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안, 게이 등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인의 인권의식수준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 2014’(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성소수자 인권지수는 유럽 49개국 중 45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성소수자 차별 정도를 나타내는 ‘무지개 지수’ 가 전년도인 2013년(15.15%)보다 3%p 하락해 12.15%를 기록한 수치로 마케도니아(13%), 우크라이나(12%)와 비슷한 수준이다.  

보고서는 지난해 한국의 성소수자 단체가 20주년을 맞이했고, 퀴어문화축제가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됐지만, 보수기독교단체와 반성소수자단체 등이 인권정책에 관한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압력을 행사해 서울시 인권헌장선언을 무산시키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 이 그래프는「ILGA-Europe Rainbow Map(Index) May 2014」의 틀과 「ILGA-Europe Rainbow Map Explanatory Document」에 설명된 기준에 따라 한국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관련 제도의 유무를 표로 정리하고 지수를 계산한 것이다. 자료=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 2014
 

보고서는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전무했다”고 비판했다. 2013년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반대자들에 항의로 인해 발의가 철회됐고, 2012년 발의했던 차별금지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에 계류된 채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권교육지원법안’도 비슷한 항의로 지난해 11월 철회됐다. 

서울시 인권헌장이 무산되면서 인권변호사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수기독교계를 의식해 차별을 용인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지난해 12월 ‘무지개 농성단’이 6일간 농성하며 항의했다. 박 시장의 사과는 받아냈지만 보고서는 “인권헌장제정은 무산되는 등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의 공세에 대한 제재를 만들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과제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폭력적인 수준이었다. 지난해 10월 26일 MBC를 통해 보도된 부모에 의한 레즈비언 정신병원 강제입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 피해자 A씨는 경미한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갑자기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동거연인이 인신구제법상 동거인 자격으로 인신보호 구제신청을 하자 병원에서는 퇴원조치를 했지만 A씨의 부모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다. A씨는 한 달 뒤 다시 퇴원했지만 부모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 다시 강제로 입원될 수 있는 상황이다. 

교도소에서 이발지시를 거부한 트렌스젠더 수용자를 강제로 징벌방에 감금한 사례도 있었다. 2014년 1월 광주교도소 수용관리팀장은 위생을 이유로 트렌스젠더 김아무개씨에게 이발을 강요했지만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김씨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기동순찰팀이 김씨의 독거실을 검사한 뒤 지시불이행과 미허가 물품소지 혐의로 징벌위원회를 열었고, 김씨는 징벌방에 감금됐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아 신체의 자유가 박탈되는 인권침해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보고서는 언론보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지난해 2월 14일 연합뉴스는 <신종 마약 판매, 투약한 동성연애자 대거 검거>에서 “성관계 중 성적 흥분도를 높여준다는 이유로 동성연애자들 사이에서 복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슷한 내용을 세계일보와 뉴스1에서도 ‘동성연애자’임을 밝히며 보도했다. 보고서는 “불필요하게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을 밝히는 보도”라고 비판했다. 

성적지향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를 담은 보도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4일 국민일보는 <청소년시설서 낯뜨거운 ‘동성애파티’시도까지>에서 “이 파티는 동성애가 단순히 성적취향이나 성정체성이 아닌 음란행위이자 성 중독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기독교단체 관계자의 인터뷰를 실었다. 

지난해 10월 31일 TV조선 뉴스에서는 “팀 쿡 회장이 자신이 게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게이일 듯싶다. 충격이라면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보고서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충격’이라는 표현에서 은연중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 퀴어문화축제. 사진=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 2014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 IDAHOT :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는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해 지정했다. 

LGBTI는 Lesbian(레즈비언), Gay(게이), Bisexual(바이섹슈얼), Transgender(트랜스젠더), Intersex(간성, 남녀의 생식기를 동시에 가진 경우) 등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성소수자 인권지수인 ‘무지개 지수’는 △평등과 차별 철폐 △가족 △편견에 기반한 언어와 폭력 △법적인 성별 인식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 △보호 시설 등의 항목을 평가해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로 100%가 차별이 없는 완전 평등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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