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능력은 감시가 있을 때 가능하다. 창작자에게는 자주 표절의 유혹이 따라붙지만 작가 신경숙처럼 쉽게 견제 받지 않는 문학권력에 올랐을 때 표절은 반복될 수 있다. 이는 문단계 카르텔 내부에서 잘 나가는 ‘상품’인 신경숙을 비판할 수 없었던 것 뿐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도 침묵했다는 뜻이다. 

“출판문화계에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에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그간의 방식을 지양하고 근본적인 문제까지 총체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전환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란다. 가장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할 출판 분야가 언제까지 신문들의 지배하에 신음하면서 그들의 눈치만을 봐야 한단 말인가? 돈을 떠나서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는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가 지난 2001년 출간한 저서 ‘문학권력’에서 언론과 출판계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이다. 강 교수는 한국 출판계와 언론이 ‘사랑방 좌담회’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봤다. 작가 신경숙의 표절이 오래된 이야기인 만큼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해 침묵한 언론의 관계도 오래 전 이미 제기됐던 문제점이다.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서 신경숙의 ‘딸기밭’ 표절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글에서 정씨는 1999년 한겨레에서 신경숙 표절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서로 사이가 나빠 좋을 것 없는 언론과 문인간의 화해” 탓에 표절 시비를 가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999년 9월 21일자 한겨레 최재봉 문학담당기자는 신경숙의 딸기밭에 대해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10월 12일까지 작가 신경숙과 문학평론가 박철화의 논쟁이 한겨레 지면에서 오갔지만 신경숙의 해명을 끝으로 공방이 마무리 됐다. 

정문순은 문예중앙에서 “박철화는 재반론을 준비했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공방은 한 달을 채 끌지 못했다”며 “덕분에 신경숙은 ‘치명적인 상처’를 모면하면서 책을 낼 수 있었고, 책이 출간되자 그 신문도 ‘딸기밭’을 소개해주는 성의(?)를 베풀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다른 신문들은 표절시비에 대해 침묵했다. 

   
▲ 작가 신경숙. SBS 힐링캠프 화면 갈무리.
 

신씨는 곧 명예를 회복했다. 2001년 4월 27일 조선일보는 신씨와 남진우 평론가 부부를 ‘서재의 결혼’, ‘문학적 영혼의 결합’ 등의 표현을 동원해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표절 시비 이듬해 나온 ‘띄워주기’ 인터뷰는 과연 우연일까? 신씨는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수상자이면서 최근 종신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강 교수에 따르면 남진우는 신문사 논조와 배치되는 사고를 지닌 필자가 절대로 기용되지 않는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평론가다.  

언론이 외면했던 문단 카르텔의 구조는 이렇다. 대형출판사들은 문학잡지를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작품과 간판 작가를 띄운다. 문학잡지 편집자, 편집위원들은 자신들의 직장인 소속 문학잡지를 운영하는 출판사 작품에 대해 좋은 말만 늘어놓는 ‘주례사 비평’을 할 수 밖에 없다. 창비 백낙청 편집인은 창비에서 운영하는 창비라디오에서 “(계간지)편집위원은 건드리기 싫어하는 특정 작가가 있다”며 특정작가란 “그 출판사의 간판 작가”라고 인정했다. 

출판사와 문학잡지가 한 몸인 시스템에 대해 문학 평론가 조영일은 ‘한국문학과 그 적들’에서 “생산과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며 “한국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 중 하나가 문예잡지 없이 문학출판에 뛰어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씨는 “출판과 배본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군소출판사의 문학서적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문학잡지는 신인상제도를 통해 ‘등단 제도’를 장악하고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를 양성한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국문과·문창과 출신 중심의 문인이 많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평론가 조영일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문창과에서 같은 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자기 경험이 부족해 작품이 비슷해진다”며 “문학잡지 위원들도 대부분 문창과 교수들이며 작가들과 연고로 얽혀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문창과, 평론가는 국문과 출신이 대부분이며 외국문학을 배우지 않아 표절을 감별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조 평론가의 지적이다.
 

   
▲ 출판사 창비가 표절 사태 이후 신경숙 작가의 단편 ‘전설’ 이 실린 작품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출고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노컷뉴스 제공
 

문창과를 통해 문단카르텔이 공고해진다는 비판도 있다. 중앙대 문창과는 문창과의 성골로 불린다. 최근 문제가 된 신경숙 작가가 다녔던 서울예대도 명문으로 꼽힌다. 경험을 바탕해 온몸으로 작품을 쓰기보다는 출신과 인맥이 중요해진 문단에서 필사를 바탕한 도제식 교육시스템에서 표절의 유혹은 현실이 된다. 선배 작가의 표절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하기 힘든 구조가 형성된다. 

한국문학의 붕괴는 출판산업의 쇠퇴도 원인이지만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데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독자는 꾸준히 있었는데 그 독자들은 2000년대 일본문학으로 넘어갔다. 베스트셀러가 일본문학으로 도배되면서 한국 문학은 침체됐다. 이는 작가들의 생계와 연결된다. 문화부장까지 역임하며 수년간 문학을 담당했던 A기자에 따르면 단편 소설 한편을 쓰면 작가들은 원고료 100만원을 채 받기 힘들다. 한 달에 작품 하나를 써도 생계가 빠듯한 상황이다. 

