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2일, 광화문 농성장엔 송국현(당시 53세)씨의 영정사진이 추가됐다. 8번째 영정사진이다. 그는 24살 가족들의 선택으로 장애인 격리 시설에 수용됐다. 언어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 그는 탈출을 시도할 만큼 시설 생활이 싫었다. 27년 만에 자립을 꿈꾸며 2013년 10월 자립생활 체험홈에 입소했지만 6개월 만에 체험홈에 불이나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광화문역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폐지를 외치며 노숙농성을 시작한 이후로 1000일이 지났다. 그 사이 농성장에 영정사진은 11개로 늘어났다. 장애인·인권단체들은 이들이 ‘사고가 나서’가 아니라 ‘사고가 나도록 방치돼서’, ‘불이 나서’가 아니라 ‘달아나지 못해서’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장애등급’이나 ‘부양의무’라는 굴레에 갇혀 구조적으로 죽음이 예고됐다는 주장이다. 

   
▲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광화문 역에 마련된 농성장. 농성 1001일째인 18일 현재 세상을 떠난 11명의 장애인들의 영정사진이 마련돼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225개 단체가 모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공동행동)은 노숙농성 1000일(지난 17일)이 지났지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등 자신들의 요구가 실현되지 않아 농성 3주년이 되는 오는 8월 21일까지 ‘끝장’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무총리가 임명되면 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고, 100만인 서명운동과 분홍종이배 접기, 3주년 맞이 사진전 등을 계획하고 있다. 

18일 녹색당 이유진 공동운영위원장은 “제도가 사람을 죽인다”며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폐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통해 ‘빠르면 2016년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의학적 평가와 더불어 근로능력 및 사회환경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새로운 장애판정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장애종합판정체계개편 추진단’(추진단)의 논의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재 장애등급은 6등급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현재 장애유형과 등록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고, 등급을 2~3개로 축소하는 정도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사실상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이름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송국현씨 사례에서도 보듯이 장애인들의 자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공동행동은 “서구에서는 1950년대부터 탈시설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고, 70년대부터 탈시설화 정책이 시작됐는데 아직 한국은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다”며 비판했다. 최근 장애인시설에서 거주자들이 의문사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이들의 인권이 위협받고 있다. 

자립을 위해서는 소득보장이 필요하다.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의 장애급여 수급율은 1.6%로  OECD 회원국 평균인 5.7%의 3분의 1 수준이다. 공동행동이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을 주장하며 소득보장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 전국장애인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장애를 가진 이들이 가난하게 살더라도 복지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데에는 부양의무제라는 장벽이 존재한다. 당사자의 소득이 낮더라도 ‘본인의 배우자와 1촌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의 소득이 기준을 초과하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될 수 없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을 얻지 못한 이들이 117만 명이다. 공동행동은 부양의무자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제도 개선을 준비 중이다. 부양의무자 가구와 수급자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그 이상이어야만 기초생활수급권을 부여하던 방식에서 최저생계비가 아닌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부양비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올 7월부터 개정 시행될 예정이다. 이 경우 추가 유입인원은 12만 명 정도다. 

   
▲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며 1000일 넘게 노숙농성을 진행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어 투쟁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공동행동은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왔으나 완화를 이유로 관리감독을 강화해 수급자 숫자가 도리어 축소되기도 했고, 사각지대에 117만 명이 있는데 12만 명은 너무 적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삭제하면 6조8000억원 정도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로 한해 중앙정부의 투입재정은 약 8조원이므로 15조 정도의 예산이면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GDP의 1% 수준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이런 제도를 통해 (한국 사회는) 가난을 증명해야 하고 장애를 증명하라고 하는데 복지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대로 보장받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며 “장애를 낙인찍는 것,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인권침해’를 증명해야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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