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 한건 했다. 4일 오후 10시 40분 박원순 서울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삼성병원 의사(35번)가 증상이 심해지고 있는데도 1565명이 참석한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무능한 보건당국과 경솔했거나 부도덕했던 의사(35번)가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 나선 박 시장과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아침종합신문들은 대부분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을 의심없이 전달했다. SNS에서는 박 시장에 대한 찬양이 이어졌다. 시민의 안전에 좀 더 신경을 쓰겠다는 박 시장의 기자회견 방향에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만 우려되는 몇몇 정황들이 있다. 박 시장은 해당 의사가 증상을 인지하고도 1565명이 참석한 행사에 갔다고 했지만 담당 의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확산되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은 수 없이 쏟아지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을 이길 수 없다. 박 시장은 보건당국을 믿지 못하겠다며 해당 행사 참석자 1500여명 명단을 확보해 직접 이 사실을 알리고 대책본부장으로 진두지휘하겠다며 나섰다.   

5일 오전 현재 메르스 확진 환자는 41명, 사망자는 4명, 격리자는 자가격리 1503명과 기관격리 164명을 합해 총 1667명이다. 격리가 해제된 인원은 62명이다.  

다음은 5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박 시장의 기자회견 얘기로 도배가 돼 있다. 검증내지 반박의 시간이 부족한 어제(4일) 밤늦게 이루어진 기자회견이고 내용이 선정적이기 때문에 1면은 예상대로다.    

경향신문 <메르스 방역, 서울이 뚫렸다>
국민일보 <‘소음·진동’엔진 선정 현역 소장, 압력 의혹>
동아일보 <“3차 감염 서울 의사 1500여명 참석 행사에”>
서울신문 <‘메르스 대책반’ 2년 전 만들고도 당했다>
세계일보 <‘메르스 확진’ 서울 의사, 1500여명 접촉>
조선일보 <메르스 공포 차단, 대통령이 前面에 나서야>
중앙일보 <“메르스 확진 서울 의사, 1565명 모인 총회 참석”>
한겨레 <환자가 1500명 행사장 가고, 시외버스 타고 ‘병원 밖 비상’>
한국일보 <메르스 감염 의사, 1600여명 직간접 접촉>

박 시장에 따르면 해당 의사는 메르스 확진 판정(6월 1일)을 받기 전인 5월 29일부터 증상이 시작됐고 30일 증상이 심화됐다. 그럼에도 의사는 30일에 1565명이 참석한 개포동 재건축 조합행사에 참석했다. 31일 돼서야 시설격리 조치됐으니 그 전 이틀간 메르스가 확산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 시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3일 오후 보건복지부로부터 이 사실을 파악한 이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박 시장은 보건 당국이 해당 행사 참석자 명단과 35번 환자인 의사의 동선을 확보하지 않았다며 비판했고,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자료를 입수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는 이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시민의 삶을 보호하는 길에 직접 나설 것”이라며 “1565명 위험군 전원에 대해 잠복기 동안 외부출입이 강제적으로 제한되는 자택격리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35번 환자 “박 시장 거짓말하고 있다”

박 시장의 기자회견으로 의사인 35번 환자는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혹 나중에 박 시장의 말이 일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더라도 ‘메르스 증상을 판단할 능력을 갖춘’ 의사가 위험을 알면서도 돌아다녔다는데 대한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해당 의사는 박 시장의 기자회견 직후 YTN, 프레시안 등과 인터뷰를 통해 5월 31일 이전에는 메르스라고 판단하지 못했고, 메르스라고 판단한 31일부터 자가격리에 들어갔으며 이후에는 계속 아내와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내는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았다. 또한 박 시장은 확진통보시점을 1일이라고 했지만 의사는 2일에 통보받았다고 했다.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은 이어졌다. 박 시장은 해당 의사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14번 환자와 접촉했다고 말했지만 해당 의사는 14번 환자를 진료한 적이 없고 누군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해당 의사가 30일 행사 뿐 아니라 31일에도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고 말했지만 해당 의사는 31일날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아 신청만 해놓고 심포지엄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발표는 해당 의사가 보건당국과 상담한 내용을 보건당국의 입을 통해 서울시가 전해들은 내용이다. 해당 의사는 “박 시장이 (전해들은 얘기에 대해) 나에게는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의사는 만일 박 시장의 주장처럼 29일부터 증상이 있었다면 자신의 아내에게 전염시키지 않을 수 있었겠냐며 억울한 심정을 나타냈다. 

