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가 발간되는 날이지만 가판대가 텅텅 비었다. 대학언론 편집권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사건만 꼽아봐도 동국대와 성균관대, 삼육대, 상지대, 서울시립대 등에서 학보 발행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서울여대학보는 신문이 나왔지만 1면에 기사 없이 백지로 발행됐다. 학보사 편집권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시스템을 손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에만 다섯 곳에서 편집권 갈등

상지대신문 종강호는 17일까지 발행되지 않았다. 총장과 이사회 등에 대한 재학생 여론조사를 둘러싼 인식차이 탓에 종강호 발행이 사실상 무산됐다. 상지대신문은 총장 해임을 요구하는 교수의 기고글 게재여부를 두고 학생기자들과 주간교수가 갈등을 벌인 바 있다.

전우재 상지대신문 편집장은 “주간교수가 설문조사의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했고, 학생기자들이 통계상의 오류를 보완하겠다고 했는데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주간교수는 ‘이 민감한 시기에 총장이 발행하는 학보에 여론조사를 넣으려 하느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주간교수인 장인호 교수(임상병리학과)는 “설문조사를 보완해 2학기 때 내면 된다고 본다”면서 “학생들은 신문을 바로 내야 한다고 해 이견을 보여 발행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 백지발행된 서울여대학보 가판대 모습. 사진= 서울여대학보 제공.
 

동국대는 지난 3월 21일 신문 인쇄를 앞둔 상태에서 주간교수가 ‘보도 기사와 사설이 편향적이고 설문조사가 비과학적’이라며 신문 발행을 중단했다. 이승현 동대신문 편집장은 “주간교수(미디어센터장)의 보직 사퇴와 편집 자율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경영부총장(총장 대행)과 면담을 신청하자 주간교수는 스스로 면직요구서를 냈다”고 말했다. 이후 동대신문은 3월 26일에 발행됐다.

삼육대신문은 6월호에서 위헌적인 학칙 조항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 게재여부를 두고 갈등이 벌어졌다. 서울시립대신문은 대학본부가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사설수정과 재인쇄를 요구해 학생기자들이 집단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여대는 지난달 26일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서울여대 청소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졸업생들의 성명서가 1면에 실릴 계획이었으나 주간교수가 “성명서가 게재되면 발행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학생들이 백지신문을 발행한 것이다.

학보사 기자 34.4%, ‘기사검열을 받았다’

이같은 편집권 갈등 사례는 모두 다른 대학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전개양상은 빼닮았다. 주간교수(혹은 주간교수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교직원)가 대학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의 수정 또는 삭제를 요구하고, 학생기자들이 이에 반발해 알려지는 식이다.

언론에 알려진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일상적인 편집권 갈등은 비일비재하다.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2013년 실시한 ‘대학 학내 언론의 자유’ 설문조사는 편집권 침해가 일상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조사결과 34.4%의 학보사가 ‘기사검열을 받았다’고 답했다. 학생기자 스스로 ‘자기검열’을 한 경험도 32.8%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의 학보사 기자는 “홍보팀 직원이 조판과정에 참여하고 주간교수와 교직원이 신문에 대한 사전검열을 한다”면서 “'학교의 잘못'이라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문장을 통째로 날리거나 문단을 없앤다. 교육부 감사에 대한 기사는 작성만 된 채 발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역 소재 4년제 대학 학보사의 한 기자는 “백지발행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교직원의 게이트키핑에 항의한 일이 있다. 그러나 주간교수가 해당 지역 언론출신이다보니 취업 때 불이익이 우려돼 유야무야된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소재 대학 학보사의 기자는 “총장실에 주간교수를 비롯한 기자들이 소집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학생기자들이 교지 강제수거에 항의해 장례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교지는 학보에 비해 편집권이 보장 돼 있지만 '강제수거'를 하는 식으로 학교비판 보도에 제갈을 물린다. 올해 동국대의 경우도 교지의 가판을 치워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중대신문 제공.
 

학보를 ‘홍보지’로 여기는 학교

대부분의 대학은 학보를 자치언론으로 보지 않는다. ‘홍보지’나 ‘기관지’로 여긴다. 발행인이 대학의 총장 혹은 이사장 명의로 돼 있고, 편집인은 대학에서 임명하는 주간교수(혹은 그에 준하는 교직원)다. 사실상 편집권이 대학본부에 독점돼 있기 때문에 대학은 ‘편집권 침해’가 아닌 ‘자율적인 권리행사’라는 입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간교수가 학생기자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생기자를 해임하거나 징계를 내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 같은 시스템에서 주간교수는 사실상 학교의 이해관계에 맞는 사람을 임명한다. 주간교수로서 자질은 둘째 문제이다보니 언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가 주간교수로 임명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올해 편집권 갈등이 벌어진 곳을 살펴봐도 서울시립대의 경우 영어영문학과 교수, 상지대는 임상병리학과 교수가 주간교수를 맡고 있다. 전우재 상지대신문 편집장은 “우리 주간교수의 경우 합리적인 면은 있지만 임상병리학과 전공교수이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언론학 전공자인 주간교수라고 해서 편집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실제 2011년 건국대, 올해 동국대, 서울여대 편집권 갈등이 벌어졌을 당시 주간교수는 언론 관련학과 교수였다. 그러나 저널리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떠나 언론학 교수에게 ‘편집권 침해자’라는 낙인은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실제 동국대 주간교수는 편집권 갈등이 벌어진 후 사퇴하기도 했다. 건국대의 경우 학생들이 정동우 전 주간교수에게 ‘저널리즘 수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주간교수는 학과 학생총회에서 해명을 해야 했다.

