 눈여겨봐야>에서 “권 과장이 검찰 수사가 억울하다며 자살까지 기도한 것을 보면 국정원이 지금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면서 “흔들리는 국정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야말로 정권이 해야 할 긴급한 책무”라고 썼다.

   
▲ 지난해 3월25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사설.
 

‘국가안보’ 내세우며 로그기록 요구 차단

이번에도 보수언론의 대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안보’를 내세우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자료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동아일보는 “이번 사안의 핵심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으로 민간인의 스마트폰까지 들여다봤느냐”라면서도 “(새정치연합이) 해킹 프로그램의 사용 기록을 원본 로그파일로 요구하는 것은 국정원의 정보역량을 해치고 정쟁만 키울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세계에 정보기관의 활동기밀을 이렇게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사실상 정보기관이 없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북한의 상시적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도 당연히 (해킹을) 해야 하고 더 발전시켜야 하지만 국정원의 신뢰상실과 정치분열 때문에 손발이 다 묶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역시 “근거 없는 의혹제기나 무분별한 폭로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악용한다는 비판을 부를 것”이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안철수 의원의 상임위 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다.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상임위원 변경절차를 통해 정보위원 자격으로 국정원 현장조사에 참여하기 바란다”는 것이다. 정보위는 대부분의 활동을 비공개로 진행한다. 동아일보는 이 점을 이용해 안철수 의원의 공개적인 규명활동에 제동을 걸려는 것으로 보인다.

   
▲ 20일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사설.
 

독재자 이승만이 민주주의의 초석?

보수언론이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일을 맞아 또 다시 이승만 재평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신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가들과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온갖 내분을 일으켰던 사실. 종신독재를 추구한 점. 정적을 사형시키고 4.19혁명 때 국민들에게 발포한 사실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올해는 이승만 서거 50주년이자 그의 탄생 140주년이 되는 해”라며  “이승만은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제헌국회 의장으로서 대한민국 헌법 제정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한 배경을 두고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하고, 6.25 전란의 비극에서 나라를 지켰으며, 한미동맹의 혜안으로 안보를 반석에 올려놓은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 20일자 중앙일보 기사.
 

조선일보는 서거 50주기 특집 기사를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서거한 하와이 병원에 “표지석을 설치해야 한다”는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박사 숭모회’ 김동균 회장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박진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 회장의 기고를 게재했다. 박진 회장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였으며 영광과 굴욕의 역사를 몸소 겪은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라는 생각이 더욱 강력해졌다”면서 “애국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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