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 관광의 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사막 한가운데 위치해있다. 마카오도 도박장은 주거지와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서울 용산 도심 한복판에 용산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가 오는 9일 개장할 예정이라고 알려지면서 7일과 8일 주민들은 정치권, 시민사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개장반대의 뜻을 전했다. 개장이 시도된다면 지난해 6월 28일 기습개장 한 이후 두 번째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성심여중·고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용산 화상경마장이 들어설 것이라고 알려지자 이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 인근 주민들은 지난 2013년 5월 1일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대책위)를 만들었다. 지난해 1월 22일부터는 마사회 용산지사 옆에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8일 현재 반대투쟁 737일째, 천막농성 472일째다. 

   
▲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월 22일부터 한국마사회 용산지사 옆 천막농성장에서 용산화상경마도박장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8일 현재 천막농성 472일째다. 사진=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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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8일부터 약 3개월간 마사회는 용산에서 장외발매소를 개장했다. 당시 대책위는 몸으로 개장을 막았다. 한 용산주민은 “개장을 막았더니 도박장에 들어가려던 사람들이 주민들을 향해 생전 처음 듣는 욕을 쏟아냈다”며 “개장되자 대낮에도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은 성심여중·고에서 용산역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있다. 화상도박경마장 반대를 시작할 때 성심여고 1학년 학부모였던 주민들은 3학년 학부모가 됐다. 한 고3 학부모는 “성심여고 학생들 중 야간자율학습(야자)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며 “야자를 신청해놓으면 계속 해야 하는데 지난해 기습개장 이후 또 언제 개장할지 무서워 신청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와 시민단체,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등은 승인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농림부는 2009년 3월 17일 ‘장외발매소 개설 승인 지침’에는 “동일 지역 내 이전 시 지역의견 수렴과 민원발생 소지 최소화 확인 절차 생략” 규정을 발표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헌욱 변호사는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승인을 위한 규정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은 용산역 바로 앞에 있던 장외발매소를 신축이전한 것이다. 마사회는 지난 2010년 2월 농림부에 제출한 신축이전 승인 신청안에서 “주거지역과 상업지역간 구분 경계가 명확한 지역으로 민원발생의 개연성이 없다”며 “성심여중과 약 350m떨어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학교보건법에 따라 인접학교에서 200m 떨어지면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오락실이나 pc방과 같이 작은 시설이지 국내 최대 규모의 화상경마장이 들어서는 것은 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심여중과 화상경마도박장 간 실제 거리는 승인신청안에서 나온 것과 달리 235m다. 또한 대책위가 2년 넘게 천막농성을 하면서 진정성 있는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 용산화상경마도박장이 들어설 한국마사회 용산지사에서 235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심여중고. 정문에는 화상경마도박장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주민들 뿐 아니라 지자체 시민사회가 개장을 반대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재할 수단은 없다. 바다이야기 불법도박 논란으로 지난 2007년 9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립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도 마사회를 감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감위 관계자는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승인권한은 농림부에 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며 “장외발매장의 총량만 규제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는 9일 기습개장을 시도하려했다는 비판 보도가 이어지자 마사회는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한국마사회 홍보팀 관계자는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장외발매소 개장 여부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바가 없다”며 9일 개장에 대해 부인했다. 대책위 정방 대표는 “마사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9일 일정이 잡힐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40여명의 용산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키고 있다. 

9일 개장이 되지 않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지난달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2015년 업무보고에서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상반기에 렛츠런CCC(용산 화상경마도박장)개장하겠다고 밝혔다. 대책위 뿐 아니라 서울시의회, 용산 지역 국회의원들, 용산구의회, 용산구청, 서울시 교육청까지 화상경마도박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미 밝혔지만 마사회가 개장을 강행할 경우 이를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국회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사감위법 전부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핵심 내용은 ‘사행산업 허가 시 사감위의 사전 동의를 받을 것’, ‘사행산업 허가·승인 받으려는 자는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사행산업영향평가를 받을 것’ 등이다. 이외에도 학교 주변(250m, 500m, 1000m 등)에 사행사업장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여러 법안도 발의돼있다.  

이처럼 화상경마도박장 규제 관련 법안이 12건 발의돼 있지만 아직 통과된 것은 없다. 현명관 마사회장이 지난 2월말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거론되는 등 숨은 권력실세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실적으로 개장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에서 신축이전을 승인 취소해야 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률상 하자가 없어서 한 것이지 공무원들이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고 말했다. 

화상경마도박장은 말과 관련됐기 때문에 마사회는 농림부가 상급기관이다. 장태평 전 농림부 장관도 임기 끝나고 1년여 뒤 한국마사회 회장이 된 바 있다. 대책위 정방 대표는 “교육부에서 관리했다면 이렇게까지 투쟁이 오래됐을까 싶다”며 “농림부는 마사회 매출이 줄어드는 게 더 걱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7일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가 한국마사회 용산지사 옆 천막농성장에서 용산화상경마도박장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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