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신경숙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표절지적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만 사실상 표절 사실 자체는 부인했다. 신씨는 당분간 자숙하겠지만 다시 글을 쓰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신씨가 독자들이 납득할만한 사과를 여전히 내놓지 않아 논란이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표절이 신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문학계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23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화권력의 현재’ 토론에서 시인 심보선씨는 ‘이윤지상주의’와 ‘한국문학지상주의’라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신씨를 ‘환금성’이 탁월한 작가라고 정의했다. 많은 독자들에게 구매력을 유혹할 수 있는 문화상품이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1999년부터 신씨 작품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신씨에 대한 비평이 주요 매체에 실리면서 (표절)논의가 어려운 실정이 됐다”며 “권위있는 문학비평에서 찬사를 받고 상당히 경제적인 수입을 가져오게 되면서 작가 본인의 성찰이나 문단의 비평이 성찰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문학평론가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도 “2000년대 초반 꽤 전투적인 평론가들이 표절에 대해 문제제기 했음에도 묻혔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에 대한 문제”라며 등단제도에 대해 비판했다. 주요 출판사에서 문예지 신인문학상 제도를 통해 등단제도를 장악하고 자신의 매체 출신의 작가의 책을 팔면서 권위를 키우는 질서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자신의 문학적 신념에 따라 작가들이 이합집산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문학은 출판사 소속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대형 출판사인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에서 모두 책을 내는 작가인 동시에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즉 좋은 상품이면서 동시에 문화권력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오 교수는 “문학출판사가 문학적 권위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학출판사가 자신의 문학적 색채를 갖기 보다는 출판자본의 이익을 우선한다”며 “대중성만을 중시하는 시장중심주의”를 지적했다. 오 교수는 현재 이런 카르텔 속에서 신경숙이 신화화됐고 이번 표절 사태에서 한국문학의 신화가 무너진 점이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줬다고 봤다. 

문학평론가 정은경 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에 따르면 신경숙은 드물게 한국문학계에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작가다. 출판사 창비에서 신씨를 옹호하자 ‘신경숙이라는 상품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여론에 지적이 적지 않았다. 시인 심보선씨는 “이는 맞는 이야기지만 신씨를 상품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심씨는 “신씨가 어마어마한 돈줄이라서 창비가 그를 비호했다면 문학적인 평가가 다 내려진 이후에 대응해도 늦지 않는다. 상품에 심각한 하자가 발견됐음에도 창비가 신경숙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출판사와 그들이 가진 문예지의 평론가들이 ‘내가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한국문학지상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23일 오후 서울 마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창비 강일우 대표는 신경숙 표절에 대한 사과문에서 “그간 작가와 독자를 존중하고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진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심씨는 “스스로가 한국문학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믿는 출판사와 평론가, 몇몇 작가들이 유사 가족처럼 서로를 비호하며 배려하는 태도가 표절을 끝내 표절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태를 낳게 했다”고 비판했다. 

심씨는 “자신들이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평가하고 문학담론을 개발한다는 논리, 한국문학의 수호자로 자임하는 논리는 모든 출판사, 잡지, 문학평론가들이 공유하는 신앙”이라며 이런 신앙이 비평을 무디게 만든다는 입장이다. 심씨는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다. 앞으로 다른 에이스를 발굴하고 육성하자는 입장에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명원 교수는 “이런 썩은 시스템에서도 한국문학의 유기적 생태계가 살아남은 이유는 작가들이 여러 다른 방법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몇몇 주체가 한국문학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304세월호 낭독회’(304명이 모여 글을 나누는 모임)와 같이 작가와 일반시민이 구분 없이 문학을 향유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한편 오창은 교수는 문학에 대한 비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표절 사건이 터졌을 때 징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신경숙 표절 사건 이면에는 무기력한 비평이 자리잡고 있다”며 “비평이 표절을 검증하고 문학권력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지 성찰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한 오 교수는 “표절과 같은 문학윤리 위반사건에 대해서도 징계시스템이 없는데 이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문인단체를 중심으로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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