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을 통해 한 이슈에 어뷰징 기사를 1000여개 생산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현재 다음카카오 대외협력실 차장의 석사학위 논문 ‘포털 뉴스 서비스에서의 기사 어뷰징 사례와 전문가 인식 연구’가 그것이다.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황용석 교수의 지도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포털의 ‘클러스터링’ 대응책으로 일부 언론사들은 ‘엎어치기’라는 신종 어뷰징을 선보이고 있다. 한 인터넷매체는 포털 제휴가 끊긴 이후 트래픽과 광고수익이 급락해 폐업 위기를 맞기도 했다.

‘수지 열애설’, 하루에 기사 1840개 쏟아져

논문은 걸그룹 미스에이의 멤버 수지가 배우 이민호와 열애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디스패치’ 보도 이후 언론이 하루 만에 네이버와 다음에 1840개의 기사를 쏟아냈다고 분석했다. 이들 기사 대부분이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 기사로 추정된다. 

일주일 동안 포털에 개재된 관련 기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 3053개의 기사에서 ‘수지’라는 단어가 총 1만6516번 사용됐다. 기사당 ‘수지’를 5번 이상 언급한 셈이다. ‘이민호’라는 단어는 1만4010개 검색됐다. 한 기사에 ‘수지’를 10번 이상 언급한 기사도 79개로 나타났다. 이는 해당 기사에서 실시간 검색어에 맞춰 같은 단어를 반복해 썼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 '수지-이민호 열애설'이 보도된 이후 일주일동안 양대포털의 '수지' 키워드가 게재된 기사 현황. 열애설이 보도된 첫날 기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수지-이민호 열애설’ 관련 어뷰징 기사는 실시간 검색어에 맞춰 쓴 기사인만큼 시간이 지나자 관련 기사의 수가 급락한다. 일주일 동안 포털에 검색된 관련 기사 3053개 중 절반 이상이 열애설이 보도된 첫날에 이뤄졌다. 다음날이 되자 기사는 554개로 급락했고, 그 다음날에는 429개로 떨어진다. 이후에는 하루당 100개 미만의 기사가 송고됐다.

평균적으로 파악했을 때 어뷰징 기사의 생산주기는 ‘수지-이민호 열애설’보다 짧다. 이현재 차장은 “그나마 톱가수와 톱배우의 열애설로 이슈가 3일 넘게 진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 miss A 수지. ⓒ jyp 홈페이지
 

연예·스포츠만? 정치도 어뷰징 대상

어뷰징은 주로 연예·스포츠 분야 기사에 한정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분야에 상관없이 생산되고 있다. 

지난 4월4일 경향신문이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비타500 박스에 담긴 300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당일 관련 기사 740개가 양대 포털에 쏟아졌고, 둘째 날에는 60개의 기사가 나왔다.

이현재 차장은 “어뷰징의 대상이 되는 기사는 비단 연예와 스포츠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면서 “어뷰징 기사는 이슈 검색어에 오르는 키워드를 좇아 생산되기에 특정 영역 구분 없이 폭 넓게 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비타500 정치자금' 의혹 보도 이후 양대포털의 '비타500'키워드가 들어간 기사 현황.
 

미래 예견? 신종 어뷰징 ‘엎어치기’ 

어뷰징 기사를 줄이기 위해 포털은 유사한 내용의 기사를 하나로 묶는 ‘클러스터링’ 방식 검색 결과를 도입했지만, 포털이 보완책을 제시할수록 언론의 꼼수도 발전했다. 최근에는 포털의 검색 알고리즘이 ‘특정 키워드로 작성된 원본 기사’ 또는 ‘최초 보도’에 가중치를 둔다는 점을 악용한  ‘엎어치기’라는 신종 어뷰징 행태가 나타났다. 

엎어치기는 기존에 송고된 기사의 내용을 새로운 이슈로 뒤바꾸는 것을 말한다. 논문에 따르면 2014년 4월10일 ‘모델출신 A씨의 성추행 혐의’가 SBS를 통해 최초 보도됐다. 그러나 네이버에서 ‘오래된 순’으로 기사를 검색할 경우 SBS의 최초기사보다 먼저 보도된 기사가 나온다. 

