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이 공사대금 지급 소송에서 하청업체를 이용해 또 다른 하청업체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롯데건설 하청업체인 아하엠텍은 롯데건설로부터 공사비를 받지 못해 자금사정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재하청업체인 소망엔지니어링으로부터 공사비를 달라는 소송이 들어와 더 궁지에 몰리게 됐다. 그러나 소망엔지니어링 대표가 최근 자신이 제기한 소송에서 롯데건설의 개입이 있었다는 정황을 뒤늦게 양심고백해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 2011년 아하엠텍이 공사비 지급을 요구하자 아하엠텍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롯데건설의 재하청업체인 소망엔지니어링의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해 ‘아하엠텍으로부터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고, 재판부는 아하엠텍이 소망엔지니어링에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롯데건설에도 공사비를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롯데건설과 아하엠텍의 2심 소송 중 소망엔지니어링 정아무개 대표가 갑자기 양심고백을 했다. 아하엠텍으로부터 공사비를 이미 받았는데 소망엔지니어링 직원이 대표에게 잘못 보고해 아하엠텍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며 이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는 내용이었다. 아하엠텍과 소망엔지니어링의 소송에서 재판부는 소망엔지니어링이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대표는 “롯데건설 관계자와 소망엔지니어링 측 관계자가 자신(정 대표)의 뜻과 무관하게 1심 소송에서 답변했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를 정정한다”며 “공사비를 이미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소망엔지니어링)도 롯데건설에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다 지난해 회사를 정리했고, 정리하면서 보니 우리가 아하엠텍에 못할 짓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돼 정정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소망엔지니어링이 아하엠텍에 공사비를 받았음에도 받지 않았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롯데 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정황도 있다. 정 대표는 “대표가 서류를 다 만지는 게 아니라 소망엔지니어링의 김아무개 이사와 롯데건설 관계자 사이에서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는 모른다”면서도 “우리가 갑을관계로 맺어진 롯데건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는 위치였다”고 말했다. 소망엔지니어링은 아하엠텍보다 작은 업체였지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롯데건설의 협력업체로 등록돼 있었다. 

   
▲ 지난 1월 18일 MBC 시사매거진 2580 화면 갈무리. 아하엠텍 안동권 대표
 

아하엠텍 안동권 대표는 이를 “롯데건설이 아하엠텍에 공사비를 주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든 중소기업에 소송을 제기했고, 소망엔지니어링마저도 아하엠텍에게 공사대금을 받았음에도 받지 않았다고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은 아하엠텍을 파산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소망과 아하엠텍 간 소송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고, “이미 공정위나 재판부에서 롯데 측에 큰 잘못이 없음이 드러나고 있는데 아하엠텍이 지속적으로 롯데건설을 공격하고 있다”는 반박했다. 아하엠텍은 지난 2월 10일 동아일보 1면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광고를 냈는데 롯데건설은 이에 대해 안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 지난 2월 10일 동아일보 1면. 아하엠텍의 억울함을 담은 광고.
 

아하엠텍은 2010년 공사를 완료했지만 롯데건설이 약속했던 추가공사 대금 147억 중 약 100억원을 주지 않았다며 같은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제소했다. 당시 아하엠텍과 롯데건설은 추가 공사에 대해 관행에 따라 정식계약서는 없이 합의했다. 

이 사안에 대해 공정위 심사보고서가 나오기까지는 11개월이 걸렸다. 당시 롯데건설이 아하엠텍에 지급한 금액은 약 25억원이다.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롯데건설에 ‘부당하도급대금 113억원, 과징금 32억3600만원, 벌점 3점’ 등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담겨있다. 하지만 2011년 9월 공정위 심결위원회는 롯데건설에 ‘경고’, ‘무혐의’ 등의 경징계 처분을 내린 채 심의를 종결했다. 

안 대표에 따르면 ‘공정위가 대기업을 상대로 하면 대부분 패소한다’고 말했던 당시 공정위 서기관은 국무총리실을 거쳐 공정위 과장으로 승진했고, 심사보고서와 다른 취지로 심의를 종결시킨 당시 장아무개 심결위원장은 이듬해 롯데건설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대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이학영 의원은 “자기가 담당했던 사건의 가해자인 대기업의 대리인을 맡았던 법무법인에 바로 취업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며 공정위와 롯데건설의 유착 의혹에 대해 문제제기한 바 있다. 

공정위 2차 평결 직전인 2011년 8월 롯데건설은 아하엠텍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는 ‘일시적 판단 유보’를 평결했고, 그 사이에 롯데건설은 아하엠텍에 28억39만원을 송금했다. 롯데건설이 아하엠텍에 총 지급한 금액은 53억8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후 공정위는 2차 평결에서 롯데가 미지급했던 공사대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를 들어 시정조치의 실익이 없다며 ‘경고’ 징계만을 내렸고, 나머지 공사대금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주장이 상반돼 사실 확인이 어렵다며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이번 사건은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도 지적했듯이 롯데건설과 공정위의 유착이 거의 사실로 드러난 사건이니 사건 전체 과정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당사자의 주장이 상반되니까 공정위를 찾는 것인데, 롯데건설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주고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고 말했다. 아하엠텍은 지난 2013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300여명의 직원 중 200여명 이상을 내보내야 했다. 

정치권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에서는 공정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4월 이학영 의원의 대표발의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사실관계 확인 곤란, 시정조치의 실효성 유무 등을 이유로 심의절차를 종료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는데 이는 실제 이 사건에서 공정위가 심의를 종료하면서 든 이유들이다. 

또한 개정안은 공정위 사건 처리기한도 2개월 이내에 조서관이 심사보고서를 심결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부득이한 경우 2개월 연장하도록 했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징계하도록 했다.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중소기업에겐 자금난이 지속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공정위 심사보고서를 신고인에게도 송달하는 규정도 포함했다. 현재 심사보고서는 신고인은 받아볼 수 없다. 안 대표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억울한 중소기업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소망엔지니어링 대표의 양심선언도 나왔으니 이제 롯데의 갑질이 밝혀지고 공사대금을 빨리 받아서 회사가 살아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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