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의 ‘중간평가’ 결과 4개 채널 모두 사실상 ‘낙제점’을 받았다. 연이은 논란에도 막말·편파방송은 되레 늘었다. 자신들이 제시한 콘텐츠 투자계획을 제대로 이행한 종편은 한 곳도 없었다. TV조선과 채널A는 보도프로그램을 과다하게 편성했고, MBN과 JTBC는 재방송 비율이 높았다. 보다 실효성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는 4일 오후 과천정부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종합편성채널의 2014년 이행실적을 발표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종편 재승인심사 당시 재승인 조건으로 6개월에 한번씩 △방송의 공적 책임 및 공정성 확보 방안 △콘텐츠 투자 △재방송 비율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 △조화로운 편성 등을 점검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이행실적 발표는 지난해 종편 재승인 이후 처음 나온 평가결과다.

종편의 오보·막말·편파방송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TV조선은 2013년 대비 2014년의 오보·막말·편파 방송이 3배 이상 늘었으며 심의조치 건수도 97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해 TV조선의 엄성섭 앵커는 한국일보 기자를 가리켜 ‘쓰레기’라고 지칭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권고처분을 받았다. 또, TV조선의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에서는 출연진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참가자를 향해 “친북”, “국가 파괴 세력”이라고 말해 심의위로부터 권고처분을 받았다.

채널A의 관련 심의조치 건수도 크게 늘었다. 2013년 20건에서 2014년 4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JTBC 역시 같은 기간 심의조치 건수가 7건에서 16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나 다른 종편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고삼석 위원은 “말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막말을 종편에서 하고 있다”면서 “정부로부터 사업권을 받아 방송하는 사업자라면 최소한의 품격을 갖춰야 한다. 이들 종편이 지상파 방송사업자였다면 방송사 문을 닫아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 ※ MBN의 경우 2015년 하반기부터 이행실적 점검 예정.
 

지난해 콘텐츠 투자계획을 제대로 이행한 종편 사업자는 없었다. 사업자 별 사업계획 대비 투자이행률은 MBN 95.7%, TV조선 95.1%, 채널A는 81.3%, JTBC 72.8%순으로 나타났다. 표면적으로 JTBC는 투자계획 이행률이 가장 낮았다. 그러나 실질적인 투자액은 JTBC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종편4사의 콘텐츠 투자액은 JTBC 1174억4100만원, 채널A 505억5200만원, TV조선 459억6400만원, MBN 39억2100만원이었다. 실제 투자액이 가장 많은 JTBC가 이행률이 가장 낮게 나타난 까닭은 회사마다 방통위에 보고한 콘텐츠 투자계획 목표치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JTBC와 MBN은 사업계획서에 밝힌 재방비율을 지키지 못했다. JTBC는 재방송을 49.5% 이하로 편성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난해 실제 재방 비율은 57%에 달했다. MBN은 재방송을 45.6% 이하로 편성하겠다고 했으나 지난해 재방송을 50.9% 편성했다. TV조선과 채널A의 재방비율은 각각 37.2%, 41.4%로 나타났다. 이들 방송은 재방비율 계획을 각각 44.2%, 44.8% 이내로 정해 재방비율을 지켰다.

그러나 TV조선과 채널A는 보도프로그램 편중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재방비율이 낮았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다채로운 편성을 해서 재방비율이 낮은 게 아니라 재방송을 하기 힘든 보도프로그램을 많이 편성했기 때문에 재방비율이 낮았다. TV조선의 보도프로그램 편성비율은 51.0%, 채널A의 경우 44.2%로 나타났다. 두 채널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보도프로그램에 올인하는 경향을 보였다.

보도 프로그램 과다편성 문제는 그간 방통위에서 꾸준히 지적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김재홍 위원은 “채널A와 TV조선은 사실상 보도채널을 운영하면서 종편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라며 “엄정한 시정조치를 내려야 한다. 다음 재승인 심사 때는 조화로운 편성여부를 단순한 권고사항이 아닌, 실효성 있는 제재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TV조선의 엄성섭 앵커는 뉴스진행 도중 한국일보 기자를 '쓰레기'라고 지칭해 논란이 됐다. 사진은 TV조선 프로그램 '속사정'의 한 장면으로 엄성섭 기자의 '톤 업 뉴스'를 풍자한 모습.
 

방통위의 종편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늘어나는 오보·막말·편파방송, 미흡한 콘텐츠 투자, 높은 재방송 비율 또는 과도한 시사프로그램 편성 등 지난 재허가 당시 방통위가 개선을 요구한 사항 중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흡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고삼석 위원은 “종편 출범 4년이 지난 현재 상태를 보면 당초 종편을 도입하면서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종편에 대한 점검을 통해 전반적인 정책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편의 과도한 보도프로그램 편성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전체 방송 프로그램 중 50% 이내로 오락프로그램을 편성하라는 조항 외에 편성 비율에 대한 규정이 없다. 최성준 위원장은 “종편이 다양한 장르를 조화롭게 편성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위원들 간 이견이 없다”면서 “재승인 심사 때 과도하게 편중된 편성을 하면 점수를 깎는 방안과 시행령을 손질하는 방안이 있다. 실효성 있는 수단을 도입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전문가들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방통위는 종편의 ‘방송의 공적책임 및 공정성 확보’를 위해 △사실검증 시스템 강화 △진행자 및 출연자에 대한 사전모니터링 및 교육 내실화 △오보·막말·편파 방송 방지를 위한 실질적·구체적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강제성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김재홍 위원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발언이 나온 프로그램을 연출한 채널A의 PD는 아직도 시사프로그램을 연출한다”면서 “큰 문제가 생겼는데도 제대로 된 문책이 없었다. 심의 제재도 효과가 없다. 상황이 이러니 오히려 막말, 편파방송이 늘어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