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버스 요금이 오르면 버스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달 27일 서울시내 버스요금이 150원 인상하고 난 이후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지부 조합원들은 시민들에게 “버스 요금도 올랐는데 뭘 더 요구하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공공운수노조는 버스 요금 인상에 반대했다. 이들은 버스준공영제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시민들의 버스 요금이 올라도 시민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버스 준공영제를 총괄하는 서울시와 시에서 지원금을 받는 버스운송사업조합(버스 회사 66개 소속), 버스 노동자 대다수가 속해 있으며 ‘어용’이라고 비판받는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노련) 지도부 등 세 주체는 공생관계다. 이 관계가 탄탄하게 유지되도록 준공영제가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소위 ‘왕따’를 당하고 있다. 

현재 서울지부의 조합원은 버스 기사와 정비사를 합해 270여명이다. 과도한 정비사 인원 감축, 준공영제로 전환하면서 교묘하게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재입사를 강요해 호봉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 자노련 눈 밖에 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5년여의 준비기간 끝에 공공운수노조가 2011년 11월 출범했다. 이들은 자노련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버스사업주들의 모임인 버스운송사업조합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면서 제대로 감독하지 않는다는 비판하며 버스운송사업조합의 방만한 경영, 사업주의 ‘관리자’로 전락한 자노련의 행태를 함께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서울시 대학동 한남운수 인근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이병삼씨도 정비 노동자를 감축하는 회사에 저항하다 해고됐다. 회사는 정비 노동자였던 이씨를 포함해 6명의 정비노동자를 운전기사로 일하도록 했다. 현재 한남운수 정비사는 규정(1대 당 정비사 0.1458명)에 비해 10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 지난 4월부터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 소속 버스노동자들이 버스준공영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서울시 버스사업주는 현재 1대당 정비 노동자 0.1458명을 고용해야한다. 즉 100대당 15명의 정비 노동자가 필요하다. 정비 노동자의 숫자를 줄이면 회사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지만 시민들의 발은 그만큼 위험해진다. 정비사들의 노동 강도도 세졌다. 물론 이들의 임금은 서울시에서 규정에 맞게 지원하기 때문에 줄어든 정비 노동자 몫의 임금은 회사의 다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  

천막에서 만난 정비사들은 공통적으로 “미리 예방정비를 할 수 없고, 버스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고치는 수준이며 정비 부품을 정품으로 쓰지 않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라며 “돈 때문에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준공영제로 전환하면서 정비사들은 임금에서 손해를 봤다. 공공운수노조 정비사지회 송영학 부지회장은 “준공영제를 한다면서 계속 근무를 해온 정비사들에게 재입사 형식으로 계약서를 다시 쓰게 했다”며 “그 전까지 근무했던 호봉이 다 없어지게 된 정비사들이 많았고, 이는 나중에 퇴직금 정산에서도 손해”라고 말했다. 

연봉제로 전환하며 수당을 없앤 회사도 있었다. 준공영제가 되면서 서울시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그전에 만연했던 임금 체불 등의 문제는 해결되고 전체 임금 총액이 오르긴 했지만 회사는 그 와중에 노동자들을 착취한 셈이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까지 맞물려 버스 기사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입사 경쟁이 시작되자 금품이 오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양교통이다. 300만원을 자노련 간부에게 건네 ‘입사추천서’를 받아야 입사가 가능했다. 여러 조합원들은 “안양교통은 2005년부터 입사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돈을 내고 들어갔다”고 증언했다. 

안양교통의 채용비리는 검찰 수사를 받는 등 계속 문제가 돼왔다. 이에 문제제기 하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두 명을 노조가 부당하게 인사에 개입했다며 해고했다. 공공운수노조에서 형평성을 문제제기 하자 자노련 소속 조합원도 두 명 해고했다. 

안양교통 인사담당자와 자노련 소속 해고자 간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회사 측은 “민주노총 조합원 해고 문제 해결되면 다시 복직시켜주겠다”며 자노련 소속 조합원을 설득했다. 이와 관련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놓은 상황이다. 조합원들은 “입사를 위해서 안양교통 뿐 아니라 대부분 버스 회사들도 300만원~500만원까지 준비해야 했다”고 전했다.    