무능한 보건당국 비판하면 다 용서되나 

모든 게 정부 탓이다.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에 미흡했다’는 비판이 시민들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서울시장이 대중흐름에 정확히 올라타느라 해당 의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의구심은 지울 수 없다. 현재 여론의 흐름은 한곳으로 집중된다. 보수성향의 신문마저 박 대통령에게 메르스 대응실패를 이유로 강하게 비판하는 흐름이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메르스 공포 차단, 대통령이 前面(전면)에 나서야>를 통해 미국 에볼라 사태 때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진과 포옹까지 하면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섰다며 박 대통령을 질타했다. 다른 신문들도 기사와 사설을 통해 메르스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던 정부와 보름간 사태를 지켜만 보던 청와대를 비판했다. 

   
▲ 5일자 경향신문 1면.
 

신문들은 박원순 띄우기에 나섰다. 이는 자연스럽게 국민들에게 필요이상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를 <메르스 방역, 서울이 뚫렸다>로 뽑았다. 의사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 표현은 자극적이다. 5월 30일 1565명이 참석한 행사에 해당 의사가 긴밀한 접촉을 했을 가능성은 드물다. 

   
▲ 5일자 서울신문 2면.
 

대한감염학회 등이 개최한 세미나에 따르면 메르스의 치사율은 10%로 일반 폐렴 수준이다. 오명돈 서울대의대 감염내과 교수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 환자 가족 전염률은 4%에 그쳤다. 자신의 아내조차 음성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박 시장과 신문들은 마치 의사가 전염병을 퍼뜨리고 사람처럼 묘사하게 된 셈이다.

이 사건에서 박 시장의 주장이 탄력을 받은 이유는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 뿐 아니라 정부의 실책이 있어서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2일 해당 의사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됐는데도 보건당국이 이 의사를 3일자 일일환자 집계현황에서 빠뜨렸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취재진과 보건복지위 의원실은 보건당국의 입장을 듣지 못했고 이런 상황은 국민들에게 불안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중동 박 시장 주장 건조하게 보도, 보건당국 비판에 집중

조중동은 박 시장의 기자회견 내용를 간결하게 전달하며 보건당국을 비판했다. 서울시의 입장을 해석하거나 크게 키우지는 않았다. 동아일보는 사설 <정확한 정보공개 없이 메르스 진압 가능한가>에서 “한국 정부가 비밀주의를 고집하는 바람에 홍콩 등 주변 국가들의 눈총까지 받는 상황”이라며 “의료기관과 환자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메르스에 대한 최신 정보도 소상하게 공개해 지나친 공포심을 갖고 허둥지둥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5일자 동아일보 사설.
 

     
불신정부에 대항한 시민들, 직접 정보 수집 나서
원칙 지킨 병원은 이미지 타격입어

불안한데 막상 필요한 정보를 정부에서 내놓지 않자 시민들은 필요한 정보를 직접 가공했다. 정부가 메르스 확진환자가 생긴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하자 한 시민이 자발적으로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들었다. 이는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 5일자 경향신문 4면.
 

정부의 비공개 원칙에 따라 대응한 병원이 피해를 본 사례도 발생했다. 분당제생병원이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이 병원은 메르스 의심환자가 응급실에 실려와 즉각 응급실을 폐쇄하고 의료진과 응급실 환자 모두를 15시간 동안 격리조치했다. 하지만 이후 이 환자가 메르스 감염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정부가 메르스 접촉 병원을 공개하고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하면서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렸다면 국민들은 안심하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정보를 차단하면서 인터넷과 SNS상에서 분당제생병원은 메르스 위험이 없음에도 환자가 눈에띄게 감소한 상황이다. 제대로 대응하는 바람에 이미지만 나빠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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