‘엎어치기’에 관해 해당 논문에서 한 경제지 기자는 “포털에 기사를 전송해 둔 이후에 특정 급등 검색어나 핫이슈가 나타나는 시점에 기존에 전송해 놓은 기사를 새로운 기사로 갈아엎어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엎어치기’ 행태는 지난달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바 있다. 지난달 15일 아침 8시에 발생한 ‘북한군 귀순사건’의 경우 합동참모본부가 당일 오전 10시40~50분 경에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했다. 그러나 동아닷컴과 서울신문(온라인뉴스부)의 관련 기사의 네이버 전송시간은 짧게는 하루 전, 길게는 9일 전으로 돼 있다. 동아닷컴의 ‘국무총리 후보 황교안 총리 내정…박 대통령 국정방향 잘 이해’ 기사의 입력시간은 5월21일 아침 7시3분으로 돼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황 후보자 내정 발표시간은 그날 오전 11시였다. 

   
▲ 10대 북한군은 지난달 15일 귀순했지만, 스포츠동아의 기사 송고시간은 그 이전으로 나온다.
 

인터넷 언론, ‘어뷰징’으로 트래픽 채워 

논문에 따르면 인터넷언론은 주로 포털에 송고하는 어뷰징 기사로 트래픽 대부분을 채웠고 포털 의존도 역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신문 A사가 포털과 검색 제휴가 돼 있었던 10개월 동안 높은 트래픽을 발생시킨 검색 키워드를 종합해보니 대체로 실시간 검색어 이슈였다. ‘오로라 공주’, ‘임시완 전교 1등’, ‘서장훈 이혼 이유’, ‘고영욱 퇴출’, ‘이예지’, ‘이보영 민낯’, ‘불법도박 연예인’ 등이다. 

논문에서 A사의 대표는 “직원들 월급 주고 매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어 포털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수익을 위해 기사 어뷰징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포털에서 퇴출되자 트래픽·광고 곤두박질

인터넷신문 A사는 2013년 상반기에 특정 포털과 검색제휴를 맺었고 같은 해 11월 퇴출됐다. 이 매체는 검색 제휴가 종료된 이후 트래픽이 급감했다.

2013년 11월, 포털과 제휴 종료 직전 3개월 동안의 트래픽은 총 순방문자(PV) 116만5161명, 월평균 38만8387명이었다. 그러나 포털과 제휴 종료 이후 3개월 동안 총 PV는 13만1598명, 월 평균 4만3866명으로 급락했다. 제휴 종료 직전 3개월과 비교해보면 9분의 1로 줄었다. 

트래픽이 줄어든 만큼 광고수익도 급락했다. A사는 구글의 애드센스(AdSense)에 가입해 2~3개의 광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었는데, 2013년 10월 기준 월 500달러였던 해당 광고 수익은 제휴 종료 이후 50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현재 차장은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었던 인터넷신문 A사는 폐간의 위기로 치닫게 됐다”면서 “이와 같은 상황이 비단 이 인터넷신문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경우는) 6000개가 넘는 인터넷 신문 중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인터넷신문 A사의 포털 검색제휴 종료 전후 광고수익 변화. 이 언론사는 2013년 12월 포털의 검색제휴가 중단된 후 트래픽과 광고수익이 급락했다.
 

언론, ‘어뷰징’책임 면하기 어려워

언론이 적극적으로 자정 노력을 하지 않는 배경에는 ‘닷컴 모델’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론에서 이현재 차장은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언론사 닷컴사의 구조적인 문제와 인터넷 신문사들의 수익 모델 부재는 기사 어뷰징을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해 다양한 비판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현재 차장은 포털이 어뷰징의 환경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 스스로 생산한 기사이기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자성의 목소리와 포털의 자구책만으로는 기사 어뷰징 철폐에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어뷰징 기사는 이용자로부터 언론의 신뢰 추락을 견인하며 경영을 힘들게 하는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바일’에 대한 연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 논문의 한계로 꼽힌다. 이현재 차장은 “국내 포털의 트래픽 상당수가 PC에서 모바일로 전이되었기에 스마트폰 환경에서의 어뷰징 실태 연구가 추가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어뷰징의 근본적인 문제로 진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현재 차장은 지난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실시간 검색어를 어뷰징 기사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지만, 검색 서비스는 어뷰징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 이용자에게 정확한 검색결과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어뷰징은 이 같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어뷰징 해법? 실시간 검색어를 없애면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