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정치풍자 코미디가 ‘돌직구’였다면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 민상토론은 ‘변화구’다. 정치권을 향해 전할 말은 어떻게든 전하지만 어떤 정치인이 왜 잘못했는지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거나 좋아하는 정치인을 밝히는 것에 대해 꺼리는 한국 사회 현실까지 담아낸 것이다. 

개콘이 지난 5일 내놓은 ‘민상토론’이 연일 상승세다. 첫 방송에서 16.6%로 출발한 이후 두 번째 방송에서 18.4%를 기록하더니 19일 세 번째 방송에서 19.2%를 기록했다. SNS에서도 영상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민상토론은 개그맨 유민상과 김대성이 패널로, 박영진이 사회자로 나와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회자나 방청객이 무상급식, 자원외교, 성완종 리스트 등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입장을 물으면 패널들이 난감해하는 단순한 설정이다.

방청객이 유민상에게 ‘좋아하는 스타일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누구냐’고 묻는다. 유민상은 “무슨 질문이 이래요. 나는 비서실장이 누군지도 몰라요”라며 당황한다. 사회자 박영진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또박또박 언급한다.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입장을 밝히기 난감해하며 유민상이 “싫어요”라고 하면 박영진은 “아, (셋)다 싫다?”라며 몰아세운다. 옆에서 김대성이 마무리한다. “참 이 형은 할 말 다하고 산다.” 

세 명의 비서실장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성완종 리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직접 얘기하지 않았지만 소통이 될 때 공감은 더욱 커지는 역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날카롭게 권력의 심장부를 겨누지만 직접 타격을 가하지는 않는다. 어설픈 조롱은 특정인에 대한 비하로 비춰지면서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웃음보다 메시지가 강해지면 다큐로 변질되기 쉽다. 민상토론은 이같은 면을 피해간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아슬아슬할 정도의 메시지지만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민상토론’속 유민상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며 난감해하지만 어느새 한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돼 있다. “우리가 이 꼴로 뭘 하냐”고 말하면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고 알아듣고 “문제”라는 단어가 나오면 “문재인 대표가 문제”라고 왜곡하는 모습은 한국 언론에서 많이 본 모습니다. 이 때 사회자 역할의 박영진이 “개그맨 유민상씨의 의견은 개콘 조준희PD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 보이는 사람을 낙인찍고 그들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풍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화면 갈무리
 

최근 씨네21이 ‘일베 기자 퇴출론에 대한 불편함’ 외부 원고를 실은 뒤 편집자 메모를 남겨 씨네21 편집부는 KBS 일베기자 채용에 반대한다며 굳이 독자에게 사과까지 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정치적 입장이 도덕적 기준이 되며 ‘올바른’ 입장에 서지 않은 이가 있다면 선을 긋는 코미디같은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상토론’ 유민상은 정치적인 입장을 얘기하기는 싫어하지만 의견이나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긴 싫어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데 얘기하면 시끄러운 일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술자리에서 ‘정치나 종교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한국사회의 불문율을 잘 나타낸다. 

‘민상토론’ 방청객들의 깨알같은 복장도 웃음코드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정장을 입은 남자는 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적는다. 국가정보원 민간인 사찰 등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면 누군가 감시한다는 불안감을 표현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빨간 야구 잠바와 비슷한 복장을 한 방청객도 보인다.  
   
‘민상토론’은 반복되는 패턴에 조금씩 변화를 주지 않으면 식상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매번 변화와 반전이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물 2L 마시기 운동이 벌어진다며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며 4대강사업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거나, ‘민상토론’ 순서인지 모르게 유민상과 김대성이 분장을 하고 나와 다른 개콘 코너를 하는 것처럼 시작하다가 순식간에 세트장이 바뀌면서 ‘민상토론’으로 넘어와 유민상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벌써 정치적 외압으로 그만두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직설적으로 사회 부조리에 대해 비판을 날렸던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LTE-A뉴스’가 온라인상에서 영상이 삭제된다는 의심을 받거나 출연진들의 외부행사가 끊긴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장기 프로그램 개콘은 정기적으로 폐지 논란에 휩싸여왔다. 그럴 때 마다 박영진의 말처럼 “개그맨이니까 바보흉내나 내면서 살이나 찌우는 게” 아니라 대중의 심정을 반영한 개그를 통해 살아나곤 했다. 정치가 코미디로 변한 사회에서 코미디로 말하는 정치가 시민을 웃음짓게 하는 사회,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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