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은 공평하지 않았다. 금전적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이 많은 쪽에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사법부가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는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의 편파·늑장 대응 행정이 제대로 개선되진 않아도 공론화는 이뤄지고 있었지만 사법부의 갑 편향성은 제대로 조명조차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사법부의 불공정문제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법원 독립의 원칙에 가려져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 개선을 위해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를 통해 대기업의 ‘갑질’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관계자 4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12일 오후 참여연대에서 중소기업 피해사례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하이트진로음료 사문서 위조로 재산 날려

지난 2010년 10월 샘물유통 대리점 한신상사 김현배 전 사장은 하이트진로음료와 거래계약을 체결했다. 한신상사는 계약 체결 당시 2000만원의 보증보험을 담보로 제공한 것 말고는 하이트진로음료에 대한 채권이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 김 전 사장은 자신의 회사가 하이트진로음료에 대해 지난 8개월간 누적 외상 미수금이 1억1200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이트진로음료 직원들이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한신상사와 거래가 있었다고 서류를 위조한 뒤 매출대금을 한신상사의 빚으로 떠넘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채권양도계약서 등 서류를 위조했고, 하이트진로음료 채권팀에는 외상미수금 등이 보고됐다. 형사소송과정에서 서류의 우무인(지장)을 하이트진로음료 직원이 찍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경찰의 미흡한 수사로 하이트진로음료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하이트진로음료는 한신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과정에서 법원은 물품이 오간 배송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원본 배송장 제출을 명령했으나 하이트는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법원은 하이트의 손을 들어줬다. 

김 전 사장은 이 과정에서 재산이 압류됐고, 담보로 잡혀있던 아들의 신혼집까지 경매로 빼앗기게 됐다. 김 전 사장의 아들은 처가에서 사기결혼이라는 의심을 받아 이혼을 당했다. 김 전 사장이 원하는 것은 피해보상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와 사문서 위조로 빼앗아 간 재산만 돌려달라는 것이다. 

# 긴급호출 특허기술 빼간 LG의 갑질 눈 감는 사법부

서오텔레콤 김성수 대표는 지난 1998년 조카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을 겪고 긴급하게 호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이 상용화 된 초기였지만 김 대표는 2001년 당시 (폴더)폰이 닫혀있더라도 비상버튼만 누르면 보호자에게 메시지가 전달되는 단말기를 개발해 특허출원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이후 LG전자연구소를 찾아 사업을 제안했지만 ‘아이디어는 좋은데 너무 앞서 간다’는 얘기를 듣고 상품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04년 김 대표는 TV광고를 보다가 자신의 긴급호출 기술을 LG에 도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오텔레콤은 특허침해로 LG텔레콤(LG유플러스)를 검찰에 고소했고, 특허심판원에 특허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법정에서 서오텔레콤은 LG의 기술과 자신의 것은 같은 기술이라는 주장을 펼쳤고, LG측은 다른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서오텔레콤은 긴급 호출이 가능한 단말기 기술로 특허를 받았음에도 LG측은 이동통신 기술을 가지고 논쟁을 끌어갔다. 

LG는 특허심판원에서 알라딘폰(긴급호출 기능이 있는 단말기)을 동작시연을 조작하다 발각되기도 했고, 민사소송 중 서울고등법원에서 쌍방대질 기술설명회에서 재판장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보고서, 대한변호사협회와 동반성장위원회가 공동 실시한 법률검토 보고서에서 LG가 서오텔레콤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고소와 민사소송에서 모두 재판부는 LG측의 손을 들어줬다. 김 대표에 따르면 LG측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차용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는 입장이고, 폴더 폰을 열지 않더라도 긴급호출이 가능한 단말기가 특허 기술의 핵심이지만 이동통신의 기술적인 부분을 주장하는 LG의 주장을 사법부가 그대로 받아줬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이 사건은 기술탈취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며  “300명의 시민을 모아 국민감사를 청구하고 NGO가 할 수 있는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힘 있는 중앙일보 계열사는 사법부도 알아보나

주식회사 다스는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를 파는 회사다. 지난 2010년 7월 다스는 자신의 블랙박스 브랜드 ‘나인뷰’ 제조업체 에이딕스테크놀러지와 2011년 구매대행자 중앙엠앤씨까지 계약을 체결했다. 중앙엠앤씨는 중앙일보 자회사로 마케팅 전문 업체다. 

