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몰락하고 있다. 식상한 이야기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자료에 따르면 신문의 국내소비량은 2003년 128만 톤에서 2013년 72만 톤으로 급락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신문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사람들이 TV를 떠나고 있다. 광고시장매출액과 전체 광고시장 대비 방송광고시장의 비중 역시 매년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디지털 퍼스트’를 외친다. 그러나 이 역시 식상하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유출된 지 1년이 지났다. 많은 언론들이 앞 다퉈 디지털 혁신을 선언했다. 문제는 선언과 구호만 난무했다는 사실이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신문 기자)는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디지털 혁신을 한 곳은 없다”고 평가했다.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기사의 형식이 변화했다. ‘카드뉴스’와 ‘인터렉티브 뉴스’를 선보이는 언론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홈페이지를 개편했고, 이들 언론을 포함한 적지 않은 언론이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조직도 변화했다. 주요일간지들은 디지털 담당 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디지털 혁신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변방에서 일어나는 부분적인 변화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보다 적극적인 시도도 있었다. 파이낸셜뉴스는 최근 CMS 개편 작업을 마무리했다. 온라인용 기사를 최우선으로 제작하는 방향이다. 편집회의 시스템 역시 온라인 중심으로 바꿨다. CMS에 다양한 기능을 넣기도 했다. 기사의 알고리즘을 분석해 관련기사를 모아볼 수 있도록 했다. SBS는 멀티플렛폼 전략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사례다. SNS를 통해 ‘스브스뉴스’라는 별개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취재기자들의 칼럼 격인 ‘취재파일’도 활성화됐다. 자체 ‘팟캐스트’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또한 본격적인 디지털 혁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스스로도 ‘시작단계’라고 말한다. 엄호동 파이낸셜뉴스 온라인편집부 부국장은 “아직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구조”라며 “현재 디지털 환경에 맞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 역시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장은 “유연하고 적극적인 구성원들 덕에 ‘스브스뉴스’등 디지털 콘텐츠가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타 언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수준일 뿐 절대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기존 방송중심으로 모든 일정이 잡혀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도 하루 3번하는 회의는 메인뉴스를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왜 디지털 혁신이 정체되는 것일까. 담당자들과 전문가들은 ‘개인’과 ‘조직’ 모두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심석태 부장은 “과거에는 방송기자나 신문기자로 나뉘었지만, 이제는 그냥 기자가 됐다”면서 “일하는 방식을 종이신문이나 방송 기준이 아니라 디지털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엄호동 부국장 역시 “뉴스룸의 혁신은 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취재기자만큼은 자신이 신문기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어중간한 디지털 전환이 이어지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다리를 걸치게 됐다. 업무량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일선 기자들이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잔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은 지속가능한 디지털 혁신을 가로막는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업무 면에서 부담이 생겼다. 지면마감을 해야 하고, 별도로 온라인 기사도 바로바로 써서 올려야 한다. 출입처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보고하면 전부 다 써서 올리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 내의 디지털 혁신이 일선 기자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이 기자는 “홈페이지 디자인이 바뀐 것 외에 이렇다 할 변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신문이 내세운 디지털 전용 콘텐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파이낸셜뉴스의 한 기자는 “디지털퍼스트 도입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젊은 층에서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면서도 “걱정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최진주 한국일보 디지털뉴스팀장은 “내부 구성원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성원의 인식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며 “한국일보의 경우 지난 4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디지털 콘텐츠인 ‘뒤끝뉴스’를 작성하라고 지속적으로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재교육과 서신 등을 통해 디지털 혁신의 중요성을 알리고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가 기존의 인력풀만 갖고 디지털 혁신을 하려니 한계에 봉착하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최진순 교수는 “혁신이라는 구호에 갇혔을 뿐 인적 재편은 없었다. 디지털미디어 환경에 맞는 디지털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확충하는 언론이 없다”고 말했다. 최진주 팀장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편인 한국일보 역시 영상콘텐츠를 제작하는 담당 PD가 1명 뿐이다. 최진주 팀장은 “욕심에 비해 실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적다. 디자이너나 기술 파트직원 역시 원하는 만큼 채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SBS의 멀티플랫폼인 '스브스뉴스'의 콘텐츠.
 

‘개인’의 변화는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조직’의 변화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기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신에는 기자의 헌신이 따른다. 이 경우 조직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평판이나 금전적 인센티브, 이 두 가지의 보상이 따라야 하는 데 그게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다.” 황용석 교수는 “모든 구조가 바뀌고 있는데 언론사는 기존 구조를 고수한다. 구조적인 체질개선이 없이 구성원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기만 해서는 지속가능한 디지털 혁신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직 스스로 변화를 체감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닷컴’사를 별개의 법인으로 운영하며 낚시성 기사와 선정적 광고로 수익을 얻는 구조를 탈피하는 언론이 적지 않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주저하고 있다.

