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시절 탤런트 박용식은 4년 동안 방송출연을 할 수 없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빼닮았다는 이유로 방송출연을 금지 당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대통령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건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민주화 이후 정치풍자 개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네로25시’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이후 다시 침체기를 맞았다. 정치권력의 직접적인 압력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징계’, ‘심의’, ‘소송’이 제작진과 출연자를 옥죄고 있다. 최근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 SBS <웃찾사>의 ‘LTE A 뉴스’가 정치풍자 코미디를 선보이며 다시 정치풍자가 자리를 잡는 듯 보이지만 외압논란에 휘말리는 등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 정치풍자 프로그램 수난사.
 

민상토론, 결방에 제재까지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은 지난달 2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메르스와 관련한 정부 대응을 개그 소재로 다루면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풍자한 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였다. 심의위원회의 야당 추천인 장낙인 위원이 “문형표 장관이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말해놓고 자기는 마스크를 쓰고 나오니까 국민이 황당하다는 것을 비판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3(여):2(야)로 제재안이 가결됐다.

앞서 지난달 21일 ‘민상토론’이 결방돼 외압의혹이 일었고 제작진은 “완성도가 낮아 녹화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10월 <웃찾사> 68회의 ‘LTE뉴스’의 VOD와 인터넷상의 다시보기가 삭제됐다. 외압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시청자게시판에 해명글을 올리고 방송내용에 일부 부정확한 정보가 있어 삭제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당선자에게 훈계했다고 제재받기도

정치권력이 불편한 프로그램에 대해 ‘표적·정치심의’를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tvN에서 방영되는 의 ‘여의도 텔레토비’가 선거방송심의를 받았다.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이 “박근혜 후보 역할의 출연자가 유독 욕설과 폭력이 심한 반면 안철수 후보 역의 출연자는 순하게 나오고 욕도 안 해 시청자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야 정당의 대선후보를 텔레토비 캐릭터에 비유한 내용이다.

KBS <개그콘서트>는 2013년 1월에도 행정지도를 받았다 ‘용감한 녀석들’의 개그맨 정태호가 2012년 12월23일 방송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님 잘 들어. 당신이 얘기했듯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 기업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그 수많은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절대 하지 마라. 코미디는 하지마. 국민들 웃기는 거 우리가 할 테니까. 나랏일에만 신경 쓰기 바란다”는 발언을 했다. 심의위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훈계조 발언 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제재를 내렸다.

   
▲ KBS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훈계를 했다가 제재를 받았다.
 

무한도전 표적징계 의혹

정치권력을 불편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에 한해 표적 징계를 한다는 의혹도 있다. MBC <무한도전>의 경우 표면적인 징계사유는 막말 등을 통한 ‘품위유지 위반’이나 ‘간접광고규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등이지만 실상은 정권을 불편하게 해 징계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무한도전은 ‘형광등 100개를 켠 듯한 아우라’, ‘광우병 걸린 소’ 등 정치를 풍자하는 내용의 자막을 내보냈다. 철거민, 종편 등 사회적 현안을 다룬 아이템을 여러차례 선보이기도 했다.

MBC, 사측이 직접 징계

MBC의 경우 사측이 자체적으로 징계를 한다. 2013년 MBC는 자사 라디오 프로그램인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김재철 전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을 풍자하는 내용을 방송한 PD에게 정직 6개월 징계를 내렸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해 ‘취업규칙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해당 PD는 징계무효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17일 징계무효 최종 판결을 받았다. MBC는 회사를 풍자하는 내용의 웹툰을 그린 권성민 PD를 해고하기도 했다.

대선후보 성대모사 금지?

앞서 2007년 MBC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는 무소속 이회창 당시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후 이회창 후보의 성대모사를 하지 않아 외압설이 제기됐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이회창, 이순재, 손석희 등 유명인들의 성대모사를 해왔다. 당시 제작진은 “제작진 내에서 이회창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여러 부분을 고려해 한동안 이 후보의 성대모사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개그맨 상대 소송걸기도

개그맨에게 소송도 제기됐다. 2011년 KBS <개그콘서트> ‘사마귀유치원’에서 개그맨 최효종은 국회의원을 풍자하는 개그를 선보였다가 강용석 전 의원에게 ‘국회의원 집단모욕죄’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했다. 이후 강용석 전 의원이 ‘아나운서 집단모욕죄’로 재판 중인 상황에서 ‘집단모욕죄’가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고소를 했다고 밝히며 소를 취하했다. 특이한 경우로 볼 수도 있지만, 개그맨이 정치권력을 풍자할 경우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전례가 됐다.

   
▲ KBS '개그콘서트'의 '사마귀유치원'의 출연자였던 개그맨 최효종은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고소를 당했다.
 

제작진 자기검열 초래한다

이처럼 정치권력이 직접적으로 제작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내·외부적인 심의 및 제재가 제작자를 자기검열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유선주 TV평론가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정치적인 외압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면서 “내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정 프로그램이 불편하다며 외압을 제기하는 것 보다는 제작진이 스스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제작단계에서 골라내는 자기검열이 많다. 알아서 기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 지상파방송 PD는 “내·외부적인 심의 제재가 알게 모르게 제작자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PD는 “정치풍자 프로그램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민상토론’이 비교적 높은 수위로 정치를 비판하니, 도드라져 보여 본보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tvN의 SNL코리아의 '베이비시터오디션'. 2012년 대선 당시 여야 대선후보들을 풍자했다.
 

정치 사안 민감할수록 풍자 힘들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일수록 풍자개그가 압박을 받는다. ‘용감한 녀석들’, ‘여의도 텔레토비’등이 대선 정국에서 심의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검열은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MBC라디오에서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의 성대모사를 금지시킨 것 역시 대선 정국이었다. 다른 지상파 방송사 PD는 “여야 대립이 심한 사안이라든지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는 사안을 방송으로 다룰 때는 방송 후 여파까지 담당 PD가 책임져야하는 분위기니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미디多 웃자GO>를 연출했던 OBS 유진영 PD는 “정치풍자는 코미디의 한 장르로서 대중들의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현재는 대중의 요구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정작 이걸 만들어야 하는 대중문화의 생산자들이 위축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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