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신경숙은 한국 문학계를 상징한다. 1980년대 민중문학이 개인을 억압한다며 좀 더 자유로운 개인을 노래한 신경숙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작가 이응준이 17일 신경숙의 작품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하자 신씨는 해당 작품을 본 적 없다며 표절을 부인했다.

권력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서 신경숙의 작품 표절 문제를 제기했던 정문순씨에 따르면 신씨는 직접 자신의 소설 ‘외딴방’을 연재할 당시 소설을 읽고 보내온 한 교사의 편지를 그대로 실었다고 밝혔다. 신씨가 다른 사람의 글을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신씨에게 제기된 표절 의혹은 ‘전설’뿐이 아니다. ‘딸기밭’,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 ‘외딴방’ 등 총 7건이다. 표절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문제제기가 꾸준히 됐지만 금방 묻혔다. 그 배경에는 출판사와 동료 작가들의 침묵이 있었다. 

출판사 창비는 17일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거나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며 표절 의혹을 일축했다. 대형 출판사도 한국 문학권력 카르텔에 포함됐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18일 뒤늦게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 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신씨가 속한 한국작가회의는 “신씨 자신이 해명할 기회를 줘야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작가회의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작가가 습작을 하다보면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게 피어나와 표절처럼 될 수도 있다”며 “신씨가 ‘우국’을 읽지 않았다고 했고,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인데 옆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4월 8일 광화문 광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관계자는 대통령이 1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인양을 언급한 것에 대해 “국면 전환용 멘트라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지금까지 책임을 계속 회피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단식에 참여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방관했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지만 정작 당사자 문제에서는 뉘앙스가 달랐다. 관계자는 “(신씨에 대해) 너무 심하게 공격하지 말자”며 “표절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소중한 작가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씨가) 나와서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작가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출판사와 동료 문인들 간의 카르텔로부터 보호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카르텔은 문학계의 권력구조를 형성했고, 이는 표절이라는 착취를 용인하게 됐다. 신씨가 표절시비에 많이 휘말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시비는 신씨만의 일이 아니며 최근에 벌어진 일도 아니다. 

지난 7일 평론가 황현산씨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82년)가 표절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황씨는 이 작품이 폴 엘리아르의 ‘자유’를 표절했지만 민주화라는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에 알면서도 침묵했다고 주장했다. 이 작품에 대한 표절은 시인 노태맹이 이미 올 초에도 지적했다.   

작가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1992년)는 작가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이인화는 ‘혼성모방’이라고 해명했다. 혼성모방는 일종의 패러디를 뜻한다.   

작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년)은 PC통신 시절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글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표절은 아니지만 소재를 차용했다는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등 그동안 한국 문단의 표절 논란은 한 두건이 아니다. 

문학상 심사위원이 지원자의 원고를 도용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주이란씨는 2007년 단편소설 ‘혀’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지원했다 탈락했다. 심사위원이었던 조경란씨는 같은해 장편소설 ‘혀’를 내놨고,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주씨는 동명 소설집을 펴냈다. 당시 조씨는 “심사위원이었지만 주씨의 작품은 읽지 않았다”며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 작가 신경숙. SBS 힐링캠프 화면 갈무리.
 

정문순씨의 문예중앙 기고문에 따르면 일제 파시즘기 동료들의 친위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 

또한 정씨는 소설의 구조와 모티브 등을 비교하며 ‘딸기밭’, ‘작별인사’,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의 작품이 표절이라고 주장했고 표절은 궁극적으로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맥락을 흐린다고 지적했다.또한 이같은 표절논란이 일어나도 문인들과 사이가 나빠 좋을 것 없는 언론은 또 새로운 책이 발간되면 책을 소개해주며 논란이 끝나버린다고 덧붙였다. 

19일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신경숙씨에 대해 출판사를 속여 (표절해) 출판 업무를 방해하고 인세 등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현 원장은 “작가와 출판사가 양심에 비춰 사과하면 될 일을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작가회의 관계자의 말을 통해서도 문단의 자정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관계자는 “몇 군데서 문제제기를 해도 묻혔던 과거와 SNS에서 빠르게 퍼져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지금의 분위기는 다르다”고 말했다. 꾸준히 있어왔던 표절 논란을 알고 있지만 작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입장도 전했다.  

출판자본과 결탁한 작가, 성찰을 잃은 문인, 한국 문학계의 민낯을 보여준 모순된 표현이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의 작품 중 일부를 옮겼다.  

