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신부가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사회와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대해 ‘자본에 의한 노예가 된 병든 사회’로 진단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 김 신부는 용사참사와 쌍용차 해고자 사태, 다시 세월호 참사로 이어지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이 정부는 책임질 능력조차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사제단은 때가 되면 언제든 가난한 사람들의 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10일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신부로 선임된 김 신부는 2006~2013년 사제단의 총무를 맡으며 삼성비자금 폭로사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국미사,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매일미사 등에 앞장서왔다. 현 정부 들어선 국정원 대선개입 박근혜 대통령 사퇴 시국미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무기한 시국미사 등 사제의 사회참여를 적극 이끈 신부이다. 김 신부는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충북 옥천성당의 주임신부를 맡고 있다.

“하느님과 돈 모두 섬길 수 없다, 후자의 사회 반드시 망해” 

김 신부는 1일 옥천성당에서 한 미디어오늘과 특별대담에서 한국 사회의 지난 20년에 대해 “산업화를 이룬 것은 맞을지 모르나 민주화 이룬 것은 아니었다”며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것이 판명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정부 10년 이외의 시간은 모든 가치를 되돌린 역주행의 시간이었다”며 “민주화의 빈자리를 자본이 차지했다”고 밝혔다. 김 신부는 “시민은 개체화했으며 노조와 시민단체 같은 연대체는 와해된 끔찍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지난 20년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 새 틀을 짜기 위한 길을 택할 것인지 기로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옥천성당 주임신부)가 1일 미디어오늘과 창간 20주년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최창호 'way' 사진작가
 

특히 한국 천주교와 관련해 최근 교황이 한국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는 어떻게 됐느냐’고 언급한 이후 귀국한 주교단이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를 한 것을 예로 들었다. 김 신부는 “교황의 질문이 없었다 해도 그랬을까”라며 “누가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돌아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문했다. 그는 “모든 소득은 기업에 가고, 시민은 가난하고 허약해졌으며, 국가권력은 갈수록 난폭해지고 교만해졌다”며 “‘사람이냐 돈이냐’, ‘공동체냐 국가냐’는 질문을 매듭짓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참사의 반복”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정부 때 발생한 용산참사가 우리사회에 던진 질문에 대해 우리는 성찰하지 못한 채 기회를 놓쳤다는 것.

특히 김 신부는 대한민국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놓았다.

“이것이 국가인가? 대한독립 만세를 불러가면서 나라를 되찾아야겠다고 했을 때의 나라가 지금 이 나라인가? 아이들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어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정부가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일제의 총칼 앞에 얻고자 한 나라,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해야 할 나라인가?”

김 신부는 이 시대 아픔의 근원에 대해 “사람을 똥값으로 취급하고, 수시로 벼랑으로 떨어뜨리는 가치전도 현상”이라며 “사람이 아닌 돈이 목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8년 여 전에 제기했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이후 삼성의 지배가 오히려 더 강화됐다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신부는 “2008년 삼성특검 종료와 함께 이건희에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과 원포인트 사면, 그리고 이듬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이 회장이 한 ‘우리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 정신차려야 한다’는 말은 삼성이 상징하는 자본에 의한 독재와 영속적 지배가 쉽사리 끊어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무엇보다 그 시기 대법원이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유죄판결을 확정한 것은 ‘죄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은 부자에게’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김 신부는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는데도 진상규명이 여전히 멈춰있는 실상에 대해 질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규명을 위해서는 국가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그래서 특별법이 나온 것이며, 그게 아니었다면 일반법으로 규명해낼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도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그렇다면 국가가 겸손하게 조사받고, 안전사회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옥천성당 주임신부). 사진=최창호 'way' 사진작가
 

이런 상황을 낳은 것과 박 대통령의 책임에 대해 김 신부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불미스럽게, 의혹을 안고 탄생한 권력은 좋은 일을 할 수가 없다”며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과 개표 과정의 의혹을 무마하고 태어난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 책임질 능력이 없다. 진실에 따른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불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난 박 대통령이 천주교 주교회의 주교단과는 만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 신부는 “전체 주교단과 박 대통령이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주교단을 만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 이유는 “선출과정도 의혹투성이이고, 무엇보다 거짓말쟁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대선 때 했던 경제민주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 쌍용차 해고자 복직 등 국민들과의 약속, 하늘을 바라보며 했던 약속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느냐’고 말한 것을 들어 김인국 신부는 “스스로 (약속을 안지키겠다고) 인정했는데, 박 대통령이 무엇이 무서워 약속을 지키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것과 관련,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국민들을 향한 대결에서만 전과를 올린다”며 “국내 선거에서만 승리할 뿐 외교에서는 실패하고, 패배하며 주권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과 정보동맹으로 주권이 팔려나가고, 일본이 자위대 몰고 한반도에 상륙하려는데도 한미일 동맹에 따라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지 않느냐”며 “경제와 외교주권, 국익은 빼앗기면서 국민을 향한 결투에서만 이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거결과에 대해 김 신부는 “이 정부가 더욱 승승장구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이런 상황이 정부와 여당에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시민들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임계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권력에 맞서는 건 하늘의 뜻”

