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했다. ‘취재-기사작성-편집-디자인-발행·배포’까지. 마감은 일상이 됐다. 이전 신문 마감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신문 제작을 준비한다. 2주마다 신문을 내야 했지만 ‘펑크’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면 분량은 4면, 2면, 때로는 1면이 되기도 했다. 신문발행이 임박할 때면 1~2시간도 채 못 자곤 한다. 처음에는 수습기자까지 포함해 다섯명이었다. 지금은 혼자다. 수습기자를 모집하는 포스터를 붙였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배재대의 학보인 배재신문은 김현곤 편집국장 혼자서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학보사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일부 대학에선 재단이 편집권을 침해하지 않더라도 기자들이 지면에 기사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보, 쳐다보지도 않는 대학생들

대학언론은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생들이 학보나 교지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대가 뉴스 자체를 적게 소비할뿐더러 그나마 있는 소비마저도 디지털에서 이뤄진다. 디지털 기반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대학언론이 설 자리는 매우 비좁다. 구독 대상이 대부분 20대다보니 기성언론 독자가 PC와 모바일로 빠져나가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20대의 취향에 맞는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대학 공동체가 붕괴된 상황에서 ‘대학면’의 기사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1980~1990년대와 달리 학내 민주주의는 더 이상 학생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면’이 강세인 것도 아니다. 대학언론은 과거 기성언론의 사각지대에서 ‘대안언론’의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는 언론이 적지 않다. 같은 현안을 다루더라도 기성언론보다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는 구조도 아니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대학기자들도 줄어 

대학언론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학생기자 지원율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배재신문은 극단적인 사례지만, 과거 20~30여명의 기자들을 보유했던 학보사나 교지편집위원회가 현재는 10명 내외의 구성원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인원이 적다보니 기자들이 지면을 못 채우는 상황도 벌어진다. 격주로 발행되는 건국대의 학보 건대신문은 올해 1학기에는 단 2회만 발행했다. 건대신문의 학생기자 수는 마지막 종이신문 발행 기준 7명이었다. 

더욱이 대학언론은 노동 강도가 강한 반면 혜택은 적다. 경희대 학보사인 대학주보의 백승철 편집장은 “하루는 편집회의, 하루는 마감, 또 하루는 조판 등으로 시간을 ‘뺏긴다’는 인식이 팽배해질수록 대다수는 학생기자 활동을 꺼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대학언론 경험이 언론사 입사 때 반영되지만 우리나라 언론사 공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기자 지망생들은 일찌감치 대학 울타리 밖에서 인턴, 대외활동 등으로 ‘스펙’을 쌓게 된다.

예산 줄어도 이의제기 힘들어

대학의 학보사 지원도 줄고 있다. 지역소재 한 4년제 대학은 최근 예산이 10% 줄어들었다. 다른 지역소재 4년제 대학은 예산이 50%가량 삭감된 곳도 있다. 백윤호 ‘대학기자 세미나’ 기획단장은 “대학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예산이 줄어드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학 입장에서는 학보 발행부수를 줄이거나 면수를 줄이면 예산이 절감되고 비판적인 기사도 억제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의 전 주간교수는 “여야가 반값등록금을 내세운 이후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연스레 긴축을 하게 됐고, 학보의 발행부수나 면수부터 줄이게 됐다”고 말했다. 2012년 한국외대에서는 대학본부가 총학생회 선거보도 호외판 발행 중단을 통보해 편집권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학생회비로 운영되는 교지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건 아니다. 학생대표들에게 교지는 눈엣가시가 된지 오래다.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의 한 교지 관계자는 “학생회비에서 받아가는 비율 탓에 학생사회의 눈치를 봐야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소속 대학은 1인당 학생회비에서 2500원의 교지대금을 납부 받았으나 최근 1000원대로 줄었다. “구독률이 낮은데 받아가는 예산이 많다”며 학생대표자들이 할당액을 낮췄기 때문이다. 

변화한 수용자에 맞춰야

‘디지털 퍼스트’라는 말은 식상할 정도로 기성언론이 ‘혁신’의 대명사로 즐겨 쓴다. 대학언론은 대부분의 대학생이 20대라는 점에서 디지털 ‘퍼스트’가 아닌 ‘올인’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디지털 전략을 충실히 실행하는 대학언론은 손꼽힐 정도다. 그 중에서 대학주보는 온라인 중심의 편집시스템을 구축한 모범사례다. 대학주보는 2015년 학보사로는 처음으로 ‘디지털퍼스트’를 선포했다. 주간으로 발행되던 종이신문은 격주로 전환했고 상시 마감제를 도입해 온라인 중심의 편집국을 꾸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여러 소셜미디어를 두루 활용한다. 독자들에게 뉴스레터를 1주일에 3회씩 발송한다. 콘텐츠도 카드뉴스와 클립형 영상 등 디지털 환경에 맞췄다. 