1. 전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2. 엄마를 부탁해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모녀 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3. 작별인사 

“물기척이 심상치 않다.”
“헤엄치는 자의 기척이 한층 짙어져 오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 ‘물의 가족’

“물마루 기척이 심상치 않아.”
“먼데서 나를 데리러 오는 자의 기척이 느껴진다.” 신경숙 ‘작별인사’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4.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순전한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더 가난하고 더 고독하게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이 속을 털면 털수록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루이제 린저, 전혜린 옮김, ‘생의 한가운데’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5. 딸기밭 

“귀하./ 이제는 고인이 된 안승준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주소록에서 발견된 많지 않은 수의 친지 명단 가운데 귀하가 포함되어 있었던 점에 비추어, 저는 귀하가 저의 아들과 꽤 가까우셨던 한 분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이미 듣고 계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그의 아버지로서 그의 돌연한 사망에 관해 이를 관련된 사실들과 함께 귀하께 알려드려야만 할 것 같이 느꼈습니다.” 안승준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

“귀하./ 저는 이제 고인이 된 유의 어머니입니다. 유의 수첩에서 발견된 친구들의 주소록에서 귀하의 이름과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주소가 상단에 적혀 있었던 걸로 보아 저의 딸과 꽤 가까우셨던 사람이었다고 짐작해봅니다. 귀하께서 이미 알고 계실는지도 모르겠고, 참 늦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마는 그의 어머니로서 그의 돌연한 사망에 관해 알려드립니다.” 신경숙 ‘딸기밭’

6. ‘딸기밭’ 또 다른 의혹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차라리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비록 당신이 저를 사랑하더라도 당신은 평소에 다른 여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저에게 그렇게 대해 주셨으면 해요. 그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그녀를 쳐다보며 묻는다. 당신이 원하는 게 고작 그거요?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그 방에서 최초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점에 관해서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결코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가 말하게 내버려둔다. 그녀는 자신도 잘 모르겠노라고 말하고 나서, 잠자코 그의 말을 듣는다.

그는 외롭다고 말한다.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사무치게 외롭다고. 그녀는 자신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고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어느 누구에게나 그러듯이 이곳까지 나를 따라왔군요. 그녀는 그건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며, 아직 누구의 방에까지 따라가 본 적은 없다고 대답한다.. 그녀는 말은 필요없고 그가 평소에 그의 방으로 끌어들인 뭇 여자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행위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그에게 말한다. 그녀는 제발 다른 사람한테 할 때처럼 해달라고 그에게 애원한다.

그는 원피스를 잡아뜯듯이 거칠게 벗겨내 팽개치고 나서, 흰색 면 속치마를 벗기고 (중략)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짓이니까 내버려두라고 그에게 말한다. (중략) 그의 살결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부드럽다. 몸뚱이. 몸은 말랐고, 근육도 없고, 힘도 없고, 마치 병자이거나 회복기의 환자 같다. 그는 몸에 털도 없고, 남근을 제하고는 남성다운 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몹시 허약해서 어떤 모욕을 당해도 병자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다. (중략) 그는 울면서 그 짓을 한다. 처음에는 통증뿐이다. 그리고나서 그 통증은 누그러들면서, 변하여, 천천히 뿌리 뽑히고, 쾌락으로 이어져서 그녀를 감싼다. (중략) 나는 피가 흐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내게 아프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피를 닦고, 나의 것도 닦아준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한다”고 그 남자는 말한다. (중략) 처녀는 그 남자를 쳐다본다. 자신을 안아보라고 한다. 창고 안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는 다정한 말이다. 남자는 떨고 있다. 처녀는 스스로 자신의 원피스를 벗어버린다. 손에 들려진 원피스를 흰 종이가 쌓여 있는 어두운 창고 바닥에 던져버린다. 그 남자의 떨고 있는 손을 끌어다가 원피스 안에 입고 있던 의 면 속치마 끈에 대준다. 그 남자의 손이 스르륵 떨어져 내린다. 그는 울고 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다. (중략) 처녀는 자신이 그 남자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누구나 하는 일일 뿐이라고. 남자는 눈물을 그치고, “나는 아무래도 못 하겠어.” 고개를 떨군다. 처녀는 야전 침대에 무릎을 꿇고 그 남자의 옷을 벗긴다. 셔츠 속에서 드러나는 부드럽고 연한 속살. 그 남자의 얼굴선이 지나치게 접근 금지의 표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반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어린아이 같은 속살. 열일곱이란 나이로부터 성장이 멈춰버릴 듯한 야윈 몸이 생존 본능처럼 지닌 부드러움. 처녀는 그만 울어버린다. (중략) 아차 하며 그들은 쾌락에 젖어든다. 몸에 돋은 가시는 서로의 몸 속으로 들어가 박힌다. 처녀는 자신이 하혈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제 몸의 가시를 남자의 피부 깊숙이 박고 있다. 피가 묻은 그 남자가 하혈을 닦아주며 처녀를 다시 끌어안는다.” 신경숙 ‘딸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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