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을 겸영하는 신문들이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 저지에 실패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 광고총량제’를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달 24일 의결하면서다. 지상파 광고총량제는 오는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지상파의 승리라고 단정 짓기 힘든 상황이다. 지상파 입장에서 광고총량제 도입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중간광고 도입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지상파 광고총량제를 도입해도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보고서에 따르면 광고총량제를 통한 지상파 방송3사의 추가수익은 연 217억~383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 광고총량제는 자막광고, 토막광고, 시보광고, 프로그램 광고 등 종류별로 제한된 칸막이식 편성구분을 없애고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내용이다. 즉, 인기프로그램에 프로그램 광고를 추가로 배정할 수 있게 된다. 그간 유료방송 PP에는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가 허용됐지만 지상파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광고업계 역시 중간광고를 도입하지 않는 한 지상파 광고총량제의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는 “지금처럼 광고판매량이 50%에 그칠 때는 광고총량제를 도입해도 광고비가 증가하기 어렵다”면서 “중간광고 없는 광고총량제는 오히려 광고혼잡도만 증가시켜 광고시청률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KISDI 보고서의 광고주 설문조사에서도 다른 매체에 집행되는 광고비를 줄여 지상파 광고를 추가로 집행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광고주는 15.5%에 불과했다.

광고총량제 도입에 따른 지상파의 이익이 크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종편의 손해 역시 크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종편 겸영 신문들은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은 9개월 동안 140건이 넘는 광고총량제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이는 중간광고 도입 저지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광고총량제에 대한 보수언론의 지상파 때리기는 중간광고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 역시 “중요한 것은 지상파 비대칭규제를 해소하려는 방통위의 정책 기조”라며 “광고총량제 자체만으로 큰 손실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편 겸영 신문들의 ‘전초전’이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실제 이들 언론의 반발로 방통위가 사업자들의 여론을 수렴하겠다며 의결 일정을 한 차례 미뤘다. 광고총량제 시행 후 지상파 광고쏠림현상이 일어날 경우 지상파 광고총량제를 개선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기도 했다.

   
▲ 지난 4월 27일 동아일보 기사.
 

이제부터는 ‘중간광고 도입’을 두고 본 게임이 벌어지게 됐다. 지상파 광고총량제가 의결되자 지상파는 보다 적극적으로 중간광고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지상파가 주축인 한국방송협회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된 지난달 24일 “(방통위가) 중간광고 허용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추지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신문협회는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3월말 신문협회장과의 면담에서 ‘중간광고는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선을 그었다. 앞으로 양측 진영은 자사 보도를 통해서도 각각 중간광고 도입과 저지의 필요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에 광고총량제가 도입되면서 중간광고 도입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졌다. 그러나 방통위가 지상파에 중간광고 도입을 강행할 가능성은 낮다. 종편 겸영 신문들의 엄포가 통한 탓이기도 하지만 중간광고가 도입되면 시청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단체들 역시 중간광고 도입에 대해 시청권 훼손을 우려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방통위가 종편에 일방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종편은 현재 받고 있는 특혜를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방송평가위원장인 김재홍 방통위 위원은 종편 방송평가 때 ‘투자계획 이행여부’, ‘조화로운 편성’. ‘공정성 배점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방통위가 형식적 방송 재허가 제도의 보완책으로 ‘임시허가제’가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언론시민사회단체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통합방송법안에 △방송 재승인 및 재허가 심사기준 강화 △종편 의무채널지정 취소 △종편 중간광고 폐지 및 보도편성비율 제한 등을 요구해 종편을 겨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선데이저널’이 공개한 MBN 영업일지로 인해 종편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미디어렙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종편 4사.
 

방통위가 광고시장의 파이를 한쪽에 몰아주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KBS 수신료 인상이다. 지난해 수신료를 기존 2500원에서 4000원으로 1500원 인상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법안에 따르면 연간 수신료 수입이 3900억 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BS는 이 중 2100억 원 가량의 광고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줄어든 광고수익은 종편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는 지난달 10일 발표한 성명에서 “2100억 원의 초천문학적 광고를 종편에 내어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 입장에서 수신료 인상은 종편에게 지상파의 광고 파이를 가져다주면서, 지상파 재원확충에도 보탬이 되는 일석이조 정책이라는 이야기다.

광고총량제 도입 저지에 적극적이었던 종편 겸영 신문이 상대적으로 수신료 이슈에 집중하지 않은 까닭은 수신료 인상이 종편에 보탬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종편 겸영 신문은 KBS 수신료 인상에 따른 광고 절감 폭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지상파의 광고파이를 더 많이 떼 달라는 요구다. 조선일보는 지난 4월 9일 기사에서 “KBS의 수신료 수입 증가분에 훨씬 못 미치는 현재 계획보다 광고를 더 줄일 수도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수신료 인상안이 연내에 법제화 될지는 미지수다. 물론 방통위와 새누리당은 적극적이다. 박민식 새누리당 간사는 “방통위원장이 직접 야당 의원들 집까지 찾아가 수신료 인상을 해달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담뱃값 인상 등 연이은 과세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수신료 인상을 강행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결국 방통위와 여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수신료인상안을 처리하겠다던 계획과 달리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테이블에도 올려놓지 못했다.

   
▲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스포츠 보도 프로그램에서도 가상광고를 봐야 한다.
 

수신료 인상 외에도 방통위는 지상파와 종편의 파이를 뺏지 않으면서 양측을 만족시킬 방안을 찾고 있다. 파이를 키우는 전략이다. ‘광고규제품목 완화’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4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병원광고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성준 위원장은 “인터넷, 모바일, 옥외광고 등에서 병원광고를 접할 수 있는데 방송에서만 접할 수 없다”면서 “방송만 규제받고 있다. 이를 풀어야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조속히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뿐이 아니다. 방통위는 ‘신유형 광고 발굴’도 추진하고 있다.

방통위가 사업자들을 위한 편의만 제공하는 상황에서 정작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가 소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방통위가 사업자 간 갈등구조 속에서 갈등해소에 중점을 두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시장 파이 키우기에 급급해 가상광고, 간접광고를 확대했다. 병원광고 등 광고제한품목에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방송을 산업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과정에서 방통위가 시청자 주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추혜선 위원장은 “시청자 주권, 공영성에 대한 방통위의 철학이 부재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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