공공운수노조 박상길 서경강지부장은 “한국노총 자노련은 노조가 아닌 회사의 ‘관리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에 따르면 자노련 지부장 선거에 회사가 개입을 하고 지부장은 자노련 조합원들을 관리하며 회사의 신임을 얻는 식이다. 

박 지부장은 서울교통 해고노동자다. 같은 영업소에서 근무하던 동료노동자가 자노련 지부장 선거에 나갔는데 회사 측에서 ‘사내에 호랑이가 두 마리 있을 수 없다’며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 끝까지 선거운동을 했던 후보자와 박 지부장은 2005년 회사에서 해고됐다. 해고 사유는 불법단체 가입, 유인물 배포 등 17가지. 

   
▲ 지난 4월부터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 소속 버스노동자들이 버스준공영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서울시-버스회사-한국노총 카르텔을 유지하는데 활용되는 준공영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각종 차별에 시달린다. 회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랑 밥도 먹지 말고 얘기하지 말라”는 것은 예사다. 현재 서울시내버스의 광고수입은 버스 노동자 자녀 학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학자금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눈에 띄지 않는 차별도 많았다. 보통 버스를 새로 구입하면 ‘고참’에게 배정된다. 버스 기사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진급’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제외된다. “서울시내 헌차들은 다 우리(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끌고 다니는 거야.” 

버스 기사들은 일주일에 두 번 쉰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대부분 주말에 쉬고 싶어하지만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평일에 주로 쉰다. 단순한 접촉 사고가 발생하면 간단한 징계를 받는데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좀 더 무거운 징계를 받는다. 

준공영제 이후 노동자들의 부담이 커진 측면도 있다. 준공영제 이전에는 간단한 사고에 대해 회사가 비용을 부담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버스기사를 징계하는 식으로 책임을 묻기 때문에 이들의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보성운수 이명수 지회장은 “사고가 나 하루 승무정지 징계를 받으면 월급 총액에서 약 40만원을 손해 보는데 무사고 수당과 만근 수당 등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버스 노동자들은 사고가 발생해도 자비로 처리하고 징계를 피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사회공공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버스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1.7시간, 월 평균 254시간이다. 이는 전 사업 월평균 근로시간인 180시간보다 74시간이나 길다. 긴장감도 높다. 배차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평가항목이기 때문이다. 

시내버스 사고 원인은 압도적으로 ‘배차시간 부족’이 1위로 나타난다. 교통사고 원인으로 ‘배차시간 부족’을 답한 비율이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1999년 응답자의 49.5%가 이 답변을 원인으로 꼽았는데 준공영제 실시 이후인 2006년에는 50.9%, 2009년에는 52.8%, 2012년에는 58.6%까지 상승했다.
 
버스 노동자들은 ‘암행’이라고 불리는 모니터링 제도도 과도한 감시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모니터링 요원이 손님으로 가장해 버스에 타 여러 항목들을 평가해 사업주에게 보낸다. 사업주는 이를 근거로 다시 버스 노동자들을 징계한다. 평가 항목에는 운행시간에 관한 내용부터 차량 청소 상태까지 다양하다. 서울시는 버스에 ‘에코드라이버’라는 기계도 장착했다. 연료절감을 위해 기어변속, 급가속 등을 확인하는 장치다. 

송영학 정비지회 부지회장은 “기어변속을 점수로 측정하는데 기사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연료절감에는 도움이 좀 될지 몰라도 RPM이 많이 올라가지 않도록 기어변속을 많이 하다보면 엔진에 무리가 와서 차가 더 빨리 망가지고, 언덕에서도 RPM을 높이 올리지 못하니까 승객들은 불안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엑셀 페달을 세게 밟아줘야 할 때도 밟지 못한다는 뜻이다. 

버스 기사들이 “과도한 감시”라고 항의하면 서울시는 버스회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버스회사는 서울시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버스회사 66개 중 자본잠식업체는 2011년 5개, 2012년 6개, 2013년 8개로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 지원금으로 이 회사들을 살리는 동안 버스 노동자들만 괴로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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