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일상이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황승환씨(61)도 마찬가지다. 그는 전쟁고아다.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넝마주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눕는 곳이 잘 곳이었던 황씨는 1975년 어느 날 밤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당시 나이 22살. “나도 많이 맞았지만 아동 소대 있던 아이들은 더 처참했다”며 다른 생존자를 걱정하는 황씨는 1979년 형제복지원에서 탈출했다.

24일 오후 국회 앞에서 황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가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특별법) 통과를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58일간의 노숙농성을 마치는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 예정에 없던 발언이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냐. 우리가 도둑질을 했거나 사기를 쳤다면 할 얘기가 없다. 우리는 먹고 살려고 거리에서 넝마주이 했고, 차비가 없어서 (길거리에서) 잔 건데 무슨 죄냐.” 황씨는 억울함을 전했다. 하지만 황씨와 같은 이들을 죄인으로 본 사람들도 있다. 

   
▲ 형제복지원 건물은 그곳에 갇힌 사람들이 맨손으로 지었다. 3차에 걸친 준공끝에 건물이 지어졌고, 박인근 원장의 사적인 시설을 짓는 곳에도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이들이 동원됐다. 사진=형제복지원사건진실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이완구 전 총리는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학위 논문에서 “거리의 부랑자, 포주, 매춘부, 마약상습자, 조직폭력배 등”을 가리켜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이름만 들어도 메스꺼워하고 경원시하는 요소들”이라고 했다. 실제 형제복지원 강제납치는 1975년에 만들어진 ‘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해 부랑인을 단속·수용한다는 미명하에 벌어졌다. 

(관련기사 : 형제복지원, 모두가 외면했던 ‘우리 안의 지옥’)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근거해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뿐 아니라 일반시민 등을 불법으로 납치·감금해 강제노역, 구타, 성폭행, 암매장한 사건이다. 드러난 사망자만 513명, 감금된 사람은 3500명이 넘었다. 이들은 1987년 형제복지원에서 가진 것 없이 풀려나 진짜 ‘부랑자’가 됐다.

당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2년 6개월의 가벼운 형기로 죄를 감면받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묻혀있었다. 2012년 한종선씨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증언집 ‘살아남은 아이’를 발간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특별법을 대표발의했고 법안은 현재 1년째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에 갇혀있다.

특별법은 계속 통과되지 못하고 미뤄졌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올해로 넘겼고 4월 국회마저 6월 국회로 넘겼다. 4월 28일 한씨는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고, 58일 만인 24일 오후 기자회견을 끝으로 농성을 마쳤다. 성과는 특별법 공청회를 여야가 합의했다는 사실, 날짜는 오는 7월 3일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씨는 “뒤늦게나마 공청회를 잡아 준 국회의원들에게 감사하다”며 “공청회를 시작해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 특별법에 대해 반대한다면 반대의 이유에 대해 밝혀 달라. 명분도 없이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다. 만약 9월 정기국회에서도 특별법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이미 총선준비에 돌입한 정치권에서 형제복지원을 잊을 가능성이 커진다.

   
▲ 4월 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4월 28일,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6월 국회로 미뤄지던 날이다. 형제복지원 생존피해자 11명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머리를 밀었고, 그날부터 58일간 노숙농성을 이어온 한종선씨는 24일 농성을 마쳤다. 사진=장슬기 기자.
 

특별법 통과를 위해 여당에서는 공청회를 요구했다.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진선미 의원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형제복지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린다”고 말했고 황 총리는 “관심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지난 22일 대정부질문에서 메르스 사태에 대해 “감염병 환자가 한두 명 생겼을 때마다 장관이 나서고, 총리가 나설 수는 없다”고 말한 황 총리에게 얻어낸 대답이다.

황 총리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던 국회에서 24일 오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숫자가 된 사람들’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특별법 통과를 위해 피해생존자들이 다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낸 결과물이다. 

형제복지원에서 해방 된지 27년 만에 특별법이 제정됐고, 1년째 안행위에 머물러 있는 특별법은 안행위를 거치더라도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27년만큼이나 힘든 1년간의 희망고문이다. 특별법은 피해자들의 보상과 의료지원,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들을 마련한 법이다. 국가가 망가뜨린 삶에는 지원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 “평생의 트라우마, 벽 보고 잠 못들어”

14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교복을 입은 채로 형제복지원에 끌려 간 최승우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부산대책위원장은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돌봐야 한다. 최 위원장은 “하나뿐인 동생마저 형제복지원에 끌려갔고 그 트라우마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며 “아버지는 자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암이 생겼다”고 말했다. 

   
▲ 국가기록원 기록에 따르면 형제복지원은 매년 20여억원의 국고 지원을 받는 한편 원생들을 무상으로 노역시키고 부실한 식사를 제공해 막대한 금액을 착복했다. 사진=형제복지원사건진실규명을 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전쟁고아이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황승환씨는 내일(6월 25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6·25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우리 아버지가 더 계급이 높았지. 왜 박 전 대통령얘길 하냐면 박정희 정권이 만든 내무부 훈령 때문이잖아. 박 정권 때문에 내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됐어.” 

한종선씨는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당했던 인권유린으로 정신병원에 있는 누나와 아버지를 돌봐야 한다. 또한 올 8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 진학해 인권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싶다.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도 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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