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이어 새누리당에서 끝내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퇴하게 한 사태에 대해 유 의원과 함께 원조친박으로 알려진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지금은 전제군주 왕정시대가 아니라며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이 전 위원은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의 헌법 제1조 1항 언급이 반향을 낳은 이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권력에 맞서 사투를 벌이다 내뱉은 말이이서 진정성을 얻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위원은 9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 사태에 대해 “유감 천만한 일이며 지금은 참담한 심정”이라며 “당이 의총을 열어 표결로 정리하지 못한 것 뿐 아니라 유 원내대표가 왜 사퇴해야 하는지, 그를 왜 쫓아내야 하는지 누구도 분명한 이유를 얘기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참담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의총에서 나온 유 원내대표 사퇴 이유로 제시된 △(박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주장과 △경제활성화 정책을 뒷다리 잡았다는 주장 △대통령이 신임하지 않아 당청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주장 등에 대해 이 전 위원은 “앞의 두가지는 이치에 맞지 않고, 틀린 억지 주장이며, 세 번째 것은 새누리당의 민낯을 드러낸 부끄러운 얘기”라고 반박했다.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사진=이혜훈 홈페이지
 

이 전 위원은 “배신했다는 주장은 당헌을 바꿔 경제민주화를 넣어 대통령에 당선돼셨는데 경제민주화를 열심히 하려는 유 원내대표에게 배신했다는 것이야말로 이치에 맞지 않은 억지 주장”이라며 “경제활성화 정책에 뒷다리 잡는다는 것도 취임 4개월 밖에 안된 유 원내대표에게 할 얘기가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당의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완구, 최경환이었는데 왜 유승민에게 뒤집어 씌우느냐”고 반문했다.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 전 위원은 “이런 주장이야 말로 행정부의 수반과 의회의 관계가 (수평적 관계가 아닌) 상하 조정, 명령 하달, 복종관계여야 한다는 뜻”이라며 “당청 관계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문제의식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위원은 “상호 존중과 배려를 통해 서로 신뢰해야 할 관계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지금은 전제군주 왕정시대가 아니다”라며 “문제있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부끄러운 얘기이다. 그래서 참담하다”고 개탄했다.

유 원내대표 사퇴권고안 처리가 표결없이 박수로 이뤄진 것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유 원내대표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퇴할 의사가 없었으나 의원총회에 의해 선출됐으니 진퇴도 의총에서 결정한 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퇴(退)를 결정하는 과정에 하자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회법에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이런 민주적 절차도 지키지 않은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어떻게 이것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의가 없느냐고 하느냐.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인사들이 당 지도부에 있는 것을 두고 이 전 위원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수십년간 수많은 희생을 하고 여기까지 와서 한 세대 만에 경제성장 민주화를 달성한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라 하고, 민주화운동 평생 헌신했다는 분이 지도부 안에도 있다”며 “절차 하나하나의 정당성 갖추는 것이 민주화 아니냐”고 되물었다.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것과 관련해 이 전 위원은 “이미 짜놓고 고스톱 치는데 (하면 뭣하나 하는) 무용론 때문에 들러리 서기가 싫었다, 그래서 화가 나서 중간에 나왔다고 하는 의원들도 있었다”며 “아무리 해봐야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력함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런 의원들을 탓할 수 있느냐, 모두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7일 국회에서 자신의 거취 논의를 위해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사태가 벌어진 원인에 대해 이 전 위원은 “누구(박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라 할 수 있느냐, 다 문제”라며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유 원내대표가 ‘헌법 제1조 1항에 규정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에 2주간 버텼다’고 한 사퇴의 변이 많은 이들에 울림과 반향을 준 것에 대해 이 전 위원은 실제로 청와대와 싸우다 사퇴하면서 한 말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얻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보수 정당이면서도 보수가 지켜야 할 헌법의 가장 첫 조항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반어적 의미였는지에 대해 이 전 위원은 “(보수정당에게) 가장 중요한 1조 1항이 가장 소홀히 다뤄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유 원내대표의 그 말이 립서비스에 불과하면 감동을 못줬을 것”이라며 “정치생명을 걸고 (박 대통령의 청와대) 권력과 사투를 벌이다 한 말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위원은 “국회법 개정안 처리 훨씬 이전인 지난 5월 초 공무원 연금 개혁법이 통과된 직후 청와대가 ‘법을 잘못 처리했다’고 싸움을 걸어왔다”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두달 넘도록 지루한 싸움을 하면서 유승민 쫓아내기가 시작돼 그 권력에 맞서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청와대) 권력에 맞서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겨운 싸움인지 알지 않느냐”며 “사투를 벌이는 두 달 동안 ‘저 사람이 립서비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투를 벌이고 난 뒤 한 말’이기 때문에 진정성과 울림을 줬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과의 오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 전 위원은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얘기였으며, 모두에게 목말랐던 지적이었기 때문”이라며 “기자회견을 보고 난 뒤 서울대 모 교수 두 명한테서 문자가 왔다. ‘같이 뉴스를 본 서너명이 할 말을 잃고 숙연해졌다, 정치인 따위가 우리에게 감동을 줄지 몰랐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 중 한 명의 교수는 평소 정치인을 좀비보듯하던 분인데, 기자회견 이후 전화까지 걸어와 ‘대선 캠프 만들면 참여하겠다’고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유 원내대표가 아닌 것은 아니라 얘기하는 엘리트주의자라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중학교 동창)의 평가에 대해 이 전 위원은 “유 원내대표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 2011년 공천권을 행사를 앞두고 당을 위해 헌신짝처럼 던진 일도 있다”고 전했다.

향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운명에 대해 이 전 위원은 “향후 험로가 예상된다”며 “어려운 길로 들어섰다. 국민 마음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첫걸음을 뗐으니 험로가 남은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민의 마음에서 더 멀리가기 전에 빨리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대통령이 왜 유 원내대표에 마음이 돌아서고 변했는지에 대해 이 전 위원은 “사람의 특성”이라며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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