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58)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해방 70년 만에 독립운동가 친손자가 처음으로 제1야당의 원내 활동을 이끌게 됐다. 이에 따라 당내 보수세력과 친일전력이 있는 신문사 및 여권의 견제를 뚫고 역사적 정통성을 갖춘 정치를 펼지 주목된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야당의 책임을 맡게 되어 고맙고 책임이 막중하다”며 “오랫동안 우리 역사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청산되지 않은 친일역사 속에서 홀대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제가 야당 원내대표가 된 것이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100년 만에 침략의 원흉인 기시 노부스케가 외손자인 일본 아베 수상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했다”며 “그 기사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100년 전에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를 침탈했고 기시 노부스케가 세운 만주국의 감옥에서 제 할아버지 이회영이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 기시 노부스케와 이회영의 손자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동북아의 평화와 과거사 청산문제를 두고 전혀 다른 입장에 서 있다”며 “100년 만에 이회영, 기시노부스케는 다시 손자들인 이종걸, 아베를 통해 역사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독립운동은 제게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며 “앞으로 역사적 복권이 안 이루어지면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블로그.
 

이종걸 원내대표의 조부는 우당 이회영 선생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정통 한국군대의 산파이자 지금돈으로 600억원이 넘는 전재산을 털어 만주와 베이징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는데 바친 인물이다. 우당 이회영 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우당 선생은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한 뒤 그해 12월 6형제와 가솔, 수행을 자청한 일꾼(노비를 모두 해방시킴)을 포함해 40여 명을 거느리고 안동(安東, 현재의 丹東)을 거쳐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로 망명했다. 이후 1911년 경학사 설립, 1912년 신흥강습소 설립, 신흥무관학교로 확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운동, 의열단 설립 후원 등 우당 선생은 1932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평생을 독립운동에 쏟았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우당 선생의 5남 이규동씨의 아들이다. 이 원내대표는 예원학교, 경기고, 서울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민변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다 2000년부터 정치에 입문했다. 16대 국회에 입성한 이래 4선 의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이 일제시절 만주군관학교-일본 육사 출신에 ‘충성혈서’까지 쓴 인사인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역시 친일 논란에 휩싸인 인물인 대한민국 권력환경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이 제1야당 원내사령탑이 된 것은 기적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수립 이후 조봉암 선생이 진보당을 이끈 적은 있으나 의석도 없는 제3정당이라는 점에서 이종걸 원내대표 선출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해방 70년 만에 일본국 장교 출신의 딸이 대통령인 시대에 제1야당 원내대표를 신흥무관학교를 창설한 이회영 선생의 친손자가 맡게 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며 “130석 야당 원내대표로 제대로만 하면 친일잔재를 씻을 수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이래로 역사교과서 왜곡과 친일파 비호가 노골화하는 환경을 두고 김 대표는 “조상의 미덕에 자족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이제라도 조상 중에 역사와 얼에 부끄럽지 않은 조국을 건설하는 첫걸음을 내디딜 때”라고 강조했다.

   
우당 이회영 선생 초상화. 사진=우당기념관
 

현 정부에 대해 김 대표는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한결같은 여망은 자주와 독립이었으나 지금 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전작권 무기 연기를 선언하는등 ‘자주’도 못되고 통일도 못한 해방 70주년”이라며 “더구나 70~80년대만 해도 친일 옹호는 감히 상상도 못했으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선 대놓고 식민지근대화론을 교과서에 싣겠다는 역사인식으로 추락했다”고 진단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에 대해 김 대표는 “해방 직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거치면서 친일 청산이 안되고 독립운동 정통세력이 밀려난 이후 전쟁을 거치며 결국 대한민국은 ‘변통세력’ 일색이 됐다”며 “지금도 조상들이 물적 사회적 기반이 없다보니 3대 4대 걸쳐서 까지 최하층으로 전락해 살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야당 지도자로서 현실에 함몰될지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도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할지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온 친일전력 보유자이다. 정운현 전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의 ‘친일, 청산되지 못한 미래’(책보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939년 가을 문경보통학교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만주로 가서 군관학교 입교시험을 본 뒤 이듬해 4월 신징(신경)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학했으며, 이 과정에서 충성혈서(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 7면에 실린 내용)를 썼다. 

박 전 대통령은 1942년 3월 신징군관학교에서 예과 2년을 수석 졸업한 특전으로 일본육사에서 본과를 졸업(57기)해 3개월간의 견습사관 생활을 마친 뒤 7월 1일 만주군 소위 계급장 달고 만주군 보병 8단(연대)에 복무했다고 정 전 처장은 기록했다. ‘충성혈서’의 내용에 대해 정 전 처장은 “자신을 일본인으로 부르고 있으며, 일본을 조국으로 표현하면서 일본을 위해 ‘일사봉공’,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밝힌 것은 거의 가미카제 수준”이라고 평했다.

   
박근혜(오른쪽) 대통령.
@연합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시 졸업앨법
 

또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도 친일 전력의 도마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정운현 전 처장은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으며, 전쟁동원 친일단체인 조선 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일본군)에게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주도한 사실이 1941년도 매일신보에 실려 있다”며 “반민특위법 4조 8항(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됐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해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에 따르면, 도, 부회 의원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어 김용주는 친일파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은 총독부 기관지에 기사 한 줄 나온 것만으로 친일파라 재단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박정희군이 군관에 지원하면서 혈서를 썼다고 보도한 만주신문 기사. 사진=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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