하지만 신춘문예 등 문학상 심사위원을 하면 심사비를 10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받게 된다. 따라서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쓰기보다는 문학상 심사위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문학을 담당했던 종합일간지 H사와 S사의 문학담당 기자는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문인들 사이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들이 쓴 기사를 바탕으로 책 광고도 이루어지고 사실 서평 기사 자체가 광고이기도 하다. 사실상 해당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들이 문학상 심사위원을 결정하게 된다는 얘기도 있다.  

문학담당기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학상 심사위원이 지속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해당 문학상 수상 스타일이 예측가능하다는 점에서 문학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세계일보에서 주관하는 세계문학상의 경우 1억 원의 상금이 걸려있는 만큼 중요한 문학상제도다. 올해 11회를 맞은 세계문학상의 심사위원은 김미현, 김형경, 김화영, 박범신, 은희경, 하응백 등이 지속적으로 맡고 있다. 김화영 평론가는 세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 명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문단에서는 심사위원과 문학상 지원자가 미리 짜고 상을 준 뒤 상금을 나눠먹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문학상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 심사위원이 문학상 지원자의 작품을 표절하거나 따로 빼내 출판하는 경우도 종종 문제가 된다. 

심사위원이 바뀌지 않으면 해당 문학상을 주관하는 신문사 등의 매체는 영향력 있는 심사위원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심사위원의 충성심을 활용해 매체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조선일보가 이문열, 신경숙 등의 작가를 종신 심사위원으로 선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순환보직을 통해 정기적으로 문학담당기자를 바꾼다. 기자 개인의 영향력보다는 동인문학상과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통해 문단에 권력을 행사한다. 시인 노혜경은 ‘민족예술’ 기고문에서 “학자나 비평가들에게는 해설기사를, 기자에게는 직접 인터뷰를 나눠 담당하게 하는 형식은 자연스럽게 (조선일보) 기자의 위상을 문학전문가들의 그것보다 우위에 배치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장점 탓일까, 신문사들은 문학상을 지속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국민일보는 1993년 원고료 1억4000만원을 걸고 국민문학상을 제정했고 첫 회 당선작인 김형경 작가의 책은 30만부 이상 팔렸다. 조선일보는 판타지 문학상, 중앙일보도 중앙문학상을 만들었는데 수상작 원고료에서부터 출판 제반비용은 모두 문학수첩과 김영사 등 후원 출판사가 부담한다. 

신문사와 작가 사이의 밀월관계는 끈끈하다. 지난 2010년 11월 신동아는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이 자신들의 기사를 표절한 것이라고 문제제기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 사실을  비판했다. 2011년 6월 황석영은 결국 인용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형식적인 사과로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동아일보는 이듬해인 2012년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를 ‘동아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며 금이 간 관계를 복원했다.

   
▲ 6월 18일자 세계일보 문화면.
 

이번 신경숙 표절 사태가 터진 직후인 지난 18일 세계일보 조용호 기자의 <신경숙 표절논란…의혹제기와 해명의 윤리>의 부제는 “작가 영혼에 상처, 문제제기 신중 필요, 기준 정해 시비 가리되 여론재판 안되야”로 신 작가를 옹호하는 모습이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원용진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미술계에선 오래전부터 미술담당 기자가 작품의 가격을 정한다는 말이 있다”며 “마찬가지로 문학담당 기자들이 출판사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특정 작가를 비평해주는 일은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기자들이 문학권력에 종속되기도 한다. 지난 2013년 창비라디오 ‘라디오책다방’에서 진행한 출판기자들과 인터뷰를 보면 이같은 모습이 잘 나타난다. 출판기자들의 기사는 거의 다 신간을 소개하는 형식이며 책을 비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좋은 점을 찾아 홍보하기 급급하다. 출판기자들이 기본적으로 책 판매에 동원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해당 인터뷰에서 경향신문 백승찬 출판기자는 자신의 실수를 털어놓았다. 출판사에서 작성한 보도자료를 보고 기사를 작성했는데 잘못된 사실까지 그대로 받아쓴 경험이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일보 이윤주 기자는 “솔직히 모든 책을 다 읽고 기사를 쓴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시간에 쫓기는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베끼는 일은 다반사다. 

문학평론가 이명원도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에서 “언론은 문학 작품을 어떤 관점에서 분류하는가, 대부분 순환보직일 수밖에 없는 문화부 기자들의 주관적 감에 의존할 확률이 높다”며 “이런 선택기준은 출판사 및 필자의 인지도와 명망, 화제성”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당시 백승찬 기자는 영화 기사를 쓰다가 출판으로 담당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출판기자들이 조금 더 부지런하게 문학평론을 찾아 참고해도 출판기사의 질 향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미 평론자체가 망가져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표절에 대해 문제제기하다 문학계에서 왕따가 됐던 이명원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비평 영역에 금기가 존재한다. 또한 평론가들의 평론이 지나치게 어려워 일반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점도 평론의 힘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지난 23일 문단에서는 신경숙 표절사태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심보선 시인은 “이런 썩은 시스템에서도 많은 작가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 자리는 한국문학의 자정작용이 시작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있었던 자정작용의 연속선상에 있는 자리”라며 “법석을 떠는 언론에게 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언론은 지금 법석을 떨 만큼 이 사태와 무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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