다스는 나인뷰 제조사인 에이딕스테크놀러지가 ‘블랙큐브 H500’이라는 나인뷰 유사제품 1300여대를 만들어 부당이득을 취해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고, 구매대행자 중앙엠앤씨와 에이딕스가 공모해 다스 모르게 나인뷰 블랙박스를 유통·판매해 다스는 상표법 위반 혐의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3년 7월 다스는 두 회사를 상표법 위반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했고, 남대문경찰서에서 첫 조사가 이루어졌다. 남대문경찰서는 사건이 커서 에이딕스와 중앙엠앤씨의 사건을 분리기소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고, 다스는 따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에이딕스 대표는 검찰 조사 결과 상표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현재 구속돼 있지만 중앙엠앤씨 측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으로 결론났다. 

다스 조훈향 상무에 따르면 검찰은 조사를 진행하면서 에이딕스 조사자료는 검토하면서도 중앙엠앤씨 자료는 꺼내지도 않았다. 최근 조 상무는 서울구치소에 있는 에이딕스 대표에게 편지를 받았다. 중앙엠앤씨가 에이딕스에 선급금을 현금으로 바로 보내줬기 때문에 자금이 항상 불안했던 중소기업으로서는 중앙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블랙박스 나인뷰 발주자인 다스를 외면하고 둘 간의 거래가 성사되면서 중앙엠앤씨는 다스 몫까지 영업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중앙엠앤씨가 송사에 휘말리자 사건은 중앙일보 재무법인팀에서 담당했다. 지난 1월 항고마저 기각되면서 다스는 지난 3월 재정신청을 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사법부는 2년 실형, 국세청은 횡령 없다 

JBS건설 정병수 전 대표이사는 삼성중공업을 시공사로 선정해 타운하우스 신축분양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JBS건설은 신한은행과 신한캐피탈로부터 공사대금을 대출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과 사업 시행권을 위탁받은 아시아신탁은 착공 이후 분양홍보에 사용될 샘플하우스 준공을 지연했고, 이로 인해 JBS건설은 2차 대출금 만기일을 지키지 못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사업시행권 인수조항을 근거로 삼성중공업이 JBS건설의 대주단인 산한은행 등에게 채권을 받았고, 제1순위 우선수익권자 지위를 얻었다. 2011년 3월 삼성중공업은 JBS건설의 사업시행권과 분양권 등 권리도 얻었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신탁은 JBS건설을 압박할 목적으로 JBS건설 대표이사를 고소했고, 대표이사는 횡령죄로 2년을 선고받아 1년9개월 실형을 살았다. 

횡령의 내용은 공사비 지출과 관련해 삼성중공업이 세무서에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면서 환급금 통장을 사업비 통장이 아닌 운영비 통장으로 입금했고, 이 금액을 사업비와 개인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사업비와 개인용도 금액을 특정하지 못했다. 정 전 대표이사가 출소한 2013년 4월로부터 약 1년이 지나 국세청에서는 ‘개인용도’ 사용액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즉 사법부와 아시아신탁이 주장한 정 전 대표의 횡령이 없다는 뜻이다. 

JBS건설이 삼성중공업과 아시아신탁을 상대로 계약상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법원은 JBS건설이 제시한 공사착수일, 준공완공일, 설계도면과 사업계획 등 공식적인 서류 증거자료를 부인한 채 피고의 정황 증거를 수용해 JBS건설을 외면했다. 결국 공사를 지연시켜 사업을 유리하게 진행한 삼성중공업의 갑질을 사법부가 덮어준 꼴이다.

공정하지 않은 사법부, 디스커버리 제도 필요

위 사례들의 공통점은 사법부가 한쪽 당사자의 주장이나 근거자료만을 가지고 법적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법부는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수사과정에서도 편파적인 사례가 있었지만 힘없는 중소기업은 두 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참여연대 장흥배 경제노동팀장은 디스커버리 제도가 시급하게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란 본안 재판 전 증거조사 절차로 양 당사자가 증거와 자료를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제도다. 재판부는 쟁점의 핵심이 되는 자료제출을 명령하고 제출을 못하는 쪽은 불이익을 감수하게 된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재판이 개시되기 전 이 과정을 거치고 디스커버리가 종료된 후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된다.

장 팀장은 “싸움이 1~2년 지속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 사례들은 훨씬 더 오래돼 한이 맺힌 사연들”이라며 “이 정도 되면 사회가 응답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사례 발표를 통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갑을 편드는 사법에 멍드는 을들을 구제할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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