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라는 허울에 가려진 노동자가 있다. 22살에 자신을 불태우며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말처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과장이 좀 섞였지만 음악신동 모차르트는 6살 때부터 곡을 만들어내는 기계로 착취당하다 요절한 음악노동자였다. 그는 36년이란 짧은 인생에서 630곡이 넘는 곡을 생산했는데 이는 80년과 60년을 산 하이든과 베토벤이 만든 곡의 개수와 비슷하다. 한 달 평균 2곡을 찍어내야 했던 모차르트의 삶을 들여다보자.  

천재로 평가받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년 1월 27일~1791년 12월 5일, 오스트리아)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 사이의 일곱 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모차르트보다 먼저 태어났던 다섯 명은 5살 이전에 사망했고 누나 난네와 모차르트만 유아기를 넘긴 채 살아남았다. 힘들게 얻은 막내아들은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접했고, 잘츠부르크의 궁정 음악가에 불과했던 레오폴트에게 그의 막내아들은 꿈과 희망이었다. 

아버지는 모차르트가 음악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연애나 결혼도 방해했다. 그에게 모차르트는 음악 생산자일 뿐이었다. 레오폴트는 음악 교육학자로 당대 가장 많이 팔린 음악 교본을 쓴 사람이다. 하지만 처음 낳았던 자식이 5명이나 죽으면서 쌓여온 슬픔과 욕망은 모차르트에게 쏟아졌다. 모차르트가 가지고 있던 재능은 아버지의 영재교육과 만나 음악신동으로 둔갑했다. 그를 아동노동의 피해자로 보는 사람은 얼마 없다. 

모차르트는 6살 때부터 2년 동안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유럽 순회공연을 했다. 결국 이런 가혹한 노동이 요절의 원인 중 하나라는 해석도 있다. 유럽 전역을 덜컹거리는 마차로 횡단하며 교황과 귀족들을 만나러 다니는 과정에서 모차르트는 당시 유능했던 음악가도 만날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은 바하 등의 곡을 모방하는데서 시작한다. 이는 모차르트가 8살이란 어린나이부터 교향곡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8살이 해내긴 대단한 일이었다. 바꿔 말하면 8살짜리 아이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년 1월 27일~1791년 12월 5일)
 

모차르트의 노동은 엄청난 감정노동도 수반했다. 그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변에서 몰려와 진짜 실력이 맞느냐며 갑자기 작곡을 시키거나 즉석연주를 시키는 식이었다. 음악 이외의 삶이 없었던 모차르트는 음악으로만 인정받아야 했다. 어느 샌가 시키지 않아도 끝없이 훈련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아스는 저서 ‘모차르트’를 통해 모차르트 음악의 원동력은 사회인정 투쟁이었다고 말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가 아버지 동료들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저를 사랑하세요?”였다. 레오폴트는 아버지라는 권력을 이용해 아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냈다. 

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지정학적 위치도 그의 재능을 빛나게 했다. 그곳은 바하로 대표되는 북부의 독일적 정신주의와 이태리로 대표되는 감정주의가 만나는 지점이다. 종교적으로는 신교도 지역이면서 카톨릭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특이한 공간에서 그는 다양함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모차르트가 살던 18세기 후반은 산업혁명 초기로 2차 인클로저 운동이 있던 시기다. 농업사회에서는 연약한 아동들의 노동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도시에서 유아노동계급이 필요했다. 이들은 과도한 노동으로 대부분 15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이 될 때까지 유럽 노동자 계급의 평균수명은 서른 살 정도에 불과했다. 모차르트는 탁월한 재능과 조기영재교육 덕분에 조금 더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차르트는 “나는 작곡을 할 때가 작곡을 하지 않을 때보다 훨씬 편하다”라고 한 적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그에게 작곡을 하지 않는 시간은 궁핍으로 가는 시간일 뿐이다. 밤새 작곡하기 위해 졸지 않도록 부인 콘스탄체에게 작업이 끝날 때까지 잠을 깨워달라던 모차르트의 모습을 천재라고 ‘퉁’치기엔 가혹하다.  

바그너는 모차르트의 기악곡에 대해 인간의 목소리처럼 노래한다고 평가했다. 악기를 가지고 인간을 흉내 냈다면 모차르트 음악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모차르트의 후계자 로시니는 모차르트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모차르트의 청춘기는 우리에게 기쁨, 성숙기에는 절망, 말년기에는 위안을 선사했다.” 모차르트의 억압과 애정결핍은 음악에 녹아들었고, 이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는 대중의 마음까지 울렸다. 

음악가도 죽기전에 가장 진실한 마음을 작품에 녹여내지 않을까? 그가 죽기 3개월 전인 1791년 가을, 모차르트는 푼돈을 벌기 위해 미루고 미루던 친구의 곡을 작곡했다. 클라리넷 연주자인 안톤 슈타틀러가 부탁한 곡으로 그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클라리넷 622번 협주곡을 들으며, 모차르트도 인간을 노래하던 평범한 노동자라는 생각해본다. 협주곡 2악장은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1악장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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