편집권 보장하는 학칙 개정 필요해

중요한 사실은 주간교수가 갈등의 최전선에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영방송의 현실로 비유하면 ‘좋은 낙하산’을 기다릴 게 아니라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와 일맥상통한다.

학보사의 편집권을 편집장을 비롯한 학생기자들에게 보장하고, 사전 검열금지 등 대학의 간섭을 막는 내용을 학칙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학생들에게 걷는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학보사는 등록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환경을 감시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전우재 상지대신문 편집장은 “현재는 학교가 주간교수를 임명하고 우리는 통보를 받게 되는데 학생들의 의견을 구해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간교수 임명동의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학칙을 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11년, 3개월 동안 파업을 했던 건대신문의 경우 편집권 보장 조항을 학칙에 넣기로 합의하고 파업을 중단했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김현우 건대신문 전 편집장은 “주간교수가 구두로 규정을 바꾸겠다고 했으나 유야무야 됐다. 실제 학칙을 개정하는 절차도 교무위원들이 나서야 하는 등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교가 이를 자발적으로 행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같은 조항을 학칙에 의무적으로 넣을 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도 현실성이 없다.

   
▲ 2011년 건대신문 파업 당시 건국대 캠퍼스 사진=건대신문 제공.
 

평행선 달리는 상황에서 ‘타협론’도 나와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대학언론이 재정적인 자립을 이루는 것이다. 1980년 미국 러커스대학의 ‘데일리타검’이 대학언론 중에서 최초로 재정독립을 선언한 이래 미국에서만 110개 이상의 대학신문이 비영리 재정자립형 모델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학보사가 재정적인 독립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이를 감안해 대학과 학생기자가 대타협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학보와 학교의 관계를 ‘옥천신문’과 옥천시의 관계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면서 “옥천신문은 지자체를 어느 정도 홍보해주면서도 비판과 감시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 대학신문도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와 같은 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성해 교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러커스대학의 언론인 ‘데일리타검’의 경우 편집자문위원회가 있다. 여기에는 동문회장, 교수, 대학본부 관계자, 학생기자 등이 위원이 된다. 이 기구에서는 편집국장을 임명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편집국장을 소환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김성해 교수는 “학교는 홍보지가 되길 원하고 학생들은 자치언론이 되고자 한다. 이 평행선이 반복되는 것보다는 위원회를 꾸리는 게 나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학생기자 스스로 조직화해야

현재 전국 대학의 학보사 기자들을 대표할만한 단체가 없다. 이 사실은 학보사 기자들의 편집권 투쟁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전국대학생기자연합이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췄지만 사라진 지 오래다. 서울권과 대구경북 등 일부지역에서 학보사 연합이 꾸려지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학보사 기자들 간 연대를 위한 단체의 중요성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전·현직 학생기자들이 가입된 페이스북 모임에서 대학기자 세미나를 발판으로 연대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4일 기획회의에는 건대학보, 충대신문, 한국교원대신문, 경북대신문, 삼육대신문 전현직 학생기자들이 참여했으며 서울여대학보, 서울과기대신문, 건대신문 전현직 기자들이 참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8월 예정된 학보사 세미나 프로그램으로 △편집권 확보 및 연대체 조직방안 △디지털퍼스트 등을 통한 독자확보  △기자교육시스템 강화 등이 언급됐다.

   
▲ 전현직 학보사 기자들로 구성된 '내가 학보사 노답이라 그랬잖아' 페이스북 모임을 주축으로 기자세미나 기획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여대에서 열린 2차 기획회의. 사진=금준경 기자.
 

이 자리에서 백윤호 기획단장은 연대체를 조직하는 방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국적 연대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매년 나오지만 제대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연대를 하든 간에 지금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추후에는 편집권을 학교에 완전히 뺏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백윤호 기획단장은 “여러 대학에서 독립언론이 만들어졌다. 그만큼 학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학보사 기자들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안주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어떤 대안을 목표로 하든 간에 편집권 보장을 위해 학생기자와 학보사 스스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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