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병들어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출판노조)는 지난해부터 9개월 간 출판노동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출판노동자들은 고용 불안과 성차별·성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출판노조는 “출판산업은 중소영세사업장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노동조건도 열악한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사업장 내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약 94%이지만 고용안정성이나 급여수준은 타 산업 정규직 평균치에 훨씬 미달하고, 가족같은 분위기로 인해 성희롱·성차별이 일상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세사업장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응답자 중 5인 미만 사업장에 속한다는 응답자는 11%였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일부 받지 못한다. 5인 이상 10인 미만은 19.2%였다. 남녀고용평등법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에 따른 연 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의무는 10인 이상 사업장에게만 해당된다. 10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을 작성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할 의무가 없다. 

   
▲ 출판노동자들이 속한 회사의 규모. 자료=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제공
 

또한 3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노사 동수의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 명시돼있다. 응답자 중 62.3%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노동관련 법에서 살짝 빗겨나 있는 영세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근로계약서 작성이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응답자 3명중 1명(32%)은 근로계약서 작성·교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들 3명 중 1명(33.2%)은 형식상으로 서명만 했을 뿐 근로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출판사 자음과모음 윤아무개 편집자는 입사 7개월 만에 회사로 감사가 나오자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근로계약서상 윤씨의 회사는 ‘이지북’이었지만 윤씨가 지난달 27일부터 일하고 있는 물류팀은 자음과모음(이룸) 소속이다. 회사는 윤씨가 편집부 일에 적응을 못한다며 물류팀으로 발령을 냈다고 주장했다. 윤씨와 출판노조는 회사 사장이 전권을 휘두르며 직원에 폭언·언어 성폭력 등을 일삼았으며, 윤씨가 소속 계열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업무지시를 받았고, 물류팀 발령도 부당발령이라는 입장이다. 근로계약서를 정확하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사례다.  

출판산업은 낮은 임금만족도와 높은 노동강도로 소문나있다. 응답자 중 현재 임금에 만족하는 비율은 21.4%에 불과했다. 임금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를 보면 절반가량(디자인 45.3%, 편집·기획 57.3%)이 ‘근로시간과 업무강도에 비해 적어서’라고 답했다. 마감이 있는 업무 특성상 연장근로는 일상적이었다. 연장근로를 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비율은 27.3%뿐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연장근로를 했을 경우 ‘보상받지 못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74.7%로 가장 많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장근로(통상 18시부터 22시까지)는 통상임금의 150%, 야간근로(통상 22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는 통상임금의 200%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출판노동자들이 이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보상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노조가 없는 경우(84.2%)가 노조가 있는 경우(27.4%)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연장근로 수당. 자료=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제공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지위는 성적인 차별로 확대됐다. 1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성희롱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지만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348명 중 123명(34.5%)가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는 직장 내 성차별로 이어진다. 응답자 중 36.1%가 직장 내 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차별유형으로는 일상적인 차별 발언이 42.5%로 가장 높았지만 그 외에는 승진 제한 등 인사 상 불이익(31.5%), 임금·복지 등 근로조건의 불평등(30.4%), 부당한 업무역할 구분(26.5%) 등 회사내 구조적인 문제랑 연결되는 부분이 많았다. 

지난해 규정에도 없는 수습 17개월을 보내고 정사원 전환을 결정하는 면접을 앞두고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출판사 쌤앤파커스의 한 마케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피해자는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면서도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이기기 힘들고 자신만 잘리게 될 것 같아 당시 10개월 동안 성추행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 직장 내 성차별 유형. 자료=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제공
 

출판노조 조사에서도 노동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문제제기 한 경우(22.9%)보다 하지 않은 경우(70.9%)가 훨씬 많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제기를 한 40명 중 ‘강력한 사후 조치가 있었고 그 결과에 만족한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4명(10%)에 불과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고(40%), 조치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하거나(12.5%) 조치 이후 오히려 피해자의 입장만 곤란해진 경우(42.5%)도 있었다.(복수응답)

그 외에도 임신출산과 관련한 사례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직제도라 신청은 할 수 있지만, 대표가 해고나 고용 불안 등의 불리한 처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또한 휴직 전후에는 원래의 업무에서 배제했고, 본래 업무가 아닌 단순 노동에 가까운 업무만 무리하게 시켰고, 임금협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부당해고 사례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신입으로 입사하고 한 달 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편집장은 ‘너는 이 바닥에 있을 역량이 안 되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나에게 어떻게 일정을 조절해야 하는지, 업무를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알려 준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출판노조는 그래도 노조가 있는 경우 처우가 더 좋았다고 평가했다. 육아휴직의 경우에도 노조가 있는 경우 보장받는 응답자가 66.7%로 노조가 없는 경우 보장받는 응답자의 비중(21.6%)보다 높았다. 임금 결정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있다는 답변 비중도 노조가 있는 경우(57.1%)가 노조가 없는 경우(25.4%)보다 많았다.  

출판노조는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의 차이가 명확했다”며 “고용안정과 성차별 위협으로부터 안정 등 사업장 내 환경을 바꿔왔다”고 이번 조사에 대해 평가했다. 출판노조는 “앞으로도 출판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대중적인 교육과 소모임을 지원하고 노동현안 이슈를 앞서서 끌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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