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해 사용하는 지배조직이다. 따라서 국가의 치안을 담당하는 조직인 경찰은 필연적으로 국민을 향해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사회질서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필요최소한으로 사용해야하는 과제가 부여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해 길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과도하게 진압하고 있다는 비판은 오래된 지적이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진상규명을 외치며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쏘고 수백 명을 연행하며 휴대폰을 압수수색하는 등 경찰의 물리력 사용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가 추가됐다. 집회 관련 보도에서는 이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폭력경찰의 이미지 쇄신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할만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지난달 30일 첫 방송된 MBC <경찰청사람들 2015>는 ‘훈남경찰’이 등장했다. 199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경찰청사람들’이 20년 만에 부활했지만 <경찰청사람들 2015>의 방영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케 하는 첫 방송이었다. 프로그램은 MC이경규가 현직 경찰 6명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재연영상을 보며 분석과 추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건 재연영상을 보여주기 전 몇 가지 단서를 먼저 제시한 뒤 MC와 현직 경찰들은 사건을 추리한다. 하지만 첫 방송에서 등장한 두 가지 사건은 모두 돈에 눈이 멀어 가족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건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경각심을 주거나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신종 보이스피싱과 같이 범죄수법을 모르면 당하기 쉬운 범죄에 대해 경찰들이 나와 설명해줘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도, JTBC에서 방영하는 <크라임씬 시즌2>와 같이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선사하는 효과도 없었다. 

지난 3일 서울경제 <‘경찰청사람들’ 2015 이경규, “그것이 알고싶다 오래 봐. 그런 스타일 좋아해”>에서는 <경찰청사람들 2015>를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비교했다. 하지만 이미 다 끝난 사건을 재구성한 프로그램을 미궁에 빠지거나 지속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꼼꼼하게 취재해 새로운 팩트를 발굴하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것이 알고싶다’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 지난달 30일 첫 방송된 MBC <경찰청사람들 2015> 화면 갈무리.
 

<경찰청사람들 2015> 첫 방송의 의미는 조선일보 보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지난 1일자 조선닷컴 <경찰청 사람들 2015, 무엇이 달라졌나?…훈남 형사들 시선강탈>에서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못지않은 훈훈한 외모의 경찰들이 눈길을 끌었다”며 방송에 출연한 최승일 경장이 방송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승일 경장은 경찰이 된지 1년 8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경찰로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사건을 추리해내거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엔 부족해보인다.  

‘몸짱경찰’도 등장했다. 방송에 출연한 박성용 경사는 2013년에 세계 클래식 보디 빌딩대회에서 7위를 했다며 ‘명품 몸매’를 자랑했다. 박 경사가 4년 연속 전국 검거율 1위를 기록했다며 MBC는 박 경사 훈남 만들기에 나섰다. 경찰과 같이 대국민 안전서비스를 지원하는 공무원을 계량화된 수치로 평가하는 실적주의는 군사독재 시절 고문과 협박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간첩조작사건과 지난 2010년 양천경찰서에서 있었던 물고문 사건을 통해서도 보듯이 매우 위험한 평가방식이다. 

결국 첫 방송은 ‘빛 좋은 개살구’로 끝났다. 첫 방송은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시청률 3.6%를 기록하며 사건 예방효과, 추리 극이 주는 긴장감, 시청률 모두를 놓친 채 잘생기고 몸 좋은 젊은 경찰만 남겼다. 방송 중간 경찰의 애환과 고충을 담아내며 ‘고생하는 경찰’의 이미지까지 추가했다. <경찰청사람들 2015> 제작진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현재 폭력경찰로 비판받는 경찰조직에 대한 비판을 가리고 몇몇 경찰 개인들을 띄워 이미지 개선에 나서는 데 도움을 줬을 뿐이다.

   
▲ 지난달 30일 첫 방송된 MBC <경찰청사람들 2015>
 

경찰청사람들이 ‘훈남경찰’을 남겼다면 인터넷 포털에는 ‘훈녀경찰’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3일 연합뉴스에서 <실종 치매노인에 신발·양말 벗어 준 ‘맨발 여경’> 기사가 나오고 난 뒤 4일까지 ‘맨발의 여경’이 의인이 된 기사가 쏟아졌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 대해 실종신고가 들어왔고 경찰은 하루만에 할머니를 찾은 뒤 헬기를 이용해 병원에 후송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 순경이 자신의 신발과 양말을 벗어 할머니에게 신겼다는 이야기다. 여성 순경임을 강조해 ‘착한 경찰도 많다’는 것을 드러내는 기사는 이뿐 아니다. 

지난달 30일 위키트리 <시각장애인 '말벗' 돼 준 서산경찰서 여경>에서는 시각장애 독거노인을 도와준 새내기 여경의 선행에 대해 보도했고, 지난달 29일 천지일보 <성동경찰서, 새내기 여경의 기민한 대처로 대형화재 막아>에서는 “전입한 지 2달밖에 안된 신임여경이 기민한 대처로 대형화재를 막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중부일보 <"그냥 죽으려고 했는데..." 자살 결심 할머니에게 희망 드리는 새내기 여경들, 김윤우·변시정 신임경찰>에서 여경을 훈녀로 만드는 보도가 있었고, 지난달 30일 뉴스1 <여경 기지로 도둑맞은 예비신부 뭉칫돈·다이아목걸이 되찾아>에서는 한달 전인 지난달 3일에 있었던 미담을 꺼내와 보도하기도 했다. 모두 경찰이 된지 얼마 안된 순경이었고, 기사들은 ‘여성’임을 부각했다. 

   
▲ 5월 4일자 네이버 화면 갈무리. 최근 '여경'의 미담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권력은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을 내세워 돌파구를 찾는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과 ‘복지병’으로 위기에 처한 영국 보수세력을 구해낸 사람은 여성이었던 대처 수상이었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장기 집권했던 박정희 군사정부의 폭력적 이미지는 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내세워 순화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시도에 대한 역풍 등으로 어려워진 한나라당을 살리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나서 한국 보수진영을 구해낸 사람 역시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여성이 갖는 섬세함과 부드러운 이미지는 권력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 권력이 갖는 폭력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을 향해 발사한 물대포의 양은 지난 2년간 발사한 물의 양보다 많다. 

경찰과 경찰을 보도하는 언론이 할 일은 폭력으로 얼룩진 얼굴에 하는 화려한 덧칠이 아니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서만 최소한의 공권력을 사용해 신뢰를 얻어갈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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