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한 4년제대학 언론학과의 행정실. 신문이 쌓여 있다. 높이가 50cm는 넘어 보인다. 신문을 활용한 전공수업을 위해 비치한 신문들이다. 학생들은 조별로 정해진 종합일간지 1부씩을 매일 가져다 읽고, 매주 해당 신문 보도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신문을 거의 가져가지 않는다.

“학생들이 신문에 별로 관심이 없다. 신문을 가져가라고 해도 잘 가져가지 않는다. 대신 PDF로 구독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 수업을 담당하는 조교 A씨(26)의 말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 B씨(21)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는 기사인데, 굳이 종이신문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적지 않은 학생들이 종이신문 대신 인터넷을 통해 해당 언론의 기사를 읽고 발표를 한다.

   
▲ 학과 전공수업으로 신문활용교육을 진행 중인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의 언론계열학과 행정실. 조별로 신문을 가져가 읽고 발표하는 시스템이지만, 학생들이 신문을 가져가지 않아 신문이 쌓여있다.
 

초·중·고등학교의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소재 한 여고에서는 격주로 중고등학생 대상 경제신문인 ‘틴매일경제’가 교실마다 비치되지만 읽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이 학교의 학생 C씨(18)는 “신문이 오지만 따로 읽는 학생을 본 적 없다. 신문을 활용한 수업도 따로 없다”고 말했다. NIE 거점학교에서 근무 중인 경희여중 강용철 교사는 “아이들이 종이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데 익숙하다”고 말했다.

NIE(신문활용교육)가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흘렀다. 1995년 중앙일보가 NIE 지면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9개 중앙일간지, 13개 지역일간지가 NIE 지면을 마련했다. NIE 거점학교는 100여개가 넘는다. 대학에서도 신문방송학과와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중심으로 신문을 활용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년 동안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1020세대와 신문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현재의 1020세대는 어린시절부터 디지털 매체를 주로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나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주로 소비한다. 이런 패턴으로 뉴스를 소비하면 사회의 주요 현안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는 이용자와 이용자의 지인들이 공통으로 갖는 ‘취향’위주의 폐쇄적인 뉴스소비가 이뤄진다. 포털뉴스는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 기계적 중립 보도가 많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낚시성 기사, 선정적 기사가 횡행한다. 인터넷 공간의 뉴스는 뉴스를 매체가 아닌 개별 기사 단위로 소비하게 만든다. 자신이 읽은 기사가 어느 언론의 기사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이신문은 인터넷 뉴스와 달리 ‘뉴스’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다. 그날 주요한 사안들이 분야별로 신문 지면에 담긴다. 특정 사안이 우리 공동체에 어떤 의미인지 심층적으로 설명한다. 전경란 동의대 디지털콘텐츠공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종이신문을 외면하고 있지만 종이신문을 보면 인터넷에서 개별적인 기사를 보는 것과 달리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접할 수 있고, 편집과 배치에 따른 지면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1020세대에게 종이신문을 읽게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이 필요하며, 지금보다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 NIE의 핵심목적을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살아가는 힘이 되는 매개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정보가 범람하는 현대에 신문의 역할은 되레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신문활용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학업성취율’이 높으며 보다 ‘사회참여’를 많이 한다는 미국 신문협회의 연구결과도 있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의 활성화는 신문산업에 보탬이 된다는 이점도 있다.

   
▲ 종합일간지.
 

문제는 교사들부터 신문을 읽지 않고 신문활용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NIE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대학의 교직이수과정에서 NIE를 활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다. 구체적인 교육방법론 역시 부재하다.” 강용철 교사의 말이다. 교사들이 격무에 시달려 신문을 읽을 여유가 없다는 점도 장애요인이다. 특히, 젊은 교사들은 자신들이 신문을 읽는 습관에 없으니 신문을 적극적으로 교육에 활용하려는 의지 또한 강하지 않다.

신문을 활용하는 교육이 교과 과정에 연계되지 않는 점 또한 개선해야 한다. NIE 거점학교의 경우에도 대부분 클럽활동, 방과후 활동에만 NIE교육이 실시된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 신문을 읽게 하는 학교도 있지만 극소수다. 반면 NIE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핀란드,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정규 교과와 신문활용교육을 연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비판하며 읽기’라는 단원이 생겼지만 ‘신문과 진실’이라는 논설문 한편이 실린 정도다. 실제 신문보도내용을 비교하는 등의 구체적인 심화학습은 교사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

신문사가 1020세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은 점도 신문을 활용한 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은 원인 중 하나다. 물론 각 신문이 NIE지면을 마련했고, 매일경제의 ‘틴매일경제’, 한국경제의 ‘생글생글’ 등 10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용매체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입시가 주된 목적이다. 기존 신문은 10대와 동떨어져 있다. 기성세대가 읽기에도 내용이 어렵고, 전문적이고, 불친절하다. 신문이 이슈를 좇다보니 해설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신문이 아이들과 거리를 좁히는 데 장애요인이 된다.

