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오늘 출발해도 내일 도착하겠다” 

고려대 박다한 학생(14학번)은 친구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경기도 양평에서 학교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통학하기 때문이다. 환승을 두 번해 학교에 도착하면 수업 시작 전부터 이미 지쳐있다. 이런 저런 일정을 마치고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하면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집에 도착한다. 

교통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왕복 4400원의 교통비는 구내식당 한끼 식사비(3500원)보다 비싸다. 한 달 10만원이 넘는 교통비 부담까지 토로하면 주변 친구들은 묻는다 “왜 기숙사를 신청하지 않느냐” 현재 고려대 학생 약 2만 명 중 2200명(약11.35%)만 기숙사에 거주가 가능하다. 미국 주요 20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37.1%다. 낮은 기숙사 수용률은 학점 경쟁으로 학생들을 몰아넣는다. 

열심히 공부해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학점을 받더라도 또 한 번 좌절한다. 높은 기숙사비 탓이다. 민달팽이유니온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공립대학의 경우 2인 1실 한 방당 평균 기숙사비용은 월 29만원, 사립학교의 경우는 월 46만7000원이다. 민자 기숙사로 범위를 좁히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2인 1실 기준 64만3800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 주변 하숙집이나 자취를 알아보게 되지만 이 또한 비싸긴 마찬가지다. 박다한 학생은 “학교 주변 집주인들이 담합을 통해 높은 월세를 유지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결국 집값이 부담돼 왕복 4시간 통학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경우는 학교주변에 살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연세대 손석희 학생(14학번)은 학교 신축기숙사 ‘우정원’에 살아보고 실망했다. 식당 등 편의시설이 없었고, 1층에는 채광이 되지 않아 대낮에도 불을 켜야 했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밝힌 우정원 기숙사비는 지난해 2학기 2인1실 기준 36만원이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학생들이 비싸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방값역전현상’을 지적했다. 이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시원의 3.3㎡당 월 임대료는 약 15만원으로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3.3㎡당 월 임대료인 약 14만원에 비해 비싸다. 

11일 오후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에서 주최한 ‘20대 주거문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문석 한국사학진흥재단 기금사업본부장은 “대학생 주거권 문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학 기숙사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숙사를 확충해야 하며, 고비용 기숙사이용료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11일 오후 국회에서 ‘20대 주거문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대학생들의 주거문제에 대해 듣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한국장학재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대학생 219만명 중 대학 소재 지역 기준 타 지역 출신 비율은 평균 40.5%로 88만500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학생을 수용하는 기숙사 수용인원은 35만7000여명으로 53만여명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다. 대학이 몰려있는 서울지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권 대학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14.2%정도다. 

지난 2005년 ‘민자 유치 교육시설 관리지침’이 발표되면서 대학교에 기숙사, 문화시설 등 직접적인 교육시설이 아니더라도 민간투자가 허용됐다. 이로 인해 생겨난 민자 기숙사는 고비용기숙사를 만드는 근간이다. 민자 기숙사는 건설비 등 초기투자 비용까지 이용자 부담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기숙사비가 월 평균 35만원 수준으로 비싸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연세대의 경우 지난해부터 기숙사비에 건물 감가상각비까지 포함해 걷고 있으며 기존 감가상각비 명목으로 걷었던 간접비도 여전히 걷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은 “학교가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돈 놀음”이라며 비판했다.  

기숙사 신설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임경지 위원장은 “고려대가 위치한 성북구의회에서는 기숙사건립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데 이는 청년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편견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에 따르면 지역주민들은 20대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시설이 들어올 경우 ‘모텔이 될 것이다’, ‘노래방으로 변한다’며 항의해왔다.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숙사 생활수칙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단국대 생활관 벌점기준표에 보면 생활관 내 모든 문서는 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발생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생활관 학생회의 경우 학생회장 공석 시 교수 또는 교직원인 생활관장이 학생회장을 선발하기도 한다. 

   
 
 

대학생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면서 동시에 공부하는 학생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손영하 경희대 생활관장은 “학생들은 수익이 없고 오히려 빚까지 얻어가며 공부하기 때문에 최빈곤층”이라며 “주거비 폭등 문제를 학생들이 만들지도 않았는데 부담은 학생들에게 떠안기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에 주민들과 싸우거나 알바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청년 주거권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강민구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한국사회는 주거문제를 사교육처럼 시장논리로 바라보고 있어 정책적으로 국가가 나서지 않는 것 같다”며 “제도 개선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주거 공공성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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