심석태 부장은 “희생 없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측에서 이익을 얻고자 하니 본질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신을 이루려면 기존 매체에 투자되던 인력과 재원이 양을 일정부분 줄여 디지털로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언론 입장에서 디지털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불확실성이 크다. 더욱이 광고시장이 아직은 버틸만하다는 인식 또한 적극적인 디지털 혁신을 가로막는 이유 중 하나다.

투자한 영역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한 점 역시 언론으로 하여금 디지털 혁신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스노우폴’이 반향을 일으키니 우리 언론도 우후죽순 인터렉티브 기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단기적인 투자로 성과를 내기도 힘들뿐더러 이용자에게 구미가 맞는 콘텐츠도 아니었다. 자연스레 회의적인 주장들이 나왔다.” 최진순 교수의 말이다.

디지털 혁신은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사안이다. 또,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디지털 환경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중심의 뉴스룸 개편이 필요하다. 이왕 할 거 독자들에게 제대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사례를 참고할만하다. 허핑턴포스트와 버즈피드는 이미 많이 거론됐다. 이들 언론은 끊임없이 독자의 정보를 수집해 활용하고 있다. 기사에 A/B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 기사에 두 개 이상의 제목을 만들어 두 그룹의 독자들에게 노출시킨 후 어떤 제목이 더 많은 트래픽을 가져오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버즈피드 뉴스룸. 사진=김병철 기자.
 

전통매체인 뉴욕타임스는 기존의 기사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에버그린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나간 기사를 다시 읽게 만드는 방법으로 가이드 페이지를 만드는 방안도 대안으로 검토하는 단계다. ‘콜렉션(collection)’이라는 포맷으로 기사를 묶는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가디언은 자체 개발한 ‘오펀(Ophan)’이라는 트래픽 분석 툴을 사용한다. 5초 이내에 가디언의 모든 기사의 트래픽을 추적하고 그 결과를 400여 명의 기자와 에디터, 개발자들과 공유하는 툴이다. 데이터는 나라, 시간대, 지역, 디바이스, 브라우저별로 다양하게 필터링된다.

넷플릭스는 매일 3000만 건 이상의 콘텐츠 이용 정보를 수집한다. 넷플릭스의 모든 TV 쇼와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에는 수백 개의 태그가 달려 있다. 콘텐츠 카테고리와 줄거리, 배우와 감독, 이용자 정보와 이용 행태를 교차 결합해 이용자의 정보를 얻게 만든다.

미국의 사례는 디지털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데이터 활용’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도식 SBS 스마트미디어 사업팀장은 “언론이 이대로 남을 것인지 기술기업으로 진화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언론의 메인 사업을 놔두고 디지털 쪽으로 힘을 쏟기는 힘들고, 단계적으로 추진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시장이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다. 언론이 주저하는 사이 주류 언론들이 신경 쓰지 않던 ‘피키캐스트’가 모바일 환경의 지배적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언론사 디지털 담당자는 이렇게 강조했다. “디지털 혁신을 한다고 홍보하는 언론들, 대부분의 디지털 부서는 여전히 변방이다. 한직처럼 취급한다. 그러다 다들 네이버에 종속된 거 아닌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피키캐스트를 도둑질 매체라고 흉보다가 그 매체가 급부상하니 다들 놀라고 있는 상황이다. 느긋하게 대응하다가는 때를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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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미래 (17)
화장실에서 보는 피키캐스트 사람들 찾는 이유는

 

<편집자주>

미 디어오늘이 오는 5월 창간 20주년에 맞춰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20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내보냅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붕괴되고 콘텐츠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주류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면서 급기야 저널리즘의 근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퇴행적인 일련의 변화를 비판하고 혁신과 대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창간 20주년, 미디어오늘은 언론 보도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파고드는 정직한 감시자,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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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뉴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02)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03)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04) 현장에 기자들이 없다.
(05) 퇴행적인 취재 시스템.
(06) 차별성 없는 콘텐츠.
(07) 신문시장의 구조적 위기.
(08) 방송의 통신 종속.
(09) 무늬만 뉴스 도매상, 연합뉴스.
(10) 뉴스 구독 행태의 변화.
(11) 콘텐츠 수익모델 다변화.
(12) 뉴스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
(13)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14) 기자의 미래.
(15)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16) 신문읽기 교육의 현재와 대안.
(17) 뉴스룸 쇄신, 조직의 동력을 바꿔라.
(18) 대안 언론의 등장과 주류 언론의 틈새 시장.
(19) 에버그린 콘텐츠를 찾아라.
(20) 저널리즘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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