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제주도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을 국가적인 과제처럼 내세웠다. 대통령이 직접 투표를 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공무원들은 일가친척들에게 투표를 권유하는 게 실적에 반영됐다. 국민들은 투표를 명목으로 돈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이 투표는 뉴세븐원더스라는 업체의 ‘쇼’였다. 국가가 기업 상술에 놀아난 셈이다.

뉴세븐원더스만 이익을 챙긴 건 아니다. 2012년 KBS <추적60분>에 출연한 이해관 전 KT 새노조위원장은 “전화투표 당시 KT가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속여 부당이익을 취했다”고 밝혔다. 폭로 내용은 이렇다. KT는 전화투표 한 통에 음성 144원, 문자 메시지 100원씩 받다가 나중에 음성 180원, 문자 메시지 15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전화번호는 001-1588-7715. ‘001’은 국제전화 번호였지만 국제전화가 아니었다. 통화사실 확인내역서에는 착신국가가 영국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투표 결과를 자체 집계한 후 뉴세븐원더스에 결과만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KT가 1차 서비스 때 국제전화에서 2차 서비스 때 지능망 서비스로 바꿨지만, 이를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KT의 투표 전화가 국제전화가 아니라는 점은 2012년 12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KT가 해외에 실착신번호가 없었다”면서 “전기통신 번호 관리 세칙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다만, 감사원은 해외전화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하지는 않고 있다. 이후 2013년 1월 방통위가 “국제전화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 2011년 9월 제주공항 도착대합실에서 제주도와 도관광협회,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관계자들이 제주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될 수 있도록 투표를 해 달라며 관광객들에게 삼다수와 함께 홍보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사법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국제전화 사기극 폭로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는 내용의 판결이 지난 14일 나왔다. 감사원에 이어 사법부에서도 국제전화 사기극을 인정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지난 14일 KT가 국민권익위원회를 상대로 낸 공익신고자 보호조치결정 취소소송 1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전 위원장이 공익신고자가 맞는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그의 폭로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투표 당시 KT의 전화가 국제전화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KT의) 투표서비스가 국제전화 식별번호인 ‘001’을 사용하였음에도 실착신 국제전화번호가 없고, 일반적인 국제전화와 달리 외국 국제관문교환기를 거쳐 국외로 신호가 전송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다른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KT의 편법이) 공정거래법 제3조 제1항 제5호 및 제66조 제1항 제1호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KBS <추적60분>을 연출한 강윤기 PD는 “그간 KT는 국제전화가 맞다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해명이었는데,  법원이 사실을 밝혔다. 우리의 의혹제기가 사실로 인정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과거 감사원 감사 결과와 같은 맥락의 판결”이라며 “법률적으로는 판단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데 KT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KT가 어느 정도의 부당이익을 취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방통위와 검찰이 부당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방통위는 번호세칙 위반을 인정해 3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KT가 이용약관을 위반해 부당이득을 취하지는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국제전화 서비스 약관은 가격을 명시하고 있지만, 지능망 서비스 약관은 가격을 명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전화는 아니지만 이 때문에 요금을 높여 받더라도 부당이득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논리다.

   
▲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마감일인 2011년 11월1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회원들이 전화투표 독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석채 당시 KT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KT가 불법적인 추가 이익을 얻으려고 요금을 올린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KT는 제주도 행정전화 요금 중 감액해준 41억 원이 이익의 전부이고, 그마저도 사회에 환원했기 때문에 부당이익이 없다는 입장이다. KT는 “시작단계부터 일체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어떠한 부당이득도 거둔 바 없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부당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가짜 국제전화 번호로 전화를 건 통화가 몇 건이며 그로 인한 총 수입이 얼마인지, 그를 통해 실제 취득한 순이익의 규모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처장은 “아직 KT가 부당한 방법으로 취한 이익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방통위가 KT에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참여연대 차원에서는 앞으로 문제제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석채 KT 전 회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참여연대는 현재 KT 이석채 전 회장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부당이익의 진상이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진상을 규명할 뾰족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연달아 승소한 이 전 위원장의 복직 역시 요원하다. 이 전 위원장은 폭로 이후 무연고 지역인 가평지사로 전보조치됐고, 근무태만 등을 이유로 해고됐다. 법원은 지난 14일 행정소송 1심에서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KT가 이 전 위원장에게 처분한 징계와 전보조치에 대해서도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조재길 KT 새노조 위원장은 “KT 사측이 항소를 했다”면서 “회사는 이번에 1심 판결이 난 행정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사측에 면담을 요구하는 등 이 전 위원장 복직을 위한 투쟁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정식 ‘해고무효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속인 문제를 비롯해 부당전보와 부당해고까지 행정부, 법원, 시민단체가 한결같이 문제를 지적하고, 진실을 밝혀내고 있는데 KT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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