   
▲ 경희대 학보사인 대학주보의 비주얼 뉴스 페이지. 대학주보는 카드뉴스. 클립형 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대학주보 백승철 편집장은 “디지털퍼스트를 도입한 이래 각 기사당 조회 수가 약 100건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 갈 길이 정말 멀다”면서 인터렉티브 뉴스나 기사 추천 알고리즘 도입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대의 독립언론인 국민저널의 선거보도는 소셜미디어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한 사례다. 국민저널은 총학생회 개표 보도를 선보였다. 개표현황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도했을 뿐 아니라 라이브로 개표방송도 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학보사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변화한 디지털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의평가에 관한 기사는 학내 민주화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길 수 있지만 학생들의 관심이 많은 사안이다. 또, 이를 통해 강의가 개선이 된다면 언론으로서 감시 기능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중심 콘텐츠 제작해야

학내 공동체와 지역공동체 보도를 강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부산대 학보사인 부대신문은 지역공동체 뉴스를 주력으로 선보인 사례다. 부대신문은 매주 9000부씩 발행하는데 관공서를 비롯해 지역 시민단체에도 신문을 배포한다. 지역의 하천 오염, 성매매 등 지역공동체 현안에 대한 기사가 많다. 부산 내 노동쟁의 현황을 인포그래픽으로 담은 노동여지도 기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부대신문 박성제 편집장은 “지역밀착형 취재를 하는 건 부대신문의 전통”이라며 “사회부에서 부산 금정구의 ‘젊음의 거리’ 도로 곳곳이 파손됐다는 보도를 한 적 있다. 기사가 나간 이후 바로 정비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언론은 대학 공동체와 지역 주민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조지아대학의 ‘레드 앤 블랙’은 대학공동체 내의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학내 문제에 대한 탐사보도도 활발히 이뤄진다. 이 신문이 단독보도한 ‘약학대 교수의 시험지 유출 사건’은 뉴욕타임스와 CNN 등이 받아 쓸 정도였다.

   
▲ 부산대 학보사인 부대신문은 '지역밀착형 취재'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부대신문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관공서에도 배포된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데일리 타힐’은 대학 공동체를 비롯해 인근 오렌지 카운티, 더햄 등 지역의 주민이 주요 독자층이다. 하루 평균 발행부수는 2만부 이상으로 인근 지역신문사를 능가할 정도다.

이 같은 해외 대학언론 사례를 연구한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국은 한 지역에서 평생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의 자치가 잘 돼 있어 사람들이 공동체에 관심이 많고 지역 커뮤니티 문화가 활성화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지면 한국에서 이 같은 공동체 중심의 뉴스를 강요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김성해 교수는 “우리나라는 중앙집권형으로 지역 현안을 지역이 해결하기 쉽지 않다. 지역공동체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 된다는 인식도 거의 없다는 점이 한계”라고 말했다.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대학언론이 디지털 환경에 걸맞은 소통전략과 공동체 밀착형 콘텐츠를 갖춘다고 해서 위기가 극복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직’이 변화하지 않는 한 ‘혁신’은 쉽지 않다. 백윤호 기획단장은 ‘통합 뉴스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보사와 방송사 등 학내 언론이 분산 돼 있는데 현실적으로 ‘미디어센터’로 통폐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건대학보의 경우 학내 방송국과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주보 역시 학내 방송국과 협업을 추진 중이다.

   
▲ 전현직 학보사 기자들로 구성된 '내가 학보사 노답이라 그랬잖아' 페이스북 모임을 주축으로 기자세미나 기획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여대에서 열린 2차 기획회의. 사진=금준경 기자.
 

현재 각지의 대학언론들이 ‘대학기자 세미나 기획단’을 중심으로 대학언론 연대체 모임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세미나의 주제는 ‘디지털 퍼스트’다. 기성언론의 기자로부터 교육을 받고 성공적인 대학언론의 사례를 공유할 예정이다. 첫 발을 뗀 셈이다.

구호를 앞세워 변화를 꾀하기 보다는 대학언론의 성격부터 재정립하는 게 순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해 교수는 “과거 대학언론은 ‘민주주의의 투사’ 역할과 ‘학술지 역할’을 했는데 이제 이러한 역할은 불분명해졌다”면서 “자신들의 성격부터 어떻게 규정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편집권, 수익구조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이나 지역밀착 기사 하나 둘 더 쓴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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