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아기를 품에 안아보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났다. 아내는 첫째 아이 출산과정에서 생명이 위독했었다. 연년생으로 둘째를 출산하게 돼 불안한 아내는 출산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조산 징후가 있어서 조산을 늦춰주는 수술도 받았고, 수술 경험이 많다는 병원을 찾았다.

2013년 7월 20일 오전 병원 원장은 둘째아이의 상태가 양호하지만 유도분만을 권유했다. 당시 아이가 거꾸로 있어서 분만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무통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자 중단했다. 주사바늘을 제거했지만 지혈이 한 시간 이상 되지 않았고 아내의 진통은 심해졌다. 곧 둘째아이는 태어났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분만 후 40분쯤 지나 병원장은 ‘아내 출혈이 심해 응급처치 한 뒤 지혈을 했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수술실로 옮겨 차후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분만실에 있던 아내의 옷 뿐 아니라 바닥, 침대, 벽 등에는 여기저기 피가 묻어있었다. 아내를 수술실로 옮기고 한 시간이 흐른 뒤 병원장은 ‘자궁절제술을 해야한다’며 방법이 없으니 동의하라고 했다.

수술이 끝난 뒤 산모의 수술이 다 끝났다고 했지만 혹시 모를 응급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큰 대학병원으로 전원할 것을 권유했고, 구급차까지 병원에서 준비해줬다. 대학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의사에게 들은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아내 분은 사망한 상태로 오셨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등이 주최한 6일 오전 국회에서 의료사고 피해자 국회 증언대회에 참석한 이정우씨는 아내를 잃게 된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씨는 아내를 잃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 뒤 병원 측을 형사고소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병원 측의 과실을 알 수 있을 만한 진료기록이 수기로 23차례나 수정됐다는 사실을 밝혔고, 국과수의 부검결과와 대한의사협회의 감정결과는 그 진료기록에 의해 의사의 과실이 없다고 결론냈다. 이씨는 “진료기록은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해 필요한 기록물이지만 그 관리와 확인권한은 전적으로 의사들에게만 주어져있다”며 “의사들은 환자가 응급상황에 처하면 환자를 살리려는 의지보다는 사고의 증거를 덮고 의료분쟁에 대비하는 행위에 더 중점을 둔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조작이 가능한 진료기록과 의사들의 이익집단인 대한의사협회의 형사감정 결과만이 의료과실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들과 의료시민단체는 의료집단간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0년 1월 강남의 모 대학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출혈로 인한 쇼크 뒤 이틀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박설우씨는 “지난 5년간 수사과정과 형사소송을 거치면서 병원 측의 의료과실을 입증할 방법은 진료기록과 대한의사협회에서 실시하는 형사감정 결과 밖에 없었고 진료기록은 마치 어머니가 응급수술을 요구한 것처럼 수정된 것”이라며 “사실 확인이 진행되는 동안 대한의사협회의 답변만 정교하고 치밀해졌다”고 말했다.

박씨의 어머니의 국과수 부검 결과는 진료상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현재 대법원에 상고돼 있는 박씨의 어머니 사건은 지난해 2심에서 무죄로 선고된 상태다. 

   
▲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법원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조정중재원)을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2년 2월 1시간정도면 끝난다는 간단한 왼쪽 다리 수술을 받은 뒤 사망한 이인자씨의 남편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인자씨는 2년간 나홀로 소송을 진행해 지난해 8월 1심에서 원고일부승소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사건이 항소되고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던 중 법원은 이인자씨에게 ‘조정중재원에서 조정한다’는 결정문을 이씨에게 보냈다. 이인자씨는 형사소송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인자씨는 “몇 번의 수사과정에서 진료기록과정을 대한의사협회에 보냈는데 같은 동료(의사)입장에서 처벌하는 판단을 하게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폐쇄적인 의료계에서 동업자에게 용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또한 이씨는 “병원 측에서 증인을 신청했는데 증인이 대한의사협회의 감정의사였다”며 “조정중재원에서는 조정을 시도하려 했지만 병원 측은 끝내 조정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조정중재원의 조정참여율을 높이기에 급급해 피해자들이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는 “의료사고를 분쟁으로 규정하고 과실 여부 판정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 문제”라며 “승소가능성이 낮은 현실적 장벽이 환자들을 조정중재제도를 이용하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정중재원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병원측이 신청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조정중재가 외형적인 성과 중심의 접근방식이기 때문에 분쟁조정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13년 기준으로 500만원 이하로 합의·조정된 사건은 74.3%로 2012년 69.4%와 대비해 증가했다. 반면 3001만원 이상 합의·조정된 사건은 3.3%에 그쳤다. 

입증책임이 피해자 가족에게 있는 것도 문제다. 현재 형사 의료감정은 대한의사협회에서 진행한다. 의료인들의 이익집단에서 진행하고 수사당국에는 의료사건 전담팀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보가 부족한 피해자 가족들이 진료기록이 조작되거나 은폐되는 경우에 입증은 더더욱 힘들어진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심태현씨는 “살인사건이 있을 때 피해자 가족들이 수사하고 증거 찾느냐”며 “의료사고가 나면 의료인들이 자신들의 과실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발의된 의료분쟁조정제도 개정 법안을 보면 조정절차에서 진술이나 감정서 등을 소송에서 원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조사 방해 등에 있어 형사처벌 규정을 과태료로 면하게 한 규정, 피신청인 동의 규정 삭제 등 의료인들에게 유리한 조항이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들은 공동으로 결의문을 작성해 “의료사고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의료조정제도가 의료사고 피해구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기존 환자 측에서 병원 측으로)전환하고 수술실 등 환자 보호 구역을 지정해 이를 감시하는 CCTV 설치 등을 요구”하며 “이번 증언대회를 계기로 제도적인 보완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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