유럽의 NIE 강국은 10대가 신문의 고객이자 주체다. 프랑스의 경우 10대를 위한 신문이 별도로 제작된다. 대상은 7~10세, 10~14세, 14~17세 등으로 세분화 됐다. 이들 신문은 10대의 이슈를 주로 다룬다. 10대가 직접 기사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신문 속 이슈를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여기게 만든다. 핀란드의 NIE 전문신문 헬싱키신문은 10대의 가사 기자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신문사의 모토는 “최상의 NIE는 학생들이 기자가 돼 신문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신문을 권하려 해도 우리 신문이 ‘정파적’이라는 사실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점은 하나의 이슈에 대해 신문별로 극단적인 시각이 나타나는 사실이다.” 황치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언론재단이 NIE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신문기사의 편향성’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선진국에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정론지들이 하나씩 있지 않나,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정론지가 없다. 한겨레가 신뢰도가 높긴 하지만 사안에 따라 정파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에게 특정 신문을 읽으라고 권하기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신문의 정파성 문제는 교사가 어느 신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회현안에 대한 시각차가 현저하게 차이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전경란 교수는 “각 정파의 뉴스, 특정 신문만을 골라 교육하는 방식은 NIE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용철 교사는 “신문에 대한 판단은 장기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면서 “교사가 특정 신문사의 성향을 미리 알려주게 되면 선입견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비판적 읽기 교육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신문활용 교육의 목적을 살리면서 신문의 정파성 문제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주로 여러 신문의 기사를 비교해 매체별 특성을 파악하게 하고, 학생 스스로 어떤 신문의 논조가 합리적인지를 고민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비판적 읽기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경희여중은 총 다섯단계의 신문활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단계, 신문에 대한 동기유발. 2단계, 신문 구성요소 공부. 3단계, 신문 기사분석 및 활동지 작성. 4단계, 신문스크랩. 5단계, 나만의 신문 만들기다. 신문의 이슈가 자신의 삶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탐구하는 활동으로 시작해 신문의 구성과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 신문별로 어떤 논조 차이를 갖는지 등을 단계적으로 학습하는 내용이다. 가야고등학교는 ‘좋은뉴스와 나쁜뉴스 선정하고 이유 밝히기’, ‘기사 속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등을 교육한다.

그러나 이 같은 교육은 매우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신문을 활용하는 교육의 대다수는 학급신문을 만들고, 기사를 스크랩하고, 기사를 통해 어휘를 공부하거나 시사상식을 공부하는 내용이다. 사교육 시장에서도 신문을 활용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주로 대입을 위한 논술 강좌로 비판적 읽기교육과는 거리가 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현재 학교의 미디어교육은 신문만들기, 방송만들기에 국한됐다”면서 “비판적 읽기능력을 기르지 못하게 한다. 현장에 나가 교육을 할 때, 특정 매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언급하는 것을 현장에서 꺼린다”고 지적했다.

NIE 강국으로 손꼽히는 핀란드는 신문에 대한 비판적인 읽기를 중점적으로 NIE를 실시해왔다. 핀란드는 2004년부터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미디어의 다양한 기능을 교육하기 위해 미디어 교육 수료증을 발급하고, 이를 대학입학에도 연계시켰다. 핀란드는 유치부부터 고등학생까지 정규교과에 연계된 NIE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핀란드 신문협회는 교사용 교안을 매년 발행하며 대도시를 중심으로 학교와 연결된 ‘School links’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 결과 이 나라는 청소년의 51%가 종이신문을 구독한다.

한국은 핀란드가 될수 없을까? 정부도, 학교도, 언론도 제대로 된 교육을 시작하지 않았다. 10대가 주체가 되는 신문이 발행된 적도 없으며, 본격적으로 교과과정에 연계된 바도 없다. 교사들도 관련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20년이라는 시간만 흘렀을 뿐이다. “아이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고 푸념하며 낙담하기엔 이르다는 이야기다. 강용철 교사는 “소수의 학생들이지만, 비판적 읽기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고 학업성취도가 향상됐다. 이제 매니아 교육을 보편적인 교육으로 확대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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