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이 북한 어뢰가 아닌 아군 기뢰에 의해 폭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19일 “5년 전 천안함 침몰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파티장의 스컹크’ 신세가 됐다”며 “여전히 천안함 침몰이 북한소행이 아닌 좌초 후 기뢰 폭발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혀 주목된다.

자신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 출판기념회 차 방한한 그레그 전 대사는 이날 저녁 JTBC와 인터뷰에서 이같은 견해를 내놓았다. 그레그 전 대사는 러시아 조사단의 이런 조사 내용을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쉽게 악마화하는 경향과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지금도 당시 한국정부 발표를 믿기 어렵다고 보느냐’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오늘(19일) 제가 2010년 9월, 뉴욕타임스 국제판에 (천안함 침몰에 의문을 제기한 내용으로) 기고했던 글을 다시 읽어봤다”며 “그 기고문은 (당시)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또 이 기고문 때문에 저는 미국식 표현으로 소위 ‘파티장의 스컹크’가 되고 말았다”고 답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아무도 스컹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제가 그런 신세가 됐던 것”이라고 풍자했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 관계자에게 저는 이런 스컹크처럼 비춰졌을 것”이라면서도 “그리고 여전히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저나 러시아가 가졌던 의문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이 사안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건 황소에게 붉은 깃발을 흔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만 다시 물어봤기 때문에 답을 드린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19일 방송된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그레그 전 대사는 “제가 봤을 때는 (천안함 침몰의 진실이) 우리가 다시 살펴봐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며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면 이는 꼭 풀려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그레그 전 대사가 제시한 의문점은 △천안함 함미 스크루에 걸린 그물 △선저에 움푹 들어간 자국은 좌초 가능성 의미 △천안함 사고해역은 기뢰매설지대 △어뢰 보다는 기뢰에 가깝다는 폭발의 패턴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중 도발할 만큼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다는 점 등이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우선 어망이 전함의 스크루에 엉켜 있었고, 선체에 있는 움푹 들어간 자국을 보게 되면 이것은 천안함이 좌초가 됐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며 “또한 그 지역 같은 경우에는 수년간 기뢰가 많이 매설된 지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러시아 조사단에 따르면 이 폭발의 패턴은 어뢰에 의한 폭발보다는 기뢰에 의한 폭발에 좀 더 가깝다고 보고 있다”며 “이 밖에도 천안함이 만약에 북한에 의해서 침몰됐다 해도, 북한이 미군 함대와 한국의 해군 함대가 훈련하고 있던 지역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는 건 고도의 군사력을 가졌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저는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그레그 전 대사의 견해를 두고 손석희 앵커는 “미국이 이것(북한 어뢰 공격)을 인정한 것은 어찌 보면 자신들의 대 잠수함 능력이 굉장히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왜 미국은 거기에 동의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평택 해군2함대 안보공원에 전시된 천안함 함미 우현의 스크루 추진축에 여전히 걸려있는 그물 잔해. 사진=조현호 기자
 
   
평택 해군2함대 안보공원에 전시된 천안함 함미 우현의 스크루 추진축에 여전히 걸려있는 그물 잔해. 사진=조현호 기자
 

그레그 전 대사는 “그 질문에 대해선 제가 답을 할 수가 없지만 우리(미국)가 서둘러서 판단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북한에 대처함에 있어 일종의 증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악마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북한관에 대해 그레그 전 대사는 “미국은 북한을 좋아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이런 무지로 인해 (현실과) 큰 격차가 생기면 그 차이만큼을 편견으로 메우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따라서 어떠한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 ‘북한이 이 나쁜 일을 했을까,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게 되면 거기에 대해 즉각적으로 북한이 이 나쁜 일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버리고 만다”며 “이 같은 편견을 무너뜨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평가했다.

천안함 의문 제기나 햇볕정책 지지로 한국 보수세력한테 종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는 것과 관련해 그레그 전 대사는 “저도 알고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과 싸우기보다는 대화를 하려고 하고 있다”며 “또한 저는 그분들에게 1973년 당시 한국의 모습을 상기시킨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제가 한국 CIA지부장으로 근무했고, 한국의 중앙정보부장은 이후락이었다”며 “그 당시에 김대중 납치사건이 있었고, 또한 반란을 일으켰다고 누명을 쓴 서울대학교 교수는 고문사를 당했다. 또한 비밀스러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의 북한 상황에 대해 “과거 남한에서 벌어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남한과 미국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게 되면 저는 우리와 북한과의 관계도 유사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저는 종북주의자는 아니다”라며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북한을 대신해서 사과한다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우리가 상대방과 싸우길 원치 않는다고 한다면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북한의 체제가 변화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천안함 함미 우현에 데크에 표시된 '천안함'. 사진=조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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