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왔다간 거? 원맨쇼지.” 

메르스가 확산돼 해외 관광객이 급감하고 국내 소비가 위축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를 방문했다.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위로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상인들은 위로를 받았을까? 미디어오늘이 17일 오후 동대문을 직접 방문했다.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실질적인 대책 없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동대문 상인들의 매출은 지난달에 비해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밀리오레 1층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A씨는 “동대문은 중국인 손님이 대부분인데 중국인들이 하나도 없어서 매출은 지난달의 30% 수준”이라며 “봄·가을이 그나마 장사가 돼 6월까지는 바짝 벌어야 하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 지난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에 방문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A씨는 박 대통령이 방문한 14일 대통령을 실제로 처음 봤다. “방문은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 돈 빌려주겠다는데 어차피 다 우리가 갚아야 할 돈 아닌가. 세금을 면제해주면 모를까” 박 대통령은 동대문 상인들에게 ‘특별자금’을 지원하고 6월 세금납부를 연장해주겠다고 밝혔다. 특별자금이란 대출을 뜻한다. 

상인들에 따르면 대통령 방문 하루 전인 13일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1층을 오가며 동선을 살폈다. A씨는 “내가 궁금해서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중요한 분이 올 거다’라고만 하더라. 14일에 예고도 없이 ‘짠’하고 나타났다. 대통령을 처음 보니까 신기하긴 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대통령이 왜 왔는지 알고 있었다. A씨는 “메르스가 안 잡히는데 대통령 주변에서 (측근들이) 가만있었겠나? 대통령도 힘드니까 (우리) 위로해준답시고 왔겠지. 메르스 못 잡는다고 그 전날까지 (상인들끼리) 모여서 신나게 욕하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대통령 구경했다.”고 말했다. 

   
▲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손님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맞은편에서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직원 B씨는 “사장님한테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B씨는 “손님이 줄어서 인건비도 안 나오는 거 뻔히 아는데 하는 것도 없이 돈 받아가는 것 같다”며 “여기 사장님(A씨)이나 나는 옷 장사만 20년 했다. 장사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손님이 없으니 요즘은 ‘내가 여기서 뭐하나’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B씨는 “2주전까지는 기존에 한국으로 여행을 왔던 외국인들이 좀 있었는데 이제는 여행 다 취소하고 외국인들이 들어오지 않아 썰렁하다”며 “주말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옷 사러 많이 왔었는데 이젠 주말에도 한가하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한국 방문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은 10만명이 넘었다고 알려졌다. 

   
▲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손님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C씨의 상점도 14일 대통령이 방문했던 상점 중 하나다. C씨는 “15년 옷 장사했는데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 한 주 한 주 손님이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랏일 하는 사람이 여기 와서 뭐하나. 실질적으로 메르스를 잡을 수 있는 걸 해야지”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원했던 상인이 아니었는지 청와대 자료사진에 C씨의 상점은 등장하지 않았다. 

기자의 계속되는 질문에 C씨는 대답을 멈추고 오히려 반문했다. “젊은 사람이 지금 그런 거 몰라서 물어보는 거 아니죠? 대통령 왔다간 거 원맨쇼인거.” C씨의 상점에 손님이 찾아왔다. 밀리오레 취재를 시작한 지 한 시간가량 지나서야 옷을 구매하려는 손님을 처음으로 C씨의 상점에서 발견했다.   

이렇게 손님이 적을 때는 손님이 매장을 찾아도 물건을 팔기란 쉽지 않다. A씨는 “동대문은 흥정을 하면서 거래가 오가는데 손님이 워낙 적으면 할인 많이 해줘야 한다는 것을 손님들이 더 잘 안다”고 말했다. B씨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 메르스 초기에는 불안해도 마스크를 쓸 수도 없는 게 걱정이었지만 요즘은 아예 손님이 없으니 마스크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지하는 더 썰렁했다. 상인들의 불만도 더 컸다. “대통령 다녀와서 더 장사 안 되는 거 같은데요?” 밀리오레 지하에서 신발을 파는 D씨는 냉소적인 말투였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한국인 손님들이 줄어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밀리오레에서) 나가려는 상인들도 많아질 것 같다. 지금 매출로는 월세 낼 돈도 없다.” 상인들에 따르면 밀리오레 월세는 적게는 약 100만원에서 많은 곳은 200만원이 넘는다. 

“그날(14일) 대통령이 중국인 한명 붙잡고 ‘안심하고 한국에 놀러 와도 괜찮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했잖아. 사실 그 외국인이 카자흐스탄 사람이라던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외국인이 메르스 걸리면 3000달러 준다고 했다며? 누가 목숨 걸고 한국 와. 그리고 목숨을 돈이랑 그렇게 연결하면 기분 나쁘지.”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대부분 상인들은 취재를 거부했다. “장사 안돼요. 보면 몰라요?” 

2층으로 올라갈수록 분위기는 더 한산했다.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진 건 다 똑같아요. 위로 올라갈수록 더 우울하죠. 대통령은 어차피 2층에 올라오지도 않았으니까 밑에 가서 취재해보세요.” 2층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E씨의 말이다. 

   
▲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손님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상인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은 14일 당일 밀리오레 1층과 지하1층의 일부 매장을 방문했다.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던 상인들은 대통령 측근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메모해갔으며 측근은 ‘내일부터 돈이 들어온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는 대출을 뜻한다. 이날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인기를 뽐내는 서면 브리핑을 남겼다. 

밀리오레는 동대문 쇼핑몰 중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편이다. 주변 쇼핑몰은 더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동대문 APM에서 신발을 파는 F씨는 “하루에 스무시간 정도 문을 열고 열시간씩 사장과 직원이 나눠 일을 하는데 (매출이 떨어져) 인건비를 줄 수 없으니 사장 혼자 체력 닿는 만큼 일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대통령이 지금 동대문 갈때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어설픈 원맨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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