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첩보수준에 불과한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의 숙청사실을 알린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 대통령이 국정원을 정치에 이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정원을 이용했고, 이번 사건을 통해 곧 있을 미국과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국가정보원
ⓒ노컷뉴스
 

다음은 국정원의 현영철 첩보 공개와 관련한 백 연구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박 대통령이 국정원에게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됐다는 첩보를 공개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보통 첩보라고 하면 증거를 더 수집해서 온전한 정보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근거를 가진 정보가 돼도 이를 공개할지 말지에 대한 고도의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첩보를 공개했다는 것은 뚜렷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뚜렷한 정치적 의도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국내와 대외정치 각각의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세월호 1주기, 성완종 리스트 등 국내정치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 대해 대북카드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국민들의 관심사를 (현영철 처형으로)돌리는 측면도 있고, 이번 첩보가 충격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국내정치 상황을 정권에 유리하게 만들 시간을 버는 효과도 있고, 아예 판 자체를 (정권에)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면 더 좋은 상황이고…”

   

▲ 지난달 30일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왼쪽)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 연합뉴스

 

 

- 대외적으로는 어떤 효과가 있나? 

“북한 정권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국내 뿐 아니라 미국 등 국제사회에도 강조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국에게도 북한에 대해 대화보다는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실 국내에서도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북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여론이 있다.

하지만 첩보 수준의 정보를 무리하게 공개해 ‘북한 정권이 민주적인 가치를 가지지 않았고 무법천지 같은 독재국가이니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 이명박 정부 이후 북한에 선핵포기요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한반도 사드 배치 등 신냉전 구도 흐름상에 위치한 행동이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 달 중순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 때 북한에 대해 대략 어떤 방향으로 합의를 할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 미국도 북한과 대화를 할 생각이 별로 없나? 

“대화를 하는데 (북한의 변화)조건을 달아 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기본적인 태도는 같다. 북한이 핵을 먼저 양보하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고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실질적으로 그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한미 모두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항상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미국도 북한과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현영철을 그렇게 처형했다는 첩보를 흘리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한미공조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면이 있다고 본다."

   
▲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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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안전보장이사회는 오는 28일 북한의 SLBM,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문제에 대해 제재할 방침이고, 미국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추가 제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 다른 기관이나 언론에서 첩보를 미리 확인해 밝히면 국정원이 정보 경쟁에서 뒤쳐져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흘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상적으로 보면 국정원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정보를 다루는 곳에서는 일단 첩보를 숨기고 싶어 한다. 국정원이 원해서 했을 수가 없다. 지시가 있어서 했다는 보도가 맥락상 맞다고 본다. 그리고 다른 기관이 발표하면 어떤가. 그런 걸로 경쟁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궁극적으로 이번 청와대의 지시는 국정원의 권위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만약에 현영철이 살아있는 것으로 북한언론에 나오기라도 하면 청와대와 국정원 둘 다 어려운 상황이 되겠는가. 어떤 경우라도 첩보를 공개한 것은 국익이든 정보기관의 이익이든 맞지 않는다.“ 

- 현영철의 숙청 가능성은? 

“국정원도 정확히 확인하지 못해 요새는 한발 물러선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고사총으로 처형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현영철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 인민무력부장으로 북한 정권의 실세다. 고위직에 대한 처형방법으로는 너무 잔인한 방법이고, 북한이 절차도 없이 불경죄라는 죄명으로 3일 만에 처형했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진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기록 영화에서 지워지지 않고 현영철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현영철이 어떤 자리에서 물러났을 수는 있지만 처형을 당한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장성택이 처형됐을 때도 끌려가는 모습이 공개됐고, 리영호 숙청당시도 발표가 있었다.“       

통상 북한의 고위층이 처형될 때는 며칠 전부터 최고지도자와 동행한 현지지도 기록에서 다 삭제된다. 국정원에서 밝힌 현영철의 처형 날짜는 지난달 30일이다. 하지만 5월5일부터 11일까지 김정은 제 1위원장의 군사 활동 현지지도에 현영철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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