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당사자의 신청이 없어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게시글 심의를 통해 삭제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심의규정을 개정하려는 시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각종 공인 비판을 사전검열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9일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을 개정하려 했으나 무산되자 다음 번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표현의자유특별위원장은 12일 성명을 통해 “방심위의 이 같은 시도는 수시로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대통령, 고위공직자, 권력자와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손쉽게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우려가 매우 크다”며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비판,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사이버명예훼손전담팀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 대통령 발언 이후 ‘선제적 대응’ 방침을 내놓은데 이어 이번엔 방통심위원회까지 나선 것이다. 

유승희 의원은 “온라인 명예훼손에서 필수적으로 살펴야 하는 ‘비방의 목적’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게시 정보의 사실여부와 공익 목적에 대한 조사와 판단이 필요한데도 수사권도 없는 방심위가 피해자의 소명의견과 제출된 자료에만 의존하여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방심위가 명예훼손 관련 규정 개정을 통해 검찰이 못한 선제적 대응을 대신하여 대통령이나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번 심의규정 개정의 목적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풍자 그림을 그린 작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기자 모두 보수시민단체에 의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일부 보수 편향적 단체나 개인들이 대통령과 국가기관을 대신해 명예훼손죄로 고발장을 내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는 상태에서 심의규정이 변경될 경우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난해 4월 16일 7시간 만에 중앙재난안전본부를 방문했다. 사진=청와대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시민언론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참여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단법인 오픈넷,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9일 공동성명을 내어 방심위의 이러한 개정 시도에 대해 “명예훼손 법리를 남용하여 당사자의 신고가 있기 전에 ‘선제적 대응’을 통해서 온라인 공간에서의 대통령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러한 ‘선제적 대응’은 주로 공인 혹은 고위공직자가 자신에 대한 비판글에 대해 직접 고소‧고발해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이 없이 제3의 국가기관이 직접 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서 남용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들은 “또한 서적, 음반, 영화, 방송 다른 어느 매체에서도 명예의 당사자가 가만히 있는데 행정기관이 나서서 특정 콘텐츠를 규제하는 사례는 없다”며 “인격권이나 지적재산권 등 개인의 권리 침해에 있어 개인의 적극적 의사가 없음에도 행정기관이 먼저 나서서 이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 후견주의의 다른 모습이며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이러한 방심위의 개정 시도는 당사자의 신고가 있기 전에 온라인 공간에서의 대통령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여 명예훼손에 대한 법리적 해석의 남용에 해당한다”며 “정치인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있으며,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언론위원회는 “국가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오히려 직접 심의하고 규제하겠다는 방심위의 이번 심의규정 개정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아울러 방심위의 결정이 법원을 통해 번복되는 사례가 빈번한 것에서 보듯이 현재 방심위에 요구되는 것은 공정성과 권위에 대한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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