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국정원 해킹 문건에 내 이름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본명인 조현호가 아닌 ‘조현우’ 기자로. 복잡한 설명이었지만 미디어오늘의 조현우 기자 명의로 돼 있는 A4 한 장짜리 MS 워드 문서가 이탈리아 스파이웨어 업체 해킹팀 첨부파일로 들어있다는 요지였다. 순간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문서의 내용을 물어본 뒤 해당 파일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 파일엔 내가 ‘지난 2013년 10월 4일(문서파일이 해킹팀에 첨부된 날짜) 천안함 1번어뢰의 부식 사진을 문서에 첨부한 채 성명 불상의 박사(천안함 전문가)에게 당시 1번어뢰의 글씨가 거의 지워진 것에 대해 어떤 견해인지 회신해달라’고 글을 쓴 것으로 돼 있었다. 문장을 쓰는 스타일도 다르고 미디어오늘을 표기할 때 ‘「」’ 표시를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내 이름을 내가 틀리게 썼을 리도 없었다.

혹시 몰라 이런 취지의 문서를 작성해 메일 발송을 한 일이 있는지 내 이메일을 샅샅이 뒤져봤다.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메일에는 톰 에클스 국제조사단 미국조사단장이 “어뢰 폭발의 열기에도 어떻게 글씨가 없어지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는 발언 일부를 소개하면서 ‘최근에 촬영된 사진에서 1번 글씨가 완전히 없어졌으며’라고 물어본 대목을 내가 작성한 것으로 나온다. 

이 중 에클스가 저 발언을 했다는 것은 허위일 뿐 아니라 교묘하고 치명적인 왜곡이다. 잠수함 전문가인 안수명 박사가 2013년 2월 방한해 천안함 재판중인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와 변호인단, 미디어오늘 등 취재진을 만난 일이 있다. 당시 안 박사가 미 해군으로부터 일부 받은 자료 하나를 건네줬다. 2010년 8월 5일 미국 언론들과 나눈 대화의 일부였다. 당시 대화에서 한 미국 신문 기자가 ‘조사단이 말하는 어뢰의 글씨(handwriting)가 어뢰 폭발의 열기에도 어떻게 없어지지 않았느냐’고 질문한 대목이 나온다. 미국 신문 기자가 한 질문을 해킹 문서파일에선 마치 에클스가 가진 의문처럼 발언 주체를 뒤바꿔놓은 것이다. 이 내용은 2013년 2월 20일자로 미디어오늘이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에클스 단장이 한 발언은 미국신문 기자 질문에 “내가 여러분을 설득시키는데 있어 그것(1번 글씨)이 있든 없든 꼭 필요하지 않다. 나는 그 글씨에 의존하지 않았다”였다.

   
국정원이 작성해 해킹팀에 넘긴 미디어오늘 기자 사칭 이메일 첨부파일. 사진=위키리크스
 
   
톰 에클스 전 천안함 합조단 미군측 조사단장이 2010년 8월 5일(현지시각) 미국 언론인들과 간담회(roundtable)에서 발언한 내용 속기록. 안수명 박사가 입수한 미 해군자료.
 
   
톰 에클스 전 합조단 미군측 조사단장의 미국언론과 대화 속기록. 안수명 박사가 확보한 미 해군자료.
 

또한 1번 글씨가 지워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으며, 이런 내용을 당시 내가 들었다면 즉시 취재해 보도했거나, 적어도 확인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천안함이 침몰한 2010년 3월 26일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틈틈이 추적하거나 재판내용을 꼼꼼히 기록해왔다. 5년 전 수많은 기자들이 달라붙었으나 정부의 최종 발표가 난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천안함 법정에 와서 취재하는 기자는 늘 미디어오늘 뿐이었다.

지난 5년 넘게 미디어오늘에서 천안함 의혹 보도 또는 진행과정을 전달해왔으나 여전히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미디어오늘이 일방적이거나 누구를 음해하거나 사익을 위해 보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법정에서 나온 증언 또는 이에 대한 상대방의 목소리와 증거자료를 보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국가정보원이 운영해왔다는 5163부대는 왜 기자 이름까지 도용해 누군가를 감시하고자 한 것일까. 미디어오늘이 보도할 때 등장하는 해외 취재원을 비롯한 인사들에게 이런 가공의 메일을 보내 스파이웨어를 심으려 한 것은 이들이 어떤 생각과 정보를 갖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건을 처음 접한 이후 평소 이메일 취재 및 인터뷰를 했던 서재정 국제기독교대 국제정치학과 교수와 재미 잠수함 전문가 안수명 박사,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 분석실장 등에게 ‘조현우 기자’ 명의로 된 문제의 첨부파일이 포함된 메일을 받았는지 물었다. 이들은 모두 그런 의심스런 메일을 받았거나 열어본 기억은 없다고 답해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병호(오른쪽) 국정원장이 지난 12일 회동한 모습.
@연합뉴스
 

서재정 교수는 “그 기사 봤다”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사생활과 개인정보가 이렇게 침해될 수 있다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우려했다. 그는 “다행히 ‘조현우’ 기자 명의로 온 그런 이메일을 받은 기억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이메일을 통해서 스파이웨어가 들어오지 않았는가 의심은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수명 박사는 “나는 내가 받고 싶다고 생각되는 이메일만 받고, 내가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메일은 안받는다”며 “나는 기자 사칭 행위라고 생각되는 이메일을 받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국정원이 내게 그러한 이메일을 안보냈다는 증거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공의 허위 공작문서를 만든 집단은 천안함 전문가들의 생각과 행동, 견해를 통제하지 못하고 언론을 통해 국민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자로서도 이번 경험은 누군가의 섬뜩한 손아귀와 조우한 듯했다. 

   
조현호 기자
 

그렇다 해도 단순한 정부 비판을 넘어 의문의 사건을 재검증하려는 기자와 그 취재원을 뒷조사하겠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천안함 사건에 무언가 감춰진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커질 것이고, 그에 따른 관심도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은 천안함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분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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