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전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가 지난 8일 책을 펴냈다. 제목은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다. 대부분 정치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했고, 정부여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했다. 출판 시기에 맞춰 그가 언론과 했던 인터뷰 역시 관련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는 책에서 우리 정치만 진단하지 않았다. 크게 조명 받지는 않았지만 우리 언론도 도마에 올렸다. 그는 해당 챕터의 이름을 ‘합리적인 진보언론을 기다리며’로 지었다. 무슨 의미일까. 또, 그가 특파원으로서 겪은 한국 언론의 민낯은 어땠을까. 자유인인 이코노미스트 ‘전’ 특파원으로부터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었다.

- 한겨레가 좀 더 합리적인 언론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의미인가.
“한겨레도 가끔은 정부를 칭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만일 잘 한 일이 있다면 말이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도 종종 정부를 비판한다. 그러나 야당지로 불리는 신문들은 대통령을 칭찬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만일 당신이 한겨레만 읽는다면 아마 박근혜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박근혜 정부는 또 충분하지는 않지만 복지 예산을 늘리기도 했다. 잘한 점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 진보언론이 좀 더 ‘소프트’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소설가인 한국인 친구가 조선일보의 문화면이 한겨레의 문화면보다 훨씬 낫다고 얘기한 적 있다. 그녀는 역설적으로 한겨레는 문화보도에 있어서 보수적이며, 정치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문화를 다룬다고 말했다.”

“결국 자본력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본다. 보수신문은 돈이 많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더 많이 쓸 수 있다. 이는 더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게 되는 요인이 되고, 그렇게 확보한 독자에게 이들 신문의 성향을 전파할 수 있다. 진보언론도 이용자의 구미를 당기는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 책에서 종편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JTBC는 예외였다. 그러나 JTBC가 양질의 보도를 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삼성에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JTBC는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중요한 건 방송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JTBC의 보도가 가치있다고 느낀다. 물론 손석희가 사라진다면 JTBC의 보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JTBC의 보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러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KBS가 BBC처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이 되기를 희망한다.”

다니엘 튜더는 책에서 우리나라의 ‘학벌지상주의’의 문제점을 여러 번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하버드 박사가 똑똑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밝혔다. 그가 책을 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재소녀’소동이 벌어졌다.

- ‘천재소녀’소동이 최근 있었다.
“학벌지상주의의 직접적인 결과다. 미디어는 누가 명문대에 갔는지 관심을 둔다. 그것이 특정 사안의 본질과 무관할지라도 말이다. 내 첫 번째 책이 한국에서 출판됐을 때 출판사는 표지에 ‘옥스퍼드대 출신’이라고 써 넣었다. 나를 언급하는 기사, 심지어 내가 차린 맥줏집을 설명하는 기사에서도 내가 옥스퍼드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언급됐다.”

“이것은 한국 미디어만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인 문제다. 사람들이 이렇게 인식하니 높은 사회적 지위를 성취하기 위해 극단적인 경쟁이 벌어진다. 천재소녀의 거짓말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그녀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 천재소녀 오보 파문은 우리 사회의 학벌지상주의의 병폐를 드러냈다. 사진은 YTN ‘하버드-스탠퍼드, '천재 소녀' 동시 합격 부인’ 보도 갈무리.
 

‘부분적 언론 자유국’. 프리덤하우스는 2011년 한국을 ‘언론 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하향조정했고 이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다니엘 튜더는 책에서 “공식적인 검열 증가, 언론에 영향을 행사하려는 정부의 입김, 언론인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대통령의 측근을 주요 언론사의 고위 보직에 앉힌 결과”라고 지적했다. 다니엘 튜더는 특파원으로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우리사회의 언론자유의 위축을 어떻게 체감했을까.

-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의 재판을 어떻게 보나.
“암울하다. 가토 지국장은 한국에서 이미 알려진 루머들을 재활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당국은 그가 기소를 당할만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가토 지국장이 만일 영국이나 미국, 중국 언론인이었다면 기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우호적인 여론이 만들어지기 힘들어 비교적 손쉬운 타깃이 됐다.”

- 정부는 루머를 엄단한다는 입장이다.

“세월호참사와 메르스사태 등 현안에서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했더라면 이 같은 루머가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이 무엇을 하는지,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알리는 대신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늘고 루머가 확산되니 화를 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차이 중 하나라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소통을 하고자 노력했다.”

- 책에서 한국의 언론자유가 꾸준히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가 아는 KBS 언론인들은 노무현 정부 때보다 이명박 정부 때 언론자유가 훨씬 위축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자유가 더욱 위축됐다고 지적한다. 내가 아는 MBC 언론인은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났다.”

- 정치적인 면 외에는?
“대기업이 광고를 수단으로 언론을 통제한다. 이는 언론인이 대기업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기 힘들게 만든다. 한 대기업의 홍보팀 직원과 미팅을 한 적 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이 사안을 보도한다면 바보가 되는 거다.’ 그 홍보팀 직원의 말은 기가 막혔다. 자신의 기업이 갑이고 언론은 을이라고 느끼는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발언이었다. 감사하게도,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위협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광고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신문들은 광고에 종속돼 있다.

- 한국언론과 영국언론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
“한국에도 좋은 언론인이 많지만 ‘주류’가 되고자 하는 언론인도 많다. 대부분의 영국 언론인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 혹은 반골이라고 여긴다. 한국의 많은 언론인들은 권력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다는 환심을 사기를 원한다고 느낀다. 한번은 외신기자들, 국내기자들이 함께 한국 대형은행의 은행장 저녁 만찬에 간 적이 있다. 한국의 지역 언론인 한명은 은행장이 얘기할 때마다 어린 소녀처럼 킥킥거리며 비위를 맞췄다. 당황스러웠다.

“영국에서는 탐사저널리즘이 활성화 돼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가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다는 점도 차이 중 하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국의 언론환경이 무조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은 황색저널리즘이 비일비재하다. 사실을 조작하는 언론도 있다. 한국언론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영국의 상황이 낫다고 보기도 힘들다.”

   
▲ 다니엘 튜더와 이승윤씨가 함께 창간한 소셜 클라우딩 매체 '바이라인'.
 

다니엘 튜더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맛있다”며 맥주 논쟁을 일으켰고, 이후 손수 맥줏집을 개업했다. 그는 2013년 이코노미스트를 퇴사하고, 지난해 7월 한국인 이승윤씨와 함께 영국에서 독립언론 ‘바이라인’을 창간했다.

- 클라우드펀딩 모델의 언론은 유럽에도 이미 많을텐데, 차별성이 있나.
“사업을 시작한지 7주 만에 우리는 영어권 클라우드 펀딩 저널리즘 사이트 중 트래픽이 가장 높은 매체가 됐다. 심지어 휴 그랜트도 우리의 필진 중 한명이다. 물론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프리미엄’급 보상을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자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 여분의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고, 자필 서명이 들어간 책도 제공한다. 앞으로는 기자들과 독자들을 관심사에 따라 연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 계획이다.”

- 좋은 직장인 이코노미스트를 그만 두고 바이라인을 창간한 이유는?
“직장 상사와 갈등이 있었다. 동시에 취미로 시작한 맥줏집이 번창해서 진짜 사업이 됐다. 그래서 따로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게 됐다.”

“바이라인을 창간하게 된 이유는 서양의 뉴스 미디어가 가진 문제 때문이다. 영국에선 불과 4명의 사람이 발행부수 기준으로 전체 언론의 80%가량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의 신문은 그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정당을 지원한다. 이들 신문은 종종 사실을 조작하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안을 만들고 싶었다.”

 

번역 문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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