세월호 참사 이전인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지학순 주교의 저항으로 태동한 이후 80년대 민주화투쟁, 2006년 삼성비자금 폭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시국미사 등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늘 맞서온 이유를 김 신부는 자세히 설명했다. 한마디로 “시켜서 한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었다. 높은 곳에서 시켜서 한 일이었다. 사제단이 권력과 늘 대결해온 것은 성경의 전통이다. 예수님도 국가권력과 싸웠고, 신학에서는 국가권력과 예수님이 맞섰고, 구약에도 모세가 제국의 권력과 맞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월 연두기자회견.
@연합뉴스
 

김 신부는 “아무리 좋은 정부라도 국가는 ‘지배계급의 사무총국’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며 “직분에 성실할 땐 조용하지만 국가가 정의를 무시하고 신의를 어기며 소수의 탐욕에 복무할 땐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땐 사제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리는 양심의 소리이며 ‘양심’은 하느님이 내는 소리”라며 “사제는 하느님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소리가 돼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있다”며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사람들의 입이 돼주는 것이며, 참다 참다 때가 되면 우리가 말을 보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자신이 사제단에 동참하게 된 계기에 대해 “사제직을 구현하는 방식은 천 가지, 만 가지도 넘으며, 모든 사제들이 사제단의 일원일 필요는 없다”며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세상의 요구를 표현하는 것의 하나가 사제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게 주어진 인연은 사제단이며, 사제단 형제와 동행한 것은 앞서가신 선배의 삶이 존경스러웠고, 내 차례가 됐을 때 전통을 따른 것일 뿐”이라며 “사제단 이전에는 순교의 전통이 있고, 안중근 의사와 같은 모범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사제단이 천주교 내부에서도 대다수가 아닐 뿐 아니라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도리어 참가한 신부들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 김 신부는 “사제단 신부 중에 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답했다. 그는 “교회가 보호해주고, 교우들이 보호해주고 뜻있는 시민들이 지켜주고 하느님이 보우해주는데 무엇이 걱정인가”라며 “일신상의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신부는 단 한 명도 없다”고 강조했다. 

“사제단이 비공식기구라고? 맞다. 천주교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라고? 그렇다. 다만 우리는 사제의 시대적 소명을 기피하지 않으려는 양심적인 결사체이며, 우리 양심에 따라 사제적 소명을 이루려는 것 뿐이다”

조중동과 보수단체 뿐 아니라 종편까지 가세해 ‘종북사제단’, ‘과격한 신부들’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데 대해서도 김 신부는 우려할 일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그는 “군부독재와 맞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반독재 투쟁을 지지했다”며 “그런데 자본독재를 상대한 반자본 투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저항의 본질이 뭔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한국사회가 자본의 노예가 되다시피 했으나 곧 성숙한 성찰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난 이명박도 박근혜도 자본독재의 마름이자 시종, 시녀라고 확신한다”며 “그렇기에 이에 대한 싸움, 저항의 본질은 매우 성서적인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하느님이냐 돈이냐, 아무도 두 가지를 함께 섬길 수 없다. 돈을 섬기는 사회는 반드시 망한다”며 “이런 싸움과 저항의 연대에 대해 일부에서 과격하다 말하지만 이것은 세상을 살리기 위한, 인간의 길을 위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길을 위한 애원이자 호소”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사제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하자 김 신부는 역설적인 답을 내놓았다. “마음으로는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불의한 자에게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다. (깨어있지 않고) 잠들어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한국 천주교 사회도 20년 동안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민주정부 10년 자본정부 10년 살면서 한국 천주교에 나타난 변화는 ‘예수를 믿기’에서 ‘예수처럼 살기’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예전에는 ‘믿을 교리’가 중요했으나 지금은 ‘사회 교리’가 중요해졌다”며 “이것이 한국 천주교에 나타난 변화이다. 참사 현장에 신앙인이 결집하는 것은 그와 같은 변화의 증거이자 열매”라고 평가했다. 과거엔 지붕없는 곳에서 미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일상이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고난과 눈물의 현장에 갔을 때, 십자가가 주어졌을 때, 가시밭길이 놓여있을 때야말로 신부다워지기 때문”이라고 김 신부는 강조했다.

“거짓 꾸짖고 진실 들어올리는 게 사제의 사명”

한편, 창간 20주년을 맞은 미디어오늘에 대해 김 신부는 “언론을 위한 언론이자 감시하는 언론이라는 역할을 해왔다”며 “지연 학연 혈연이 얽히면 서로 봐주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동종업계를 비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라고 평가했다. 김 신부는 “그런 게 가장 심한 곳이 언론계인데 이를 감시하느라 고단했을 것”이라며 “창간 20년에 도달했으니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20년이라는 세월은 청년기를 지나 자기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나이”라며 “한결같이 살아온 20년을 축하하며 존경의 마음 드리고 싶다”고 격려했다.

또한 김 신부는 사제단의 소명이 하느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며, 그 말씀은 가난한 자들을 편들고 진실을 밝히는 말씀이어야 한다며 “거짓을 꾸짖고 진실을 들어올리는 일, 그 대목에서 미디어오늘과 사제단의 사명은 일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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