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VOD가격이 줄줄이 인상됐다. 11일 지상파 방송사당 5개 프로그램의 VOD가격이 HD방송 기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듀사>, MBC <무한도전>, <진짜사나이2>, SBS <런닝맨>, <풍문으로 들었소> 등 인기 예능·드라마 프로그램이 대상이다. 지상파는 올해 내에 VOD 가격을 1500원으로 인상하는 프로그램을 방송사당 11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번 인상은 지난 1월 지상파 방송3사가 유료방송 업체들에게 VOD 요금을 인상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유료방송업계가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이 예상된다며 VOD가격인상에 반대해 절충안으로 단계적 인상안이 나온 것이다. 2013년 지상파 방송3사는 VOD를 유료로 판매하는 기간(홀드백)을 1주에서 3주로 연장하기도 했다. 

   
▲ 11일부터 MBC <무한도전> 등 인기 프로그램의 VOD 가격이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된다.
 

지상파 입장에서 VOD시장은 경영악화를 해결할 ‘출구’다. 방송광고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VOD시장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제출받은 VOD 매출 자료에 따르면 IPTV 3사와 케이블TV방송 4개 업체 등 7개 회사의 VOD 수입은 3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다. 지상파의 수익 역시 이와 비례할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방송의 VOD시장 점유율이 높기도 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프로그램별 VOD 시청 현황’에 따르면 조사기간 지상파의 VOD 점유율은 75.8%로 종편 및 기타 PP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방송시장의 축이 플랫폼에서 콘텐츠로 옮겨가고, 시청패턴이 실시간에서 비실시간으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콘텐츠 부문 수익을 확대하겠다는 지상파의 정책은 틀린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자체플랫폼이 아닌 유료방송의 VOD에 올인하는 전략이 유료방송 의존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칠수록 역으로 지상파 플랫폼을 더 빨리 침몰시킨다는 이야기다. 

재송신수수료 인상 역시 단기적으로는 지상파 재정에 보탬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료방송 의존도를 심화시킨다. 이 같은 방법은 불확실성이 큰 땜질처방이기도 하다. 지상파는 재송신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며 유료방송업계와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상파는 280원인 재송신 수수수료를 400원대로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료방송업계는 현재도 많은 수수료를 내고 있다며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협상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방송업계에 분쟁에 적극적으로 조율할 방침을 밝혔다. 지상파의 가격협상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과거 지상파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이었지만 지금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지난해 기준 지상파를 직접수신하는 가구의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유료방송 가입 가구는 90%가 넘는다. 한때 대다수 국민이 직접 지상파 방송을 수신했지만 지금은 지상파를 케이블TV나 IPTV 등 유료방송을 통해 시청하지 않는 국민을 찾기가 드물 정도다.

지상파 플랫폼의 몰락은 지상파가 자초한 면이 있다. 박성규 미래방송연구회 수석부회장은 “지상파방송사들이 HD전환과정에서 전파를 건물 근처에 쏴주는 데 그치는 등 옥내수신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이 유료방송들은 정교하게 망을 구축하고 공청시설을 확보해 차별성을 보였다”면서 “결과적으로 직접수신율이 떨어진 책임은 근시안적인 지상파의 정책방향”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플랫폼은 강화돼야 한다. 국민들이 무료로 누리는 보편적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콘텐츠가 공영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지만 ‘콘텐츠’와 ‘플랫폼’을 구분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보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언론시민단체가 지상파 공공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통합방송법 공청회에서 “공공 무료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채널선택권 확장과 더불어 시청자 복지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면서 “지상파 채널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 지상파의 수신환경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 EBS2는 지상파 최초로 도입된 MMS채널이다. 왼쪽 모니터가 EBS, 오른쪽 모니터가 EBS2. 사진=금준경 기자.
 

지상파 입장에서도 플랫폼을 재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안마다 업계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 플랫폼 강화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 상황이다.

지상파는 MMS도입이 직접수신율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가 된다는 입장이다. MMS는 지상파다채널서비스를 뜻하는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상파에 여분의 주파수가 생겨 지상파 채널당 추가적으로 3~4개 채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지상파 관계자는 “MMS가 전면 도입되면 10여개 채널이 확보돼 무료서비스라는 강점에 채널경쟁력까지 생겨 직접수신율을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고 말했다. 한국방송협회 손계성 정책실장 역시 “영국의 경우 MMS 도입 이후 직접수신율을 40%까지 끌어올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접 수신율을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의 경우 40여개 채널의 MMS가 시행되고 있다. 

문제는 MMS가 어정쩡하게 도입돼 직접수신율을 높인다는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국내최초의 MMS인 EBS2가 개국했으나 SO사업자들이 EBS2 송출을 임의로 차단하자 방송협회와 EBS는 의무재송신에 준하는 재송신을 요구했다. 방통위가 중재에 나선 끝에 유료방송에서도 EBS2를 시청할 수 있게 됐지만 지상파는 모순에 빠졌다. SO관계자는 “지상파측이 EBS2도입을 추진하면서 밝힌 근거가 무료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의 직접수신율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유료방송의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면적인 MMS가 도입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통위는 광고시장 불균형에 따른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MMS 전면도입에 부정적이다. 

UHD도입은 지상파 플랫폼을 재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상파는 UHD방송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 지상파의 직접수신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UHD방송을 도입하게 되면 초고화질 방송을 통한 경쟁력 확보 측면 뿐 아니라 수신 전파의 세기가 커져 옥외 안테나 설치 없이 실내 안테나 만으로도 지상파UHD방송을 수신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 KBS 사극 <징비록>,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는 UHD방식으로 제작 중이지만 지상파 UHD가 도입되지 않아 HD로만 방영하고 있다.
 

그러나 UHD 전면도입 역시 요원하다. 현재 지상파와 통신3사가 700MHz 대역 주파수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방통위와 미래부는 주파수를 UHD방송과 통신용도에 모두 할당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 전국 UHD방송 도입이 불가능할 전망이다. 통신사가 IPTV를 소유했다는 점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을 통해 지상파 방송 플랫폼을 견제하는 목적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상진 SBS 정책팀 차장은 “부수적인 측면에서는 통신사가 IPTV를 소유했다는 점에서 지상파 플랫폼의 퀄리티 향상을 견제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상파는 푹 서비스를 통한 OTT 플랫폼 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지난해 11월 ‘지상파 방송사의 OTT 플랫폼 전략’세미나에서 김혁 콘텐츠연합플랫폼 이사는 “넷플릭스처럼 TV에 푹 스트리밍채널을 제공하는 순간 권역 침해 논란으로 반발을 살게 뻔하다”면서 “통신사까지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고, 돈을 안내고도 콘텐츠를 얼마든지 볼수 있기 때문에 한국 OTT 서비스는 아스팔트에서 모내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열쇠는 정부와 지상파가 함께 쥐고 있다. 지상파 플랫폼 재구축을 위해 지상파는 유료방송과 협상에 의존하는 방법에 올인해서는 안 된다. 방통위와 미래부는 산업보다는 공공성의 측면에서 방송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행이 안 되고 있고, 그 사이 시장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의 저가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 넷플릭스가 내년 한국 진출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예단하기 힘들지만 지상파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게 전에 대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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