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과 종편이 노건호씨의 작심발언을 연일 논란으로 키우고 있다. 조중동은 이틀이나 지난 사안을 비중 있게 보도하며 노건호씨와 추모객들의 언행을 도마에 올렸다. 조선일보와 MBN은 얼토당토 않은 배후설, 출마설을 보도하며 소설을 썼다. 추도식 논란을 빌미로 문재인 대표를 견제하고, 야권의 분열은 더욱 키우려는 모양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씨는 지난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김무성 대표를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NLL(서해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며 내리는 빗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도록 줄줄 읽던 모습이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줬다”고 말했다.

노건호씨는 그러면서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로도 모자라 선거에서 이기려고 국가기밀 문서를 뜯어 읊어대고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댓글을 달아 종북몰이를 해댔다”면서 “(이후) 아무 말도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보를 뵙는 듯 하다”고 말했다. 이날 일부 추모객들은 김무성 대표와 김한길, 천정배 의원을 향해 물을 뿌리고 야유를 했다.

   
▲ 25일자 조선일보. 조선은 이틀 지난 사안인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두 지면에 걸쳐 다뤘다.
 

25일 조중동은 추도식 현장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조선과 중앙은 해당 사안을 1면에 다뤘다. 이틀이나 지난 사안으로는 이례적으로 보도비중도 컸다. 조선일보는 해당 사안을 8건, 동아일보는 4건(사진기사 2건), 중앙일보는 4건의 기사로 다뤘다. 보수신문 입장으로선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친노세력을 견제하고 야당 전반의 분열을 부각시킬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이들 언론은 노건호씨의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노건호씨의 발언이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헤아렸을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4일 방영된 채널A ‘시사주크박스’에서 황태순 평론가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언론은 노건호씨의 작심발언을 자극적으로 전달했다. 조선일보는 ‘비아냥’, ‘독설과 조롱’이라고 썼으며 동아일보는 ‘비꼬았다’, ‘비아냥’, ‘공격적 발언’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들 신문이 말하는 배후는 결국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대표로 귀결됐다. 동아일보는 “건호씨의 입을 빌려 문 대표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 아니겠느냐”는 익명의 새정치민주연합 당직자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비선’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정치적이고 과격한 단어들을 보면 친노 핵심 인사들이 대신 써 준것 같은 의심이 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비노계 의원의 말을 전하며 “문재인 대표의 비선으로 지목됐던 A씨와 친노 중진 정치인 B씨 등이 배후로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배후설에 마땅한 근거는 없다. 익명의 야당 관계자 인용이 전부다. TV조선은 나름의 근거를 내세웠지만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었다. 지난 23일 방영된 ‘황금펀치’에서 허성우 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은 “회사원인데, 단어나 문장을 쓰는 것이 굉장히 격하다”면서 “친노들이 많이 쓰는 용어가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과도 반성도 필요없다’가 주로 친노세력들이 많이 쓰는 단어들”이라며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친노에서 대독시키지 않았겠나”라고 주장했다.

   
▲ 종합편성채널의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 관련 보도 및 시사프로그램 갈무리. 위부터 TV조선, 채널A, MBN.
 

이들 언론은 노건호씨가 출마를 준비한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노건호씨의 발언을 정치적 행보를 위한 수단으로 깎아내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지난 24일 MBN 뉴스8은 “정치권에서는 아버지의 유산인 친노의 결집을 노렸다는 해석과 본인의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엇갈려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3일 TV조선 ‘황금펀치’에서 허성우 이사장은 “오늘 발언은 내년 총선을 출마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주장했다.

노건호씨의 배후설까지 캐낸 보수언론들이 정작 노건호씨의 발언이 나오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외면했다. 노건호씨는 김무성 대표를 향해 “아무 말도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났다”고 말했다. 사전연락 없이 추모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문성근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참석한다면 봉화측으로서는 의전 준비를 위한 협의가 필요한데 언론에만 알리고 경찰 병력까지 보낸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에 알렸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노무현재단측에는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NLL 대화록 논란이 미결로 끝난 것도 노건호씨 작심발언의 배경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 당시 김무성 대표는 부산유세에서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낭독해놓고선 “지라시에서 봤다”고 해명했다. 설득력이 낮은 해명이었지만 김무성 대표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국가 기밀을 읊었다”는 지적은 외면한 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 그의 NLL발언은 그의 국가영토 포기 의혹의 출발점이 된 게 분명하다”며 동문서답을 했다.

   
▲ 25일자 동아일보 사설.
 

조중동은 야권의 분열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들 신문 모두 김한길 새정치연합 의원과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 추모객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봉하마을은 친노, 비노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야당 상황의 축소판”이라며 “문 대표를 연일 비판해온 김한길 의원에게는 ‘쓰레기’같은 원색적 욕설이 난무했고, 천정배 의원에게는 ”배신자“라는 야유가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추모객들을 비판하면서 이들 언론은 ‘노무현 정신’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추모객들의 항의를 언급하며 “노무현 정신을 훼손하고 노 전 대통령을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가두는 자폐적 행동”이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통합과 단결을 역설한 ‘노무현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물론 노건호씨와 일부 추모객들의 언행이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빌미삼아 보수신문과 종편은 근거 없는 배후설, 출마설을 퍼뜨리고 필요 이상의 정치공세를 했다. 통합과 단결과는 거리가 먼 분열행위를 하고 있는 건 일부 추모객만이 아니다. 조중동과 종편 자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보도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 언론이 ‘노무현 정신’을 갖다 쓰는 게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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