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먹튀’의 주인공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소송(ISD)이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됐다. 2003년 외환은행을 샀다가 2012년에 되팔아 4조7000억 원의 이익(배당금, 매각대금)을 남긴 론스타가 다시 5조 원을 웃도는 돈을 손해봤다며 그만큼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참담한 처지를 낳게 된 원인과 뿌리를 가상으로 그린 소설 <검은머리 외국인>(이시백·레디앙)이 재판을 앞둔 11일 출간됐다. 저자 이시백씨는 대한민국을 ‘까멜리아’로, 론스타는 ‘유니온페어’로 설정해 1997년 IMF 이후부터 기업과 노동자들 추락의 실상과 투기자본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씨는 “외환위기 속에서 까멜리아의 수많은 기업들이 속절없이 도산하고 얼값에 팔려나가면서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던 무렵의 일”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론스타(까멜리아)의 외환은행 인수자금의 물주가 실은 한국인(‘검은 머리 외국인’)일 것이라는 의심을 담은 장면도 연출돼 있다.

   
론스타펀드 홈페이지
 

“환치기 증거는 찾지 못했으니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루반 씨에게 뒤지라고 한 계좌가 검은 머리 외국인과 관련된 건 확실한 거 같아요…그럼 바샤가 정말 유니온 페어에 투자를 했다는 겁니까? 자기 나라 은행을 사모펀드에 팔아먹는 일에 부총리까지 한 사람이?”
“유니온 페어가 IMF 때 부실채권을 사들여 돈을 벌었는데, 그때 유니온 페어에 돈을 맡긴 투자자 가운데 상당수가 까멜리아 사람들이라는 건 국세청 자료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더 기막힌 건 그 투자금 대부분 국내은행에서 빌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을 분노하게 한 것은 검은 머리 외국인들의 행각이었다. 전통적으로 검은 머리에 대해서 무한한 긍지를 지니고 있던 까멜리아 사람들에게 머리는 검으면서도 노랑머리들에게 붙어 제 나라 은행을 팔아먹은 짓에 치를 떨었다.”

이씨는 이 소설에 대해 “작가의 상상에 의해 쓰였으며 대한민국의 어떠한 특정 사실이나 인물과도 무관함을 밝혀둔다”고 책 첫페이지에 써놓았으나 내용을 읽다보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까멜리아은행(외환은행)을 미국 사모펀드 유니온 페어가 인수할 때 이에 저항하다 해고돼 사채업을 하던 주인공 루반이 이 은행 인수의 흑막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 책의 중심 줄거리이다. 무엇보다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 인맥 내부의 탐욕만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매각 저지 투쟁을 벌이던 노조 내부의 갈등도 나타나있다. 자본가와 모피아가 악이고, 이들에 당하거나 싸우는 사람은 선이라는 구도를 넘어 노동자들 역시 자본의 욕망의 덫에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저자 이시백씨는 소설 맨 뒤편 ‘작가의 말’에서 “까멜리아의 비극이 모피아들만의 것이 아니라,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에 주목했다”고 썼다.

   
검은머리 외국인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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