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인권은 먼 나라 얘기다. 인권이 침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는 인권을 보장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인권을 보장하자고 외치면 자신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인권재단 ‘사람’은 41개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76여명의 유급활동자들을 대상으로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관련해 법이 정한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노동법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부터 적용된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명(81.6%)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권활동가를 노동자로 바라볼지에 대한 문제도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인권단체 내에서 활동가들과 단체 대표의 관계를 수직적인 고용관계로 보긴 어렵다. 인권단체 운영이 대부분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운영되며 단체 대표가 있지만 활동가들 중 순번으로 돌아가는 등 수평적인 관계가 전제돼 있기 때문에 대표를 고용주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비율(39.5%)도 높게 나타난다. 신분이 애매하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이라고 볼 수 있다. 

   
▲ 인권활동가 근로게약서 작성여부. 자료=인권재단 사람 제공
 

4대 보험에 가입돼지 않았을 경우 개인이 감당해야 할 개인부담금은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인권활동가들의 임금 수준은 높지 않다. 상임활동가 기준으로 기본급은 평균 106만9100원으로 법정 최저임금인 116만원에 못 미쳤다. 상임활동가 3명중 1명(32.3%)은 100만원 이하의 기본급을 받고 있었다. 응답자들이 인권활동가로 활동한 기간이 평균 8년3개월, 평균 나이가 34.82세로 나타난 것을 보면 기본급은 더욱 열악한 수준이다. 

   
▲ 인권활동가 기본급. 자료=인권재단 사람 제공
 

한 단체가 아니라 여러 단체에 소속돼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월 활동비(116만6400원)도 법정 최저임금수준이었다.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활동가들도 많았다. 응답자 중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63.2%)는 ‘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34.2%)보다 많았다. 

   
▲ 인권활동가 중 수입보충을 위해 다른일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63.2%에 달했다. 자료=인권재단 사람 제공
 

다른 일을 한 이유에 대해서 건강상의 이유(12.5%)나 추가적인 일을 제안받는 등(기타 10.4%)의 이유보다는 생활비를 포함해 다른 경제적인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가장 많은 사람들(72.9%, 복수응답허용)이 ‘활동비만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주거비 부담(16.7%)이나 교육비(4.2%), 예상치 못한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6.3%) 때문이라고 밝힌 비율까지 합하면 대부분 활동가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본업 이외에도 다른 일을 했다고 답했다.  

활동비에 대해 만족하는 활동가들은 많지 않았다. 활동비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만족도에 따라 1점~5점까지 점수를 부여했는데 평균값이 2.72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간 값인 3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39.5%로 ‘매우 만족한다’와 ‘만족한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27.6%)보다 높았지만 주관적으로 느끼는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볼 수 있다. 

만족도가 아닌 현재 활동비가 적정한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적정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 중 17.1%밖에 되지 않았다. 78.9%의 활동가들은 현재 활동비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고, 적정하다고 생각한 활동비의 평균은 약 166만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5인이상 사업체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인 약 277만의 60%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 활동가는 “여러 수당제도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급이 수당이 없어도 될 만큼의 금액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동현실은 좋지 않지만 인권활동가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 10년 후에도 인권활동을 지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혀 지속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 76명 중 1명에 불과했다. ‘할 수 있는 한 지속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가 57.9%로 가장 많았고, ‘반드시 지속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9.2%를 차지했다. 

   
▲ 향후 10년 후에도 인권활동을 지속할 것인가. 자료=인권재단 사람 제공
 

다만 인권활동을 지속하고 싶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들 중 가장 많은 응답자들(54.5% 복수응답허용)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의 수입 때문’이라고 답했다. ‘노동시간이 길고 개인시간이 너무 부족해서’라고 답한 응답자도 27.3%를 차지했다. 심층면접을 통해 한 활동가는 “사실 (근무)시간으로 대략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로 돼 있지만 행사도 있고 주말에 출장도 있고 그러면 주중에 쉬거나 수당을 주는 게 잘 돼있지 않다”고 답했고, 또 다른 활동가는 “오후 7시 이후에 회의들이 많다”며 “야근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연구진들은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현장에 더 많은 활동가들이 유입돼야 하는 측면과 일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권이슈가 소외돼있고, 활동가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활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인권단체가 굴러가게 된다. 덜 쓰고 덜 먹으면서 ‘투잡’도 뛰어야 인권활동가들은 생활이 가능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인권운동의 사회적인 의미를 공유하고 확산해 재정안정성 높이기 △인권활동가 지원을 위한 사회적 기금 마련 △인권운동 역량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기회 마련 △공적지원 서비스 마련 등 4가지를 제안했다. 연구진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열악한 삶의 조건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말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권활